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실/백년전쟁'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3.05.24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극우세력의 공격에 법적 대응 착수 (2)
  2. 2013.05.24 이승만의 친일발언이 실린 ‘워싱턴포스트’는 조작되었나? (3)
  3. 2013.05.10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7)
  4. 2013.05.10 현 사태를 바라보는 연구소의 시각과 대응방향
  5. 2013.05.10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비난에 대한 반론 (1)
  6. 2013.05.10 <백년전쟁> 고소사건에 대한 역사단체 공동성명
  7. 2013.01.22 드디어 역사다큐 백년전쟁이 TV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20)
  8. 2013.01.10 백년전쟁 스마트폰으로 직접 내려받는 방법 (2)
  9. 2013.01.02 백년전쟁에 관한 바깥소식과 안소식 (10)
  10. 2012.12.18 백년전쟁!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버전 개봉! 재능기부 정재민! (7)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극우세력의 공격에 법적 대응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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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극우세력의 공격에 법적 대응 착수

고문변호사 자문회의 개최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일 오후 3시 고문변호사 자문회의를 열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극우세력의 조직적 음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고문변호사단 대표인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을 비롯하여 김희수 이덕우 이민석 이석태 장완익 정철승 최병모 등 8명의 고문변호사가 참석하였으며, 임헌영 소장, 조세열 사무총장 등 연구소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박재승 대표는 인사말에서 “연구소에 대한 마녀사냥이나 5.18 정신 훼손 등 극우세력의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인 역사훼손이 도를 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종편 방송 등의 역사왜곡을 방치할 경우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이 무너질 것”이라 경고했다.

참석자들은 ‘백년전쟁’을 둘러싼 쟁점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이승만 측의 사자명예훼손소송 고소장 분석, 연구소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사례 보고를 들은 뒤, ‘백년전쟁’과 연구소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등 각종 도발에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날 회의에서는 ‘백년전쟁’과 연구소 관련 2개 전담팀을 구성하였으며, 향후 고문변호사단을 중심으로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려 역사운동의 차원에서 소송에 임하기로 결의했다.  

 

<‘백년전쟁’ 보급과 극우세력의 공격>

12.09.28.  LA 엠팍극장 시사회를 시작으로 12.15.까지 미주 8개 지역 15회 상영

12.11.26.  국내 시사회(서울 아트시네마) 개최

12.11.28.  유튜브 게시 : 2013.5.3. 현재 약 350만 뷰 추산

12.12.07.  팟캐스트 정규재TV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고’ 유튜브 게시(김용직 성신여대교수 출연)

13.01.15.  조선일보 오피니언 특별기고?류근일 칼럼 ‘100년의 전쟁’

13.01.17.  대구시교육청, 방학 보충학습 중 <백년전쟁> 상영 이유로 교사 징계 착수

13.01.24.  뉴데일리 등 수구언론, 국사편찬위의 ‘대한민국사’ 편찬방침에 대해 편찬위원에 <백년전쟁> 인터뷰 학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며 공격

13.02.13.  팟캐스트 정규재TV ‘사진조작의 달인들’ 등 유튜브 게시(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류석춘 이승만연구원장 출연)

13.02.18.  신동아 3월호 <역사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 백년전쟁 악의적 보도

13.03.13.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등 청와대 원로회동에서 국가안보 운운하며 ‘백년전쟁’ 비판

13.03.14.  제25회 이승만포럼, 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백년전쟁’을 해부한다? 발표

13.03.15.  TV조선, 백년전쟁이 이승만을 왜곡했다고 주장

13.03.16.  조선일보, 사설 <현대史를 ‘총칼 없는 백년 전쟁’으로 몰아가는 좌파>를 시작으로 백년전쟁 공격, 여론몰이 본격화

뉴데일리, 박성현 논설위원 / 김효선 이승만포럼사무총장의 백년전쟁 비난 칼럼 게재

13.03.17.~  종편, 조중동 등 백년전쟁 공격 기사 쏟아냄  

13.04.15.  이승만기념사업회, 5개 중앙일간지(조선·중앙·동아·국민일보, 한겨레)와 매일경제 오피니언란에 ‘백년전쟁세력에 전면전을 선포한다’며 소송비용과 이승만기념관 건립기금 명목으로 모금개시 5단 광고 게재(광고비 2억여 원 추정)

13.04.16.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업무보고 질의응답에서 백년전쟁과 관련해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동영상은 국민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답변

13.04.20.  동아일보, 토요판 1,2,3,4면 배정, ‘패자뿐인 역사전쟁’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보도 공세 김문수 경기도지사,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언급한 뒤 백년전쟁과 관련해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교묘하게 잘 만든다’라고 발언

13.04.24.  중앙언론사 편집국장-보도국장단 청와대 오찬간담회에서 뉴데일리 편집국장, 백년전쟁에 대해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고 부정’했다고 언급하면서 반박 동영상을 보겠느냐고 질문.

대통령, “보내주면 잘 보겠다” 답변

13.04.25.  새누리당 유승우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백년전쟁 대응에 대해 질의. 정홍원 국무총리 “볼 기회가 없었다” 답변

13.04.26.  건국이념보급회와 뉴데일리, 이승만포럼 공동제작, ‘생명의 길 : 제1편 이승만시대, 인격살인은 국사가 아니다’ 유튜브 공개         

13.05.02.  이승만 유족, 백년전쟁 제작자 3명 사자명예훼손으로 검찰 고소(소송대리인 고영주)

13.05.03.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권정훈) 배정

13.05.09.  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 관련 기자회견 개최

13.05.11.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해킹 피해 발생, 경찰청 수사의뢰

13.05.13.  동대문경찰서 해킹 피해자 조사

13.05.20.  민족문제연구소 고문변호사 자문회의 개최

13.05.21.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출연 이봉규 전 데일리안 TV본부장, 막말 인신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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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친일발언이 실린 ‘워싱턴포스트’는 조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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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화 (민족문제연구소 기록정보팀장)

백년전쟁 Part1 ‘두 얼굴의 이승만’ 편은 이승만이 진정한 독립운동가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숱한 반증의 하나로 이승만의 친일 성향 발언이 담긴 워싱턴포스트 1912년 11월 18일자 기사를 인용했다.

▲ [캡쳐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화면에 나와있는 자막은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이승만의 발언이다. 그는 “3년도 지나기 전에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 … 전차 레일이 깔리고, 도시마다 전기 불빛이 들어오고, 공장과 백화점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3년이란 한일 강제병합 이후 3년으로 해석되므로 이러한 발언은 일제가 주장했고 뉴라이트가 계승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본이 낡은 조선을 발전 시킨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은 바로 이 부분을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논쟁은 뜻밖의 영역에서 터져 나왔다. 사료의 역사적 의미나 해석에 대해서가 아니라 조작 여부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승만 쪽은 워싱턴포스트의 해당 기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팟캐스트 <정규재TV>에 패널로 참석한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은 “백년전쟁은 있지도 않은 기사가 있는 것처럼 뽀샵으로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뒤이어 건국이념보급회 김효선 사무총장은 자신이 “이미 없다고 말했는데 왜 굳이 찾아보냐”며 핀잔주듯 박성현의 주장을 거들었고, 또 다른 패널인 류석춘 연세대교수는 “혹시 못 찾은 것 아니냐”며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수긍하는 듯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덧붙여 김효선 사무총장은 “워싱턴포스트 본사뿐만 아니라 미국회도서관에도 해당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 문제의 발언은 백년전쟁 관련 기자회견 프리젠테이션 ‘논쟁3’에 속하며 위 동영상 시작후 6분경에 나옴.

이 와중에 박성현은 뉴데일리 주필이라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며 재차 문제의 워싱턴포스트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규재TV>를 통해 엽기적인 폭로가 이루어진 뒤 인터넷 공간은 민족문제연구소와 백년전쟁을 “조작의 달인”, “뽀샵민족주의”라 비난하는 수많은 기사와 게시물, 블로그 포스팅, 트윗으로 도배가 되었고, 여기에 보수일간지와 종편방송이 가세하면서 점차 이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갔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수구언론들이 이를 기사화하여 확대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여론조작이었다.

이 같은 수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혈서 기사(「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滿洲新聞> 康德 六年(昭和 十四年) 三月 三十一日, 日本 國會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가 조작이라는 주장으로, 지금도 인터넷에 대대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박정희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분명히 결론이 났음에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시민들은 극우세력의 상습적인 선동임을 한 눈에 알아채고 이를 무시해 버리지만 의외로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백년전쟁에 대한 성토장이 되다시피 하고 용인하기 힘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연구소는, 지난 9일 뉴데일리와 이승만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환경재단의 레이첼카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백년전쟁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원로회동에서 “백년전쟁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의해야 한다”고 고자질하여 연구소에 대한 마녀사냥을 촉발시킨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비롯한 이승만 쪽 관계자 10여명도 대범하게(?) 참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기자회견 중간 이승만 측의 주장을 재반박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는 문제의 신문자료 이미지 영상도 공개됐다.

▲ 1912년 11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지 관련기사 (해당기사는 유료임). [캡쳐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자료실장은 브리핑에서 “우리 연구소는 현존하는 자료는 반드시 찾는다. 또 입증자료 없이 주장하지 않는다. ‘백년전쟁’을 비난하는 쪽에서도 제발 증거를 제시하면서 반박해 달라”고 항변했다.

연구소가 기자회견을 통해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자, 자신의 이름을 걸겠다고 했던 박성현 주필이 서둘러 뉴데일리에 칼럼을 썼다(2013.5.9. 22:53). 제목은 “민문연과 역사업자들, 영어공부 다시 하고 덤벼!”이다. 유치한 내용이 대꾸할 가치도 없는 글이지만, 칼럼의 중간쯤 이런 황당한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전략) 오늘 <민족문제연구소>가 뿌린 유인물에는 [실체적 근거]가 있는 듯 보이는 항목이 단 하나 있다. 이 항목은 내가 <정규재TV>에 출연해서 『백년전쟁』을 비판했던 발언을, <민족문제연구소>측이 다시 공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좀 내용이 길고 복잡하지만, 자세히 다루어 보자.『백년전쟁』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만든 <생명의 길>에서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그 자세한 사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규재TV>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백년전쟁>은 우남 이승만이 1912년 11월에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를 하면서, [한일합방 후 3년 동안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승만은 그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내 이름을 걸어도 좋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에 대해 오늘 기자회견 장에서, “<뉴데일리> 박성현 주필이 자기 이름을 걸어도 좋다는데, 정말 이름을 걸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비아냥거렸다. 좋다. 이름을 걸겠다. 그러면 <민족문제연구소>는 무엇을 걸을 텐가?

착오가 있었다고 인정하면 그만일 터인데 왜 이렇게 동문서답 좌불안석일까. 우선 박 주필에게 그렇게 떠벌리는 얄팍한 수준의 영어 이전에 국어공부를 제대로 하기를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명색이 주필인데 억지 논리를 세울지라도 사실에서 출발하는 기본은 지키기를 바란다.

그가 <정규재TV>에서 발언한 내용은 분명히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없다”이다. 덧붙여 40달러나 들여 워싱턴포스트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살펴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증거를 제시하자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이 시기에 이승만은 그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내 이름을 걸어도 좋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정규재TV> 출연 당시 그 기사를 보았고 내용과 정황에 대해 언급한 정도였다는 해괴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뭇사람들은 자신의 신념 약속 결백 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나 사랑하는 가족 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당사자의 이름 석 자를 거는 행위는 실명으로 명예를 건다는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자못 비장한 결단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자신의 이름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막말을 서슴지 않는 다수의 극우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 주필에 이어, 얼마 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다음 날 들통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이름 석 자를 걸었다. 참을 수 없는 ‘이름’의 가벼움을 지켜보면서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기억할만한 대사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다. “호랑이는 가죽 땜시 ×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진다.”

<통일뉴스>20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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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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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 남북관계마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염려하고 있는 이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은 떼거리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공언하는 등 우경화노선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이제는 총리가 침략전쟁을 부인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그런데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과거사 인식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는 당당하게 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3년 대한민국의 역사시계도 일본에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거꾸로 돌고있기 때문입니다.


 

MB정권은 지난 5년 내내 역사왜곡에 몰두했습니다. 집권 초기부터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키더니 역사교과서 개악, 대한민국박물역사관 개관 등 전방위적으로 역사파괴를 일삼았습니다.

친일파를 부활시키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의회민주주의를 압살하다 4월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 16쿠데타와 10월유신 두 차례의 정변을 일으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종신총통을 꿈꾸며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지도자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세력들이 일본의 역사왜곡을 뺨치는 주장들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폭압정치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개발독재미화론이 조직적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산업화가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해괴한 논리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가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그들의 고질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아가 일부 뉴라이트 학자들은, 통일조국과 문화입국을 간절히 소망했던 백범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들은 강제연행된 것이 아니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폄훼하고 친일세력과 반민주세력, 독점재벌을 옹호하는 거대한 역사조작이 치밀한 계획아래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역사와 교육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과거회귀세력들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그들의 우상에 대한 숭배까지 강요하고 있습니다. 사월혁명때 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끌어내려진 이승만 동상이 남산에 버젓이 자리 잡았습니다.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열고 곳곳에 동상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독립군을 때려잡던 악명높은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 백선엽·김백일의 기념물도 세워졌습니다. 이들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공중파를 타고 널리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책동을 그대로 두고 본다면, 광화문 대로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이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와 교육이 오염되고 있는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진실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자임해 왔습니다. 작년 11월 첫 편을 선보인 역사다큐 ‘백년전쟁’시리즈 제작은 거대한 역사왜곡에 맞서 정직한 역사를 지키기 위한 연구소 나름의 작은 몸부림이었습니다. 정권과 극우세력 수구언론이 합세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데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제작이 완료되어 일차 공개한 ‘두 얼굴의 이승만’과 ‘프레이저 보고서’는 합하여 약 350만뷰를 기록하는 놀라운 호응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열렬한 반응이었습니다. 근현대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 정권이 들어선 뒤인 지난 3월 13일 청와대 원로 회동을 계기로 느닷없이 연구소에 대한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음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축은 족벌언론과 극우단체 친일독재세력의 후손들이었으며, 여기에 청와대와 정부기관 여당 국회의원까지 가세하여, 연구소를 대상으로 그야말로 마녀사냥식 난도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 소송을 못한다던 자들이 최근 억대의 거액을 들여 7대 일간지에 광고를 싣고, 소송비용을 빙자하며 이승만기념관건립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작년 시사회 이후 무려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이승만의 양자가 느닷없이 연구소 관계자들을 ‘사자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는 사변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유족의 고소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 배경에 의구심을 가지고 추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반하장도 정도가 있습니다. “종북세력”이니 “박정희혈서를 조작하였다”느니 “정치권과 결탁했다”는 등 전혀 근거없는 허위사실을 상습적으로 유포하고 욕설과 협박을 일삼던 세력들이 합심하여 소송을 부추긴 저의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승만 박정희 추종세력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성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독립전쟁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전파하고 있는 연구소야말로 그들에게 최대의 장애이며 따라서 우선적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집요하고 맹렬하게 연구소를 공격함으로써 연구소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한편으로, 이승만기념관과 현대사연구원이라는 엄청난 반대급부를 얻으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현대사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그들만의 논리를 세우려합니다. 목표는 이승만 박정희 정통론의 확고한 정착이라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겪고 있는 퇴행적 역사인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직시해주십시오. 일본의 과거사 부인은 천황제파시즘을 용인한 전후처리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끊임없는 역사왜곡도 친일독재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후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난 100여 년간 우리나라는 질곡의 근현대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를 잊는 자, 반드시 그 과오를 되풀이한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있습니다.

역사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적 과제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세대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국내외의 역사도발에 맞서 전력을 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만 회원들과 더불어 정직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연구소가 권력의 부당한 탄압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계속 성원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

 

 

[PDF 내려받기]

▲ 이승만, 그는 과연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나 

역사다큐 ‘백년전쟁Ⅰ- 두 얼굴의 이승만’ 관련 기자회견 자료

 

▲ 독립운동가 이승만, 그 신화를 벗긴다 

역사다큐 ‘백년전쟁Ⅰ- 두 얼굴의 이승만’ 관련 자료집  
  
▲ 기자회견 프리젠테이션 PPT파일  
 



 팩트TV : 기자회견 중계(2013.5.9 12:16 생중계 종료, 재방송중)


 주권방송 : 기자회견 중계(2013.5.9 12:16 생중계 종료, 재방송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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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태를 바라보는 연구소의 시각과 대응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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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태를 바라보는 연구소의 시각과 대응방향

 

연구소가 사자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당한 데 대한 입장은

당혹스럽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판을 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인가. 공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 적절한 지도 의문이다. 우리 주장에 설득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큐의 내용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나 언론보도나 저술을 통해 이미 공개된 사실들이다. 입증자료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으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이렇게 압박해도 되는 것인지 매우 유감스럽다.

고소장이 공개되었던데, 소송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피고소인이 소장을 받아보기도 전에 ‘친북인명사전’을 만들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극우단체가 먼저 인터넷에 공개했다. 피고소인의 실명까지 실었는데 고소인의 대리인인 고영주 변호사가 바로 그 단체의 대표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고소장을 검토했는데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고 상당 부분이 인터넷 극우 사이트의 저질 기사로 채워져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객관적 증거가 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연구소는 고문변호사단(대표 박재승 전 대한변협회장), 민변 등과 협의하여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하려한다. 그리하여 이번 소송은 물론 그 외 부당한 탄압에 대해 총체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소송에 배후가 있다고 보나

가능성이 농후하다.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도 그렇지만 소송비용도 없다던 자들이 갑자기 억대의 거금을 들여 광고세례를 퍼붓는 것도 의아하다. ‘민사소송으로 이들(민족문제연구소)의 기둥뿌리를 뽑아야하고, 형사소송으로 이들을 사회와 격리시켜야한다’거나, ‘북쪽에 김정은 남쪽에 백년전쟁세력’ ‘종북좌파 척결’ 등 섬뜩한 광고 문구에 소송의 목적이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 있다. 연구소를 소송과 색깔론으로 몰아 말살하겠다는 것이다. 또 ‘백년전쟁’을 빌미로 연구소를 제물로 삼아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야욕도 감추지 않고 있다. 악랄한 수법과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할 지경이다.

정권 차원의 개입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백년전쟁’에 대한 국가안보 차원의 대응을 주문한 청와대 원로회동이 있고 난 뒤, 일부 언론과 극우단체들이 광란적인 마녀사냥을 계속하고 있지만, 권력의 개입을 의심하게 하는 여러 정황들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가 국사편찬위원장 등 정부산하 기관장에게 대처를 지시하였으며, 엉뚱하게도 대정부질의에서 여당 의원이 안전행정부장관과 총리를 대상으로 사실상의 탄압을 요구했다. 한 시민단체의 역사문화운동을 표적삼아 과거회귀세력들이 총력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구소는 이를 시민운동과 학술/문화/예술 부문의 자유로운 활동을 압살하려는 시도로 간주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백년전쟁’이 편향된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백년전쟁은 공과를 함께 다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다큐가 아니다. 독재자들을 미화 찬양하는 최근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또 자신들은 이승만 박정희의 치부를 애써 외면하면서, 비판자들에게는 공과를 균형있게 다루지 않았다고 공박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그렇다고 연구소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소홀히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예를 들어 친일인명사전 발간 때도 똑같은 비난을 받았으나 사실은 정반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친일인명사전에는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 임헌영 소장의 스승, 백낙청 지도위원의 부친, 강만길 지도위원의 스승, 이윤 전 운영위원의 조부 등의 행적이 가감없이 수록되어 있다. 연고자들에게도 예외없는 연구소의 엄정함은 오히려 가혹하다는 평가마저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국의 예언자 이승만 1편 ‘인격살인은 국사가 아니다’에 대한 평가

언급할만한 가치도 없다고 본다. 합리적 반박이 아니라 ‘두 얼굴의 이승만’ 내용을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강변하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보수언론인 동아일보(13.4.20.)조차 쟁점 10문항의 팩트 여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서 5항목을 대다수 긍정, 4항목을 논란으로 분류하면서도 대다수 부정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정리했다.

백년전쟁과 연구소를 공격하는 세력은 누구이며 왜 이렇게 집착하나

수구족벌신문과 종편, 극우인터넷언론이 앞장서고,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이 이론적인 뒷받침을 하며, 정권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승만 박정희 추종세력들이자 친일독재비호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상층부에는 혈연 학연 혼맥 등으로 과거 친일파와 연결되거나 독재정권의 수혜자로서 전력이 있는 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선배세대를 모욕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이야말로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 탄핵되었으며 사월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오히려 국가의 기본이념인 헌법정신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를 파괴한 독재자를 미화하는 세력들이다. 우리들은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선배세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본받고자한다. 또 어려운 시기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앞 세대의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역하면서 온갖 특권을 누린 기성세대까지 존중하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백년전쟁’이 대선용 급조 다큐라는 지적이 있는데

연구소의 관심 분야는 역사이지 정치가 아니다. 연구소는 1991년 설립 이후 일관되게 정치와 선을 그어왔으며 상근자들의 정치활동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18년간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에 대해서도 특정인을 음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했다. ‘백년전쟁’은 연구소가 2011년 하반기에 기획한 근현대사 진실 찾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20세기 전체를 조망하는 시리즈물로 제작되고 있다. 연구소가 이승만 박정희 다큐를 우선 제작하게 된 이유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작업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역사파괴를 호미로 막아보고자 했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좌파단체에서 거액의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비난에 대해서

4?9통일평화재단의 공모사업에 응모하여 5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을 뿐이다. 마치 거대한 배후세력이라도 있는 듯이 포장하는 일은 전형적인 공안수법의 하나이다. 화면 도입부에 후원을 표기한 것은 지원 규모와 무관하게 박정희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인혁당 8인 열사에 대한 추모의 뜻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 투입된 제작비는 회비로 충당하는 인건비가 전부이다.

향후 ‘백년전쟁’ 제작일정은

현재 이승만 2부를 제작 중이다. 인적?물적 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감독과 PD 단 두 사람이 작업을 전담하고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연간 두 편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공개모금을 통해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를 권유하고 있지만 잦은 모금이 폐를 끼칠 것같아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소에 가해진 위협의 구체적 사례는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종편이나 극우 인터넷사이트들은 근거 없는 사실들을 무책임하게 유포시키고 있다. 종북세력 운운은 점잖은 표현이고 연구소를 말살하라는 선동까지하고 있다. 청와대 원로 회동 뒤 일부 언론들이 자극적 보도를 연이어 내놓던 시기에는 폭파?방화 위협과 욕설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녹음용 전화기까지 새로 설치했다.

법적 대응 계획은

연구소는 인터넷 공간의 자유로운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구소나 구성원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때는 법적 대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혈서가 조작이라고 주장하거나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치인을 연계시키는 등의 행위는 연구소의 신뢰도와 정치적 중립성을 현저히 손상시키고 있다. 특히 임헌영 연구소장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비방은 인내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자숙하지 않으면,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음해에 대해서는 단호히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둔다.

공동토론회에 대한 방침은

토론을 제안했던 시대정신에서 연구소가 마치 토론을 기피하는 듯 언론플레이를 펼친 것을 잘 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부족해 보인다. 어떤 곳은 한가한지 모르겠지만 연구소는 연구소 나름의 분주한 일정이 있다. 연구소가 토론을 기피해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닐 의사도 없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모든 토론에 응한다는 것이 연구소의 기본 방침이다.

 

 ▲  성명서, 논평 → (상세보기)

 ▲  역사왜곡 일지 → (상세보기)

 ▲  연구소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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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비난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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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비난에 대한 반론

 

이승만 지지자들은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이 공개되자 ‘건국대통령에 대한 모독’, ‘허위사실과 조작 그리고 왜곡’으로 가득 찬 내용이라면서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성을 잃은 듯한 원색적인 공격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라 할 이승만 기념단체들은 물론 조선일보/뉴데일리/종편방송 등 수구언론과 보수단체까지 전면적으로 가세하고 있다. 그러나 폭언에 가까운 형태로 몇달째 계속되고 있는 이러한 비난들은 대부분 사실에 어긋나거나 백년전쟁이 제기하는 내용과 무관하다고 판단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당초 이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협박 또는 광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기대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또 이승만 지지세력들이 백년전쟁을 반박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나선 이상, 각자의 입장을 전파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정은 시민들의 몫으로 돌리면 될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연구소가 불가피하게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연구소에 대한 공격은 색깔론이나 인신공격 수준이 아니라 폭파 방화를 거론하는 테러 위협에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국가안보차원의 대처를 주문한 청와대의 원로회동 이후 이 같은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광기마저 띠고 있다.

민간이 제작한 역사다큐를 둘러싸고, 청와대가 정부 산하 기관장들을 불러 대처를 지시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압력용 대정부 질의를 하고,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만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현대사 편찬위원들이 좌익의 굴레를 쓰고 축출당하고, 이를 방영한 R-TV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현상들을 목도하면서, 누구든 지금이 이승만 시대인지 박정희 유신시대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권력까지 나서 민간의 역사문화운동을 이렇게 옥죄는 것이 과연 정상인지 묻고 싶다. <백년전쟁>을 빌미삼아 과거 이승만시대의 광기어린 ‘빨갱이 사냥’이나 ‘유신체제의 폭압’을 연상케 하는 퇴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부족해서 이승만 지지세력은 ‘민사소송으로 기둥뿌리를 뽑고 형사소송으로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참으로 듣기 민망한 명목으로 소송비용과 이승만기념관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모금 광고를 게재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씨는 백년전쟁 제작자측을 형사고소했다.

이명박정부 이래 한국근현대사 전공자들을 싸잡아 좌익으로 매도하면서, 권력과 수구세력의 입맛대로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폭거가 일상화하고 있다. 상식적인 비판마저 공안적 대응으로 압살하려는 미증유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정의의 실종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는 <백년전쟁>의 제작 취지와 기본 내용은 물론 이승만지지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또는 해명과 함께, <백년전쟁>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일제강점기 이승만 관련 사료와 연구성과 등을 주제별로 정리해 기자회견의 형식을 빌어 그 내용을 공개하고자 한다. 

 

 쟁점1 미국 박사학위 취득과 관련해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박사학위 취득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묘사했다. 이승만의 박사학위가 엉터리인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승만박사의 논문은 프린스턴대학에서 출판되었고, 저명한 학자가 여러 번 인용할 만큼 가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불과 5년 5개월 단기간에 미국 유수의 대학 석·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의아해 한 부분으로, <백년전쟁>은 이 대목을 이승만에 대한 미국 개신교계의 전폭적 지원과 자신의 집요한 노력이 결합한 것으로 설명했다. 목적을 향한 놀라운 집념이 학위 취득과정에서도 확인된다는 의미였다. 논문 내용은 다루지 않았으므로 논문의 수준은 다큐와 무관한 지적이다.

 

 쟁점2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문제

→ (상세보기)

▲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은 미국 명문대학 박사학위 취득자이자 젊은 혁명가로서 이미 존경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런 적도 없다.

▲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이승만이 불굴의 독립운동가로서 미주 한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가 당시 한인사회에 떠돌았던 ‘일제에 의한 감옥 후유증’이었으며, 이승만 또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당시 이승만을 만났던 다수 미주 한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확인된다.

 

 쟁점3 친일로 오해할만한 이승만의 대일관 → (상세보기)

▲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호놀룰루 스타블러틴지의 기사 내용은 이승만이 ‘일본 국가에 대한 반대를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뜻이 아니라 ‘일본인에 대한 인종 혹은 민족적 증오를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백년전쟁>은 신문기사의 부분적 인용과 악의적 편집을 했다. 또 워싱턴포스트 기사(1912.11.18)에서 이승만의 인터뷰 중 : ‘지난 3년동안’을 <백년전쟁>에서는 ‘한일합방 이후’라고 해석했는데 틀렸다. 이는 기독교 및 YMCA에 의한 자조자립운동의 전성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호놀룰루 스타블러틴지의 기사는 이전 ‘이승만이 반일교육자다’라는 보도에 대한 이승만의 반박 기사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반일 감정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 일본 신문들은 나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말기 바란다”(호놀룰루 스타블러틴)라는 내용이다. 이 신문은 기사 제목을 “Dr.Rhee denies that korean school teaching ‘anti-japanese’”로 뽑았다.

워싱턴포스트지 이승만 인터뷰 내용은 “3년도 지나기 전에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이다. 당연히 한일 강제병합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이며, 이어 “전차 레일이 깔리고, 도시마다 전기 불빛이 들어오고, 공장과 백화점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미국 개신교의 지원에 따른 조선의 발전상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

요컨대 1910년대 우호적 미일관계 아래 이승만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함으로써 ‘친일파’로 오해받을 수 있는 위험한 발언도 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일 뿐이다.

 

 쟁점4 하와이 교민사회의 갈등과 일본군함 ‘이즈모호사건’→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1918년 하와이 법정에서 이승만이 박용만에 대해 ‘일본군함 이즈모호가 입항하면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운 위험한 인물’이라고 밀고하는 증언을 한 적이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당시의 주요 사료인 <신한민보>와 <(국민회)공고서>, ‘재미한인사’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재미오십년사>(김원용)에도 나오는사실이다. 이후에도 이승만이 다른독립운동가를 공산주의자등으로 모함했다는 기록이나 증언, 연구도 있다.

 

 쟁점5 무장 의열투쟁을 부정한 이승만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백년전쟁>은 외교독립노선을 부정하고 무장독립·의열투쟁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승만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장봉기론에 맞서 장기적인 외교독립론을 주장했던 것으로 노선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독립운동 방략으로 전쟁, 의열투쟁, 외교투쟁, 문화운동 등 여러 유형이 있기 때문에 외교노선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는 없는 게 상식이다. 다만 이승만의 외교노선이 유달리 무장투쟁, 의열투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은 학계의 상식에 속하며 <백년전쟁> 또한 이를 거론한 것이다

 

 쟁점6 독립운동자금을 둘러싼 상해임정과의 갈등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독립운동 노선투쟁의 일부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임정 대통령 시기 이승만이 대통령 직함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고 그 직위에 집착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는 재정부장의 고유 권한인 재정문제(특히 미주 한인사회의 재정)까지 자신이 직접 관할함으로써 임정요인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독립자금 모금 중단하라. 정부에서 걷은 돈도 다 나에게 넘겨라.”)

더 큰 문제는 임정 대통령이 된 후 미주 한인독립모금은 대부분 이승만의 외교활동이나 구미위원부와 관련해 사용되었다. 또한 1924년 상해 임정 개혁파가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하려 하자 임정으로 보내던 소규모의 독립운동자금마저 끊어 버렸다. 이는 이승만의 독단적 행정 처리와 재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한 갈등이지 노선투쟁으로일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쟁점7 복잡하고 이상한 부동산 거래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교육운동을 헌신적으로 전개했으며, 그 결과 8년제 남녀공학 기숙학교인 한인기독학원이 탄생했다. 이승만은 영수증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재정보고서도 투명하게 공개했다. 횡령은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이승만 측은 이승만의 부동산 구입자금의 출처, 연8% 대출이자의 조달과 교육시설 운영자금, 부동산 매매과정에서 발생한 차액 등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자금들의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자료를 하나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이승만은 영수증을 잘 모을 정도로 알뜰했고, 대출금 등은 학교에 모두 투자했다는 막연한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이 국민회를 장악한 후 회계보고를 하지 않아 한인사회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공적성격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그 대출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회계기록은 없다면, 그 재정을 운용한 자는 당연히 횡령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수는 없다 하겠다.

 

 쟁점8 이승만과 김노디의 Mann법 위반 문제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과 김노디는 무고하게 고발당했고, 무혐의 처리된 사건을 ‘뽀샵’과 기소를 통해 불륜으로몰아갔다. 이는 이승만과 김노디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인격살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1. 이승만과 김노디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한 적 없다.

2.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의문 제기

- 이승만과 김노디는 맨액트 위반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 즉 함께 주 경계를 넘는 장거리 여행을했다.

-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 추방절차에 돌입하는 허가를 내렸으며, 미국 이민법에 의해 추방절차가 진행되었다.

- 추방을 전제로 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위증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을 하고 진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법적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증을 했다.(만약 위증이 밝혀졌다면 형사처벌까지 받은 후 추방됐을 것이다.)

3. 풍자를 위한 표현기법

- 이승만과 김노디의 이미지는 1920년대 시기 두 사람의 사진을 합성해 만든 패러디물로 단지 풍자를 위한 표현기법일 뿐이다. 일종의 포토 몽타쥬로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이다.

 

 쟁점9 이승만에 대한 CIA문서의 평가에 대해 → (상세보기)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백년전쟁>은 이승만에 대한 CIA문서를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면서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라는 부분만 발췌해 확대해석했다. 이 문서는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과는 절대로 거래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심각한 이승만의 권력욕을 보여주는 사례로, CIA조차 이승만을 태생적 반공주의자로 신뢰한다는 내용과 함께 특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승만의 권력욕을 거론할 정도였다. 이승만의 독선, 권력욕 등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와 증언이 있다. CIA문서의 사례는 보고 내용의 핵심과 무관하게 그의 권력욕을 특별히 지적할 정도였다는 게 오히려 핵심이다.

 

 ▲  백년전쟁 보급 경과 → (상세보기)

 ▲  ‘백년전쟁’ 관련 편향 왜곡보도와 연구소에 대한 압박 →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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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고소사건에 대한 역사단체 공동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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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고소사건에 대한 역사단체 공동성명

 

2012년 11월 말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행적과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을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난 올해 3월부터 이 영상물이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2일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이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민족문제연구소를 검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지 않은가 우려한다.

3월 13일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서 한 참석자가 <백년전쟁>이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건의했고,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잘 살펴 보겠다”고 메모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에 일부 보수 언론과 종편 방송, 극우 인터넷 매체들이 비판적인 주장을 다투듯 내놓기 시작했다. 또 4월 16일에 안전행정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백년전쟁> 동영상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발언했다.

이후 5월 2일에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이 민족문제연구소를 고소했다. 그들은 고소 이유를 “허위 사실과 자료 조작”으로 만들어진 동영상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격살인”이자 “대한민국의 국격을 짓밟는 행위”이며, 민간연구소 주도 하에 “소위 국사학자들이란 사람들이 대거 협력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고 내세웠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의 경우,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범위에서 일상적인 표현을 쓰거나 강조하려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풍자와 함께 역설적 표현이 어우러진 비판이 자유로운 사회를 사회 문화적으로 성숙시킨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대중적 영상물을 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으며, 다양성을 관용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사회 문화의 지표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물이 새삼 논란이 되는 과정이 의아스러운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교훈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20세기 역사에서는 인간이 간직해야 할 정의(正義), 정치사회 운영에서 추구해야 할 민주적 가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권리 등을 기준삼지 않고서 교훈을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역사를 연구하는 우리는 역사적 정의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기준으로 되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추구할 사회적 가치를 팽개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가?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의 주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가치와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영상물 <백년전쟁>의 인터뷰에 응한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판단을 모독하는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인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의 계승을 국가 정체성으로 명기하고 있다. 지난 세기 9차례의 개헌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헌법의 기본 이념과 정신이 부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제헌헌법의 정신을 부정하고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두 차례나 불법으로 고쳤으며, 부정 선거를 감행하다가 4월 혁명으로 국민에 의해 쫓겨났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이렇게 헌정 질서를 두 차례나 파괴한 이승만을 ‘독립투사’, ‘건국대통령’, ‘국부(國父)’라고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역사 연구자들은, 이승만에 대한 비판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몰아가는 일부의 움직임을 심각하게 주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도가 역사를 거꾸로 돌려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우려하고 경계한다.

역사 연구자들은 영상물 <백년전쟁>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정치적 목적으로 언론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는 이미 그 개인의 인격을 떠나 ‘역사적 해석’의 차원에 들어선지 오래이다. 이제 역사 연구자의 해석과 평가에 대해 언어와 영상을 통해 비학문적 비난을 가하고 심지어는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자제되어야 한다. 더욱이 권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부당하게 개입하려는 시도가 있어서도 안된다. 지난 세기에 대한 역사적인 판단은 다양한 학문적 논의와 연구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마땅하며, 권력에 기대어 사법적 영역으로 가두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지혜로운 해석은 학문과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전제하며, 권력의 힘에 기댄 강압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2013년 5월 9일

 

한국역사연구회(회장 하일식)

역사문제연구소(소장 김동춘)

역사학연구소(소장 전명혁)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이성호)

역사정의실천연대(상임대표 한상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대표 안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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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역사다큐 백년전쟁이 TV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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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방송RTV로 역사다큐 백년전쟁은 벌써 첫 방송이 나간 상태! ^^

2013년 1월 21일부터 3월 3일까지 매일 안방극장을 통해 편하게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그간 백년전쟁을 공중파를 통해 TV로 시청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안을 강구하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와중에 시민방송 RTV를 통해 방송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시민방송RTV의 관계자들께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가능하면 많은 분들께 진실의 역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인터넷을 통한 무료공개였습니다. 또한 동영상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백년전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국민모두가 아니 세상 모두가 조건없이 재배포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자진해서 백년전쟁의 홍보대사가 되어주셨습니다.

어느 분께서는 백년전쟁 DVD를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하셨습니다. 인천에서 치킨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홍보전단지의 한부분에 백년전쟁 앱을 소개하셨습니다. 경남 의령군, 전남 영광군에서는 자신이 백년전쟁의 홍보대사라고 하시면서 DVD만 보내주면 주변지역의 마을회관을 돌며 보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 너무나 많은 분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진실의 역사를 알리는 일에 나서고 계십니다. 그 덕분에 백년전쟁은 지금 현재 250만명 이상이 관람하며 흥행대박을 이루어냈습니다. 250만명이라는 수치는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조회수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공식블러그를 통한 다운로드는 현재 15만건에 이르며 토렌트를 통한 다운로드는 추정치도 집계되지 않습니다.

250만명 이상이 보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못보신 분들 또한 많습니다.


시민방송RTV를 통해 방송되는 역사다큐 백년전쟁! 온가족과 함께 아프지만 진실한 역사를 대면해주세요. 그리고 주변분들께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시민방송RTV] 역사다큐 백년전쟁 방송 스케쥴표


방송내용

요일

시간

일자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1.21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1.22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아침 9시

2013.1.23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1.24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1.25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1.26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1.27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1.28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1.29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아침 9시

2013.1.30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1.31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1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2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3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2.4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2.5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아침 9시

2013.2.6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2.7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2.8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9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10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11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12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아침 9시

2013.2.13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14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15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16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17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2.18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2.19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아침 9시

2013.2.20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오후 4시

2013.2.21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저녁 10시

2013.2.22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23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24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2.25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26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아침 9시

2013.2.27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2.28

백년전쟁-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3.1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저녁 10시

2013.3.2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프레이저보고서

오후 4시

2013.3.3


*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방송스케쥴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시민방송RTV]  방송지역 및 채널


방송사업자

채널

방송지역

스카이라이프

531번

전국

㈜티브로드 에이비씨방송

168번

경기안양시

㈜티브로드 수원방송

168번

경기수원시

㈜티브로드 전주방송

168번

전북완주시

㈜티브로드 중부방송

168번

충남천안시

㈜티브로드 남동방송

168번

인천남동구

㈜티브로드 기남방송

168번

경기평택시

㈜티브로드 한빛방송

168번

경기안산시

㈜티브로드 낙동방송

168번

부산사상구

㈜티브로드 동남방송

168번

부산남구

㈜티브로드 서부산방송

168번

부산사하구

㈜티브로드 새롬방송

168번

인천남동구

㈜티브로드 서해방송

168번

인천남동구

㈜티브로드 동대문방송

168번

서울동대문구

㈜티브로드 강서방송

168번

서울 강서구

㈜티브로드 도봉강북방송

168번

서울강북구

㈜티브로드 노원방송

168번

서울노원구

㈜티브로드 서대문방송

168번

서울서대문구

㈜티브로드 광진성동방송

168번

서울광진구

㈜티브로드 종로중구방송

168번

서울중구

㈜티브로드 대구방송

168번

대구남구

㈜티브로드 대경방송

168번

대구서구

㈜씨앤엠 강동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송파구

㈜씨앤엠 구로금천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구로구

㈜씨앤엠 노원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노원구

㈜씨앤엠 북부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성북구

㈜씨앤엠 서초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서초구

㈜씨앤엠 송파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송파구

㈜씨앤엠 중랑케이블티브이

722번

서울중랑구

㈜한국CATV나라방송

125번

경기도의정부시


* 시민방송 RTV는 기본채널이 아닐 수 있으며 방송사업자에게 채널요구시 추가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지역별 채널번호가 틀린 경우 댓글로 정확한 정보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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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스마트폰으로 직접 내려받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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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동영상 스마트폰으로 직접 내려받는 방법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직접 내려받기, 문의가 많아서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1단계 : 백년전쟁을 스마트폰으로 직접 내려받기 위해서는 전용 앱이 스마트폰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앱이 있으며 그 사용법에 대해 잘 설명된 글이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 아이폰 V다운로드 -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다운로드시 유용한 어플

2. 안드로이드폰 인터넷 동영상 다운 어플 오페라 모바일을 이용 


2단계 : 내려받기 전용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셨다면 '백년전쟁 공식블러그 > 내려받기 '에 방문하십시오. 아래와 같은 화면이 보이시면 이미지 하단의 '스마트폰 저장용 [내려받기]'를 클릭하신후 다운로드 앱을 선택하시면 내려받기가 시작됩니다. 내려받기가 완료되면 스마트폰의 '갤러리' 또는 동영상 재생 앱을 통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의

- 3G / 4G 통신망을 이용하는 경우 별도의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 WiFi 환경에서 내려받으시길 권장합니다.

- 스마트폰용 파일 크기가 약 500M 이며 다운로드를 위해서는 상당시간이 소요됩니다.

- 접속자 폭주로 인한 접속장애 또는 내려받기 속도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백년전쟁 Part 1 두 얼굴의 이승만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승만의 모든것




PC 저장용 [내려받기]


스마트폰 저장용 [내려받기]


백년전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




PC 저장용[내려받기]


스마트폰 저장용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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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에 관한 바깥소식과 안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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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새해 첫날 <백년전쟁> 관람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앞서 연구소와 관련한 기분 좋은 소식들 몇 가지도 언론에 기사화되었습니다.

 

▣ 2012년 12월 31일

  - 연합뉴스 : "역사 바로 알자"…대선 전후 민족문제硏 회원 급증

  - 뉴시스 : 박근혜 당선 전후 민족문제硏 회원 급증

  - 위키트리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회원 '급증'

 

▣ 2013년 1월 1일

  - 한겨레 : 남영동·26년 잇는 다큐 ‘백년전쟁’ 한달만에…

 

 

한겨레 기사가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남영동·26년 잇는 다큐 ‘백년전쟁’ 한달만에…
근현대사 다큐 ‘백년전쟁’ 보셨나요? 소리없이 인기몰이
인터넷공개 한달새 193만명 관람
민족문제연, 이승만·박정희 다뤄
누리꾼들 “역사 바로세우기 실감”
한겨레
지난 11월26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시사회에 앞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관람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근현대사 다큐 ‘백년전쟁’ 보셨나요? 소리없이 인기몰이
인터넷공개 한달새 193만명 관람
민족문제연, 이승만·박정희 다뤄
누리꾼들 “역사 바로세우기 실감”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소리없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대선을 전후해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1일 “영상 공개 한달 만에 193만명(지난달 31일 기준)이 <백년전쟁>을 관람했다”고 밝혔다. ‘근현대사 진실찾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민족문제연구소가 2011년부터 제작 중인 6부작 다큐 <백년전쟁>은 본편 4부와 번외편 2부로 기획됐다. 연구소는 지난해 11월26일 첫 시사회를 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 강점기 행적을 다룬 본편 1부 ‘두 얼굴의 이승만’(52분)과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 경제성장의 이면을 다룬 번외편 1부 ‘프레이저 보고서-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40분)를 처음 공개했다.

이후 개봉관 없이 유튜브나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누리집’(http://ibuild.tistory.com) 등을 통해 영상을 무료 공개하고 있는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성**’라는 이름의 누리꾼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면서 분노가 일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뼛속까지 느끼게 됐다”고 시민역사관 누리집에 감상평을 남겼다. 누리꾼 ‘aws**’도 “부모님, 누님과 같이 보았습니다. (다큐에 담긴 내용을) 처음 알았다고 하시네요”라고 적었다.

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영상을 공개한 뒤 힘을 보태는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배우 권해효씨는 원래 여성 피디가 맡았던 ‘두 얼굴의 이승만’편 내레이션을 자청해 영상의 완성도를 높였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만들어달라”는 호소글이 누리집에 올라오자 충북 진천의 한 시민은 직접 자막을 만들어 영상 제작을 도왔다.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끌면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신규 회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12월 한달 동안 새로 가입한 후원회원만 1570여명이다. 이 가운데 대선 이튿날인 20일 이후 가입한 회원이 720명에 이른다. 1991년 문을 연 이 연구소의 기존 회원이 7500명인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 반응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대선 이후 신규 가입한 회원들의 가입신청서를 보면 ‘선거 결과를 보고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논란의 역사를 누구나 이해하기 편한 방식으로 접근해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백년전쟁> 열풍을 풀이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앞으로 해방정국과 이승만 하야를 다룬 2부, 박정희 집권 시기를 다룬 3부, 전두환 정권 시기를 다룬 4부, 번외편인 프레이저 보고서 2부 등을 차례로 제작해 공개할 예정이다. 연구소 쪽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해 영상 공개 시기를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백년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다 아실 테지만, <백년전쟁>은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과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제작되었습니다. 인터넷 공개 한 달여 만에 200만 명이 관람하게 한 힘 또한 거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백년전쟁> 제작팀은 총 제작기간 중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현재 공개한 <백년전쟁> 1부와 <백년전쟁 스페셜에디션> 1부가 제작되는 데에도 무려 1년여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제작팀인 연구소 영상팀은 총 4명의 인원이 그 1년여를 밤낮없이 제작에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영상팀 사무실은 다른 연구소 상근자들이 발을 들여 놓기도 꺼릴 정도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있습니다.(상세한 묘사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연구소는 많은 분들이 <백년전쟁> 2부와 <프레이저보고서> 2부 공개가 하루 빨리 이뤄지길 기다리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제작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줄거리작업은 거의 다 진행된 상태이며 사료검토와 작품성 담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제작이 완료되고 공개되기 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다리고 응원해주실 거라 믿으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런 제작팀의 열악한 상황을 직접 돕겠다는 분들이 많아 제작팀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현 제작팀에 자원봉사로 시작했다가 상근하게 된 분도 있고, 연구소에 재능후원으로 ‘동영상 촬영․제작 및 편집’ 분야를 신청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재능후원게시판 바로보기

 

 

이렇게 많은 성원과 응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연구소는 여러분들의 맘 깊은 곳에 와 닿는 말씀들 가슴 깊이 새기고, 2013년 새해를 맞이하겠습니다.

 

1991년 연구소 창립 이후 오늘보다 더한 부침이 수없이 많았지만, 한결같이 믿고 응원해주시는 연구소 수천 회원님들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주시는 많은 국민들이 있어 연구소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0여 년을 지나온 발자취처럼 연구소는 여러분들을 믿고 뚝심있게 올 한해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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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버전 개봉! 재능기부 정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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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버전 개봉!

 - 자막제작 재능기부해주신 정재민님께 감사드립니다


백년전쟁’이 온라인상에 오픈되던 날, 충청북도 진천에 위치한 월운도방에서 도자기를 굽는다는 정재민님께서 연구소로 청각 장애인분들을 위한 자막 제작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혀오셨습니다.  


월운도방은 청각장애인 도공 정재길 작가가 운영하는 곳인데, 공방 사람들과 막걸리를 받아 놓고 다같이 ‘백년전쟁’을 보고 난 후 형님인 정 작가를 비롯한 청각 장애인분 들에게도 '백년전쟁'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모자란 인력으로 인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버전 준비가 늦어지던 터라 염치 불구하고 정재민님의 재능기부를 기쁘게 받아 청각장애인용 ‘백년전쟁’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뜻과 힘이 모여 ‘백년전쟁’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백년전쟁’은 이제 더 이상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영화가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백년전쟁의 제작자입니다. 감사합니다.^^


백년전쟁 Part 1 두 얼굴의 이승만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승만의 모든것


[전편보기]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버전]



백년전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


[전편보기]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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