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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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카드뉴스] 기술자들


고문왕으로 악명을 떨쳤던 친일경찰 노덕술과 하판락.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은 이들을 재등용하였으며 그 계보는 중앙정보부와 대공분실로 이어집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자세히 보기)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1894년 동학농민군이 봉기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조선정부가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하자 일본은 거류민 보호명목으로 인천에 군대를 상륙시켰다. 이어 그해 7월 23일 경복궁에 난입해 ‘국왕생포작전’을 벌였다. 왕궁 점령 이틀 후 일본은 아산만의...(자세히 보기)

기증자료 소개

심정섭 연구소 지도위원 도서류 총 24점 기증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46번째로 소장자료를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이번 자료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발행된 잡지입니다. 이 중 일본통신대학법제학회에서 발행한 『法制법제』1944년 3월호는『소국민』,『황민』을 간행하고 황민화 정책의 충실한 나팔수로서 역할을 하고 있던 경성일보사를 소개하고 있어 전시체제하 언론정책을 살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자세히 보기)

기부자 소개

2016년 9월 역사관 건립기금을 내신 분들

-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장 전종훈 신부가 진도 팽목항에서 거주하던 집을 정리하면서 보증금 500만원을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써달라고 보내왔습니다.
- 독립운동가 김남곤 선생의 후손인 연구소 김분희 회원이 지난 5월 증조부의 1945년 민간인학살에 대한 국가보상금 일부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으로 보내왔습니다
- 익명을 요청한 시민이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1,000만원을 약정해 200만원씩 나누어 보내주고 있습니다.
- 연구소 김영석 회원, 류정협 회원 가족이 개인이름으로 모두 역사관 건립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 진주에 사는 김현수 학생이 저금통에 용돈을 모아 역사관 기금으로 써달라며 14,900원을 보내왔습니다.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총 310명이 62,776,333원을 역사관건립기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 전체모금액(2011. 1. 1~ 2016. 9. 30) 859,850,331원

(9월 후원하신 분들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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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가 백척간두에 서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치권력과 수구언론 극우단체들에 의해 시작된 조직적 역사왜곡은, 현 정권 들어 이제 전면적인 역사변란의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화의 초석이 놓여졌다 / 일본군‘위안부’는 끌려간 것이 아니다 / 김구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다 /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다 / 백선엽은 조국을 구한 전쟁 영웅이다 / 박정희는 나라를 일으킨 민족 지도자다
이렇듯 과거 회귀세력들의 역사인식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만 합니다. 이들이 식민지배와 독재체제를 미화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바로 그들이 일본제국주의와 독재정권 하에서 대를 이어가며 부와 권세를 독점해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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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3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고, 1947년 6월 이후인 후반기를 통상 ‘남조선 과도정부’라 부른다. 점령 전반기에 군정은 민족 주체성을 탈색시키기 위해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건국준비위원회를 분해시켰고, 친일파를 앞세워 진보적인 민주통일 세력의 날개를 꺾었다. 이런 바탕에서 세운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은 군정의 자문역할을 넘어서지 못했다.
입법의원이 제정한 친일파 숙청법(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조례)이 그 한 예이다. 1946년 대구 10월 항쟁이 친일파 때문에 일어났기에 1947년 7월2일 입법의원은 이 법을 통과시켰지만 미군정은 거부했는데,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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