격랑 속의 조선-公園の各國兒童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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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속의 조선

公園の各國兒童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 公園の各國兒童」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메이지 시기부터 만주사변까지 일제의 침략전쟁을 다룬 화첩 『전역화첩어국지예戰役畫帖 御國之譽』에실려있는 풍자화다. 도쿄의 성문사省文社에서 1936년(소화11년) 10월 30일 초판이 발행되었고 연구소 소장본은 1936년 11월 5일에 발행된 20판본이다. 이 화첩 서문에는 “메이지부터 쇼와시대까지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열강이 경이로워 했는데 이는 전쟁에서 황군의 대활약 때문”으로 “몸을 버리고 집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군국을 위한 나아간 귀중한 공적을 다시 음미하는 것”이 간행 목적이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침략 등 전쟁을 통한 일본제국의 ‘발전’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림의 소재 또한 육군성과 해군성의 제공 자료를 활용하였으며 일본이 벌인 전쟁을 한눈에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였다.


총 60폭의 그림으로 구성된 전역화첩어국지예에서 27번째그림으로등장하는 「공원의각 나라 아이들」은 청일전쟁 직후 일본과 서양 열강들의 세력다툼을 일본의 시각으로 풍자한 것이다.


청나라가 졸고 있는 사이에 큰 몸집의 러시아가 청나라 소유의 만두(만주滿洲를 만두로 표현)를 슬쩍 가져가자 소년으로 표현된 일본이 러시아의 손목을 잡으며 저항하고 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서양 열강들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 와중에 아이로 표현된 조선은 일본의 다리에 매달려 무섭다고 외치고 있는데, 격랑 속의 동아시아 정세를 비유하면서 일본을 마치 ‘동양의 수호자’인 양 미화하였다.


1895년 4월, 일본은 한껏 들떠 있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였겠는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이 랴오둥 반도의 지배권을 확보하자 대다수의 언론은 마침내 일본이 노쇠한 아시아의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 강대국과 대등하게 교류할 자격을 얻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협력하여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도록 일본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삼국간섭’이다. 아직 러시아와 정면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일본은 이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간섭의 결과에 청일전쟁의 승리에 취해 있던 일본 국민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서구열강은 이를 기회로 경쟁적으로 청나라 분할에 나서게 되었다. 1898년 3월에는 독일군이 자오저우만膠州灣에 상륙하였고, 프랑스·영국 등도 앞다투어 군대를 파견하여 조차지租借地를 요구하였으며, 러시아는 만주의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랴오둥반도를 조차하였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를 향한 일본의 적대감은 더욱 커졌으며 결국 러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청일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였고 조선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받으며 결국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 한장의 그림으로 19세기말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조선의 운명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공원의 각 나라 아이들 公園の各國兒童」은 5월 개관하는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도 전시될 예정이다.


▒ 글쓴이: 민족문제연구소 강동민 자료팀장

  



(이 글은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 2016년 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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