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함께 ‘국치’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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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과 함께 ‘국치’를 기억하자

-『병합기념 조선사진첩』





1910년 8월 22일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비밀리에 조인했다. 병합조약은 일주일이 지난 8월 29일 순종의 칙유를 통해 내외에 공포되었고, 이로써 대한제국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10년 12월 4일 신반도사에서 발행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이다.

사진첩을 발간한 신반도사는 서언에서 “조선의 병합은 동양평화의 기초를 공고히 하고 반도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으로 특히 원만하고 평화롭게 이 대사 병합의 해결을 본 것은 진실로 주목할 만한 일로… (병합의) 성사를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간행한다고 밝혀 ‘조선병합’을 ‘경축’하는 의미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취지로 발행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은 총 100쪽에 걸쳐 다양한 사진 자료를 담고 있는데, 강제병합의 주역들인 일본과 조선의 인물 사진 170여 장, 특별한 행사의 인물단체 사진 20여 장, 경성의 모습 44장, 지방의 명소와 고적 사진 86장, 조선의 풍속 사진 42장 등 약 400장의 사진을 싣고 있다.


‘조선’ 사진첩임에도 불구하고 첫머리에 실린 사진은 메이지(明治) ‘천황’ 부부의 초상과 그 후계자인 요시히토 ‘황태자’ 일가족이다. 황실에서 왕가로 전락한 조선왕실 일가는 다음 순서로 밀려났다. 또한, 조선총독부 최초 관보와 대한제국 최종 관보,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를 함께 실어 조선의 병합은 ‘원만하고 평화롭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첩에는 수많은 인물 사진이 삽입되어 있는데 병합 당시 일본 내각 대신들, 통감과 부통감, 대한제국 내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 병합조약 조인실과 통감부 수뇌, 조선주차군사령관 등 일본주요 관리와 이완용·박제순·민병석·고영희·조중응·김윤식 등 ‘병합’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던 친일 인사들의 사진이 줄지어 나온다.


특이한 점은 조선과 관계된 일본의 주요 관리들 사진 아래에는 이름뿐만 아니라 ‘왕비사건 당시의 공사, 자작 미우라 고로’, ‘강화도사건 당시의 함장, 이노우에 요시카’, ‘제물포조약 당시의 전권대사, 쿠로다 키요타카’ 등과 같이 사건 당시의 직위도 적어 각 인물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인물사진뿐만 아니라 요시히토 일본 ‘황태자’의 한국 방문 시 일본의 주요 인물과 한국의 각부 대신들이 함께 찍은 「일본황태자 도한기념사진」, 의병항쟁을 저지하고 일본의 시정개선을 과시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추진한 행사인 ‘순행’을 촬영한 「순종 순행기록 사진」 등 주요 행사의 기록 사진도 실려 있다.


사진첩의 편집자인 스기 이치로헤이(杉市郞平)는 청일·러일전쟁에 참여한 군인 출신인데, 1905년 인천 헌병분대장으로 조선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소집해제 이후에는 아예 조선에 머물며 조선 일일신문사 사장과 잡지사인 신반도 사장을 하면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을 간행하였다. 또한 식민지 공포정치의 산실인 헌병경찰의 활동이 담긴 사진첩 병합기념 조선지경무기관󰡕의 편집자 역시 스기 이치로헤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의 사진 중에는 다른 사진첩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진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강제병합을 전후하여 발행된 한국병합기념첩일한병합기념 대일본제국조선사진첩한국사진첩 등에서 상당수 같은 사진이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명사사적풍속사진첩처럼 표제만 다를 뿐 내용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일제의 조선 ‘보호국화’가 진행되면서 일본인에 의해 조선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사진이 생산되었으며 ‘병합기념’을 목적으로 사진첩을 제작하여 ‘병합의 성사를 축하’했다.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온갖 기념자료를 만들어 보급하고 각종 행사를 주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자료관을 찾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관람객에게 ‘광복절’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당연한 걸 왜?’라는 표정으로 ‘1945년 8월 15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가 나라를 빼앗긴 ‘국치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머뭇거리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망명 독립지사와 동포들이 끼니를 거르면서 가슴에 새기고자 했던 치욕의 망국일-국치일은 이제 잊혀진 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병합기념 ‘한국’사진첩이 발행되지 말란 법이 없다.




▒ 글쓴이: 민족문제연구소 강동민 자료팀장

  



(이 글은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 2016년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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