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역사관'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01.07 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2. 2012.12.27 노근리평화상 상금 전액을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쾌척_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2)
  3. 2012.09.03 꼭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_ 친일인명사전 앱 (10)
  4. 2012.08.23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5. 2012.07.16 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 독일과 일본의 전후 과거사 청산 그리고 박정희에 대해 말하다 (1)
  6. 2012.03.28 '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네티즌 모금 8주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를 시작하며 (2)
  7. 2012.03.26 유권자가 뽑는 총선정책 온라인 투표가 진행중입니다.
  8. 2012.03.21 [동영상] 돌아오지 못한 남편의 청춘만장 (역사채널e)
  9. 2012.03.19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개시!!!! (2)
  10. 2012.03.07 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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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담는 시민역사관

 

 

 

 

     역사전쟁은 단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국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습니다.

            2012년 역사다큐 백년전쟁! 거짓역사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습니다.

            2013년 올해 시민역사관의 주춧돌을 세우겠습니다. 

▲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발간 국민보고대회 개최

 

▲ 백범 김구선생 묘역에서 진행한 친일인명사전발간 국민보고대회 현장


 

         민족반역자들에게 분노했다면, 역사적 진실에 가슴을 쳤다면

         허탈과 좌절을 떨쳐버리고 시민역사관 건립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시민역사관 건립모금 현황

 

           목표모금액 : 50억

           모금현황 : 현재까지 역사관 건립모금 총액 15억!

                         (친일인명사전 판매수익금 10억 + 시민역사관 건립모금액  5억)

           모금인원 : 10만원 이상 역사관 건립기금을 내주신 발기인 1000명

                         십시일반 힘을 보태주신 시민추진단 600명  

▲ 민족문제연구소·오마이뉴스 공동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 진행 3일만에 5억 모금(2004년 1월)



 


     시민역사관 건립계획

 

           광복70주년을 맞는 2015년 8월 15일 개관을 목표로 합니다.

           독립과 민주화운동의 성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에 세우겠습니다.

           시민역사관은 진실된 역사의 전시/ 교육/ 문화/ 연구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 시민역사관, 같이 만들고 함께 가꾸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유물

 

민족문제연구소는

20여년간 문헌류·시청각류·박물류를 포함한 3만여점의 유물을 기증받고 수집해 보유하고 있습니다. 

1991년 연구소 설립 이후 축적해온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80만건의 학술정보DB를 구축했습니다.

계속적인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국내외의 근현대 유물과 학술정보DB를 축적할 계획입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3.1 독립선언서> 원본

 

▲ 유신40년 특별전시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서대문형무소 12옥사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신40년을 맞아 38회에 걸친 전국순회전시를 개최)




     국민여러분께



      친일인명사전이 밝혀낸

      민족반역자들에게 분노했다면

      백년전쟁이 보여준 

      역사적 진실에 가슴을 쳤다면

      이땅의 역사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나아가길 희망한다면

      힘을 모아주십시오. 시민역사관 반드시 만들어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 │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 02-969-0226 / E-mail.
 minjok@minj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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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평화상 상금 전액을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쾌척_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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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노근리평화상위원회는 제5회 노근리평화상 인권상 수상자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를 선정, 12월 21일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시상식에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은 "보추협이 일제의 강제동원 진상과 피해자 권리 찾기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다"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년)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2007년) 입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근리평화상은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피난민 학살사건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주최 측인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은 2008년부터 매해 세계평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인권, 언론, 문학 3개 부문에 노근리평화상을 주고 있고, 올해는 보추협 외에 뉴스타파를 통해 공정언론보도를 솔선수범하고 있는 박중석 기자, 이근행 PD 등도 함께 시상했습니다.

 

21일 노근리평화상을 수상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 소송을 지원해 왔을 뿐만 아니라 야스쿠니신사참배 반대와 한국인합사철폐운동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보추협 대표이신 이희자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었된 아버지께서 중국 전장에서 사망한 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1997년에 밝혀 낸 이후 지금껏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취하, 유골반환, 손해배상청구’를 요구하는 야스쿠니신사 한국인합사철폐운동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한편 이희자 보추협 대표는 노근리평화상 상금 일천만원 전액을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쾌척하셨습니다. 시민역사관은 친일․독재의 과거사 속 진실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역사왜곡에 맞섰던 수많은 이들의 과거사청산의 역사 또한 기록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그 어떤 것에도 맞서 “인권․평화․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올해로 68세인 이희자 대표는 “아버지 자식으로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는 게 제 인생에 남은 과제고 소원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 아버지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빼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자랑스러운 따님이신 이희자 대표님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속 피해자분들과 민족문제연구소는 늘 함께 할 것이며, 시민역사관은 이분들의 분투 또한 반드시 기록할 것입니다.

 

 

 

▶ 관련기사

 

  - 한국일보 : 제5회 노근리평화상 인권상에 보추협 선정

 

[ 한국일보 2012.12.21 기사 ]
제5회 노근리평화상 인권상에 보추협 선정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찾기 위한 활동 평가"
  • 이희자(왼쪽) 공동대표가 21일 정구복 충북영동군수로부터 노근리평화상 인권상을 받은 뒤 나란히 서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제공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노근리평화상위원회는 제5회 노근리평화상 인권상 수상자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를 선정, 21일 시상식을 가졌다.

이날 오후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공원 교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은 "보추협이 일제의 강제동원 진상과 피해자 권리 찾기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다"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년)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2007년) 입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상을 받은 이희자 보추협 공동대표는 "사무실 유지조차 힘든 때에 이렇게 큰 상으로 격려 받아 힘이 난다"며 "5월 대법원으로부터 이끌어낸 판결이 실제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추협은 5월 24일 20여년의 싸움 끝에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책임이 일본기업에 있다는 판결을 대법원으로부터 이끌어 냈다.

충북 영동에서 발생한 피란민 학살사건인 '노근리 사건'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평화재단은 2008년부터 세계평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인권, 언론, 문학 3개 부문에 평화상을 주고 있다.

 

 

  - 연합뉴스 :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協' 노근리 평화상 수상

  - 뉴시스 : 태평양전쟁 보추협 '제5회 노근리평화상' 수상

  - 아주경제 : 제5회 노근리평화상,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 등 선정

  - 충청투데이 :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노근리 평화상'

  - 대전일보 :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協 제5회 노근리 평화상 수상

 

 

 

 


      다둥이카드소지자 │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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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_ 친일인명사전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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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60년,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18년 만인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이 만들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전 발간은 연구소의 18년을 한결같이 지켜주고 함께 해주신 7,000여 회원이, 2004년 국회(한나라당)의 사전편찬 기초조사예산 전액 삭감에 분노해 단 11일 만에 삭감액 5억 전부를 모아주신 3만 여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때 연구소는 그 감동을 고스란히 안고, 친일인명사전을 반드시 발간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그 때의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전국민적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102년 국치일 8월 29일에 친일인명사전 앱을 출시했습니다. 

 

연구소는 그간 친일인명사전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정가 30만원인 고가의 사전이기에 여러 사람이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보급에 특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사전 구입을 꺼려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앱은 친일인사 4,389명이 수록된 전3권 총 3,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사전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고가라서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웠고 공공도서관 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내 손안”에서 찾아보기 쉽게 함으로써 사전을 보다 간편하게 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 손안의 친일인명사전!”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거리나 지하철, 그 어디서나 친일인명 검색이 가능하고, 인명 외에도 분야별·지역별·출생연대별 등 다양한 영역별 검색이 가능해 훨씬 편리하게 활용도 가능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연구소는 당초 무료이용을 검토했으나 개발비용과 종이책 보급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부득이 앱 가격을 1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수수료와 세금 등 경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건당 약 5천원)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할 예정이다.

 

시민역사관은, 일제 식민지배가 근대화의 기초라느니 5.16군사쿠데타가 근대화혁명이라느니 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과거 친일독재세력의 역사바꿔치기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지켜온 진실한 역사를 오롯이 담을 것입니다. 오로지 객관적인 사료에 근거해 엄정하게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역사왜곡에 골몰하는 이들로부터 더욱 강고하게 역사정의를 지켜내 미래세대에 전달할 시민역사관 또한 반드시 세워내겠습니다.


 


- 현재 내려받기는 안드로이드폰(구글)에서만 가능하며, 애플용은 승인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9월말 출시됩니다.

- 포털(다음, 네이버) 검색창에서 "친일인명사전 앱"을 검색하셔도 쉽게 구매사이트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용 친일인명사전 앱 다운로드 바로가기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minjok.pjdic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아이패드를 제외하고 국내에 출시된 스마트폰·스마트기기 대부분이 해당됩니다.)


 

  좀 더 자세한 안내를 원하신다면 아래 바로가기를 클릭해 보세요~ 

     구매안내  /  사용설명서  /  문의 및 건의







      다둥이카드소지자 │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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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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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민철

이명박 정권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정권 말기면 드러나는 비리가 이 정권이라고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 비리의 결정판은 역시 세간에서 ‘상왕’으로 불리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씨의 구속이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망나니마냥 수행하던 검찰이 이제 그 칼끝을 돌려 현 권력 심장부를 깊숙하게 찌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 무상의 씁쓸함을 느끼기에 앞서 완장들의 본질을 보는 같아 인간에 대한 환멸까지 느낄 지경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차대조표는 곧 나올 것이다. 이념적인 선호에 따라 그 평가가 매우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낙제점을 면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동안 한국 사회가 성취했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다소 퇴보할 것이라고는 모두들 예상했다. 그러나 그 퇴보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방위적이었다. 몇 가지의 목록만 열거해 보자.

정부의 신뢰도를 잃게 만든 광우병 파동, 사회의 갈등을 힘으로만 밀어붙여 해결하려다 빚어낸 용산 참사와 이후의 무대책,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한 채 한반도의 긴장만 악화시킨 반북정책의 지속과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천안함 사건, 환경재앙에 가까운 4대강 사업의 강행, 역대 정권 중 ‘가장 깨끗한 정권’이라고 자부한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와 구속, 특정 집단에 이익을 주기 위해 밀어붙인 종합편성채널(종편) 사태, 자유로운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남용한 미네르바 사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언론사 사장을 몰아낸 사건, 한국의 경제구조를 미국의 요구에 맞게 만들기 위한 한미FTA 체결 강행, 독재정권 하에서나 있었던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한 민간인 사찰, 그간의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마련한 교과개정의 전면 부정과 역사교과서의 수정 강요(이른바 금성교과서 사건), 편법으로 체결하려다 해프닝으로 끝난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 시도 등등.

목록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것을 수습하기도 전에 다른 더 큰 사건이 터져 앞의 문제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커녕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할 능력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왜 이런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을까. 합리성의 결여와 비민주성 등 다양한 해석과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두 가지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정책의 공공성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공적 이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이 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공적 이익이라는 것도 실상은 사적 이익들간의 집단적 조정을 통해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 조정이 너무 편향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롤스의 지적처럼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 양산된 것이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오랫동안 많은 특권을 누려왔다. 그 특권이 너무 오래되고 일상화되어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겨 왔다. 다만 그 특권이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부분적으로 견제 받고 침해 받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정권 탈환에 절치부심했던 심리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아니 독재정권 하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정치권력까지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민주화 이후 독재권력으로부터 통제당하던 상황이 사라지면서 재벌을 비롯한 특권세력의 발언권이 커져, 이제는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조정하는 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민주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집단이 특권세력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특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만들어놓은 규칙을 너무 쉽게 바꾼 것에 있다. 두 번째의 공통된 현상이면서 매우 위험한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경기장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의 운영원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결과를 양산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뜯어고친 사건이다.

이른바 뉴라이트들이 기존 역사교과서를 좌편향적이며 자학사관이라 비판하자, 이명박정권은 수년에 걸쳐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일을 강행했다. 어떤 의미에서 교과서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도덕감각과 표준적인 지적 수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인식이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민주 사회에서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유아적 발상이거나 독재적 발상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을 태연하게 저지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가 바뀐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교과서 사건의 심각성은 역사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사회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를 흔들어놓은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수자원공사의 고소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위험하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를 수자원공사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일은 경기의 룰을 무시하는 폭력과 다름없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행위를 비판하는 일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어 비판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 만약, 이번 고소 사태가 성립한다면, 국가권력이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실행한 행위로 빚어진 결과에 대해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성립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국가 행위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는 소송 사태가 벌어지게 되고, 행정부는 준비서면 쓰느라 마비상태에 이를 것이다. 다행히도 현실 세계는 정치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라는 서로 다른 운영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수자원공사가 이를 무시하고 소송을 진행했다. 완장들의 충성 경쟁으로만 치부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더 걱정이다.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를 훼손하거나 자신들 마음대로 운영하겠는 식의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여놓은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만일 이게 아니라면 순전한 엄포용이다. 마치 미네르바 사건처럼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국내 유일 과거사 청산 관련 전문잡지 "역사와 책임" 3호 권두언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발간도서 자세히 보기 ▶ "히스토리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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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 독일과 일본의 전후 과거사 청산 그리고 박정희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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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국립묘원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비문에는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올해 광주 참배 때,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리영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함께 그분의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선생이 우리와 더불어 지내주시길 바라는 욕심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생전의 선생은 연구소에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고 특히 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각별한 지우(友)의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리영희 선생의 글에 많은 내적 감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특히 리영희 선생의 자전적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구소 소장님이 함께 한 "대화"(한길사 2006, 부제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라는 책은 제가 '강력 추천'하는 것이 아닌 '강제 추천'을 하는 도서 목록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리영희 선생의 저작 중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글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전후 독일과 일본의 상반된 태도에 대해 언급하신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선생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1992년 연구소 개소 1주년(당시 반민족문제연구소)을 맞아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에서 선생이 작성한 토론문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1985년 5월 8일 독일패망 40년 기념일에 폰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연설로 세계적인 이목을 받습니다. 독일 폰바이체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기념사를 통해 과거 독일이 저질렀던 만행, 치부를 민족의 이름으로 반성하고 학상당한 500만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여기에는 유태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노동운동 지도자, 리버럴리스트, 심지어 점령지의 무명인들과 짚시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한 짓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과거의 선택에 따라 오늘이 있에 우리들은 마땅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범죄적 역사를 잊어 버리거나 보호하려는 민족은 영구히 장래를 잃어버리는 민족이다"

이날 연설이 세계 지식인들을 숙연하게 만든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결코 전장에서 희생된 독일 병사들을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기 위하여' 죽어간 존재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그는 '자국을 위해 죽어간 자'를 가장 먼저 애도해야 할 대상을 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패전 40년을 기념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과거와의 단절은 고사하고 연속성을 찾는 위험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의 나카소네 수상은 유명한 전후청산론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가국민은 오욕을 버리고 영광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난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과거는 청산되었습니다."

그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일본으로서는 전쟁에 대해서 지금까지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고 행동에 제약받을 것도 없으며 대의명분이나 도덕적으로도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민족의 존재양식과 도덕적 심정의 너무도 극단적인 차이에서 우리는 전후처리의 이중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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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폰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의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한 짓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과거의 선택에 따라 오늘이 있에 우리들은 마땅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범죄적 역사를 잊어 버리거나 보호하려는 민족은 영구히 장래를 잃어버리는 민족이다"라는 발언, 여전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위의 발언은 독일에 비교하여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문구인데요....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과연 일본 만의 문제만은 아닌 듯습니다. '과거사'하면 주로 일본의 만행을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이승만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엄혹한 우리 현대사 속에도 청산해야 할 역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깐요.

 과거사에 대해 무책임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그리고 그런 일본을 닮은 '우리안의 일본'을 생각하면 참으로 섬뜩한 마음까지 듭니다. 특히 최근 '5.16이 구국의 혁명'' 임을 규정화 하려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도사'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일찌기 리영희 선생은 '원조 뼛속까지 친일, 친미'였던 박정희 정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대 문제나 과거의 문제에 대해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투쟁할 상대는 일본이기에 앞서서 바로 이와같은 권리를 팔아먹은 박정희, 그리고 친일파와 역대정권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집행한 그 개인에 대해서 일차적인 공격이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개인이나 언론의 공식적인 발언은 찾아 볼 수 없고,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발언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는 친일청산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성의 기미가 없는 일본에 날개를 달아준 '반민족'의 시대였습니다. 친일경력도 반민족적 문제이거니와 '한일회담'을 강행한 그의 조처는 우리민족사에 남긴 너무도 뼈아픈 조처였습니다. 나아가 박정희는 '일제가 남긴 폭력성'을 더욱 구조화시켜 나라 전체를 병영화시켰고 나아가 '거대한 감옥'을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보수수구세력과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씨는 이 시대의 모든 치부는 외면한 채  '조국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미화하면서 '박정희'를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라고 합니다. 각종 동상이 만들어지고 전문 대학원도 생겼으며 기념관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5.16혁명기념관도 조만간 개관할 기세입니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작년 '새마을 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불행한 사태는 어쩌면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관련 단체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 졌습니다. 물론 꼼꼼하신 각하와 박근혜씨가 있기에 이들 단체에 대한 세금지원은 필수이구요.  제가 사는 지역에도 이들의 활동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군사반란자들마저 이러한 상황에 편승하여 활개하고 있는 입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양심'에는 거리낄게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공동체를 위한 양심에는 긴 털이 나있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군화발이면 모든게 해결되었던, 권력욕이 강한  특정 지역사람들이 모여 일을 도모하면 성공하던, 반공이다 빨갱이를 부르짖으면 모든것이 허용되었던, 친일친미만이 민족의 살길이라 외치면 대접받았던 시절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건 아닐까요? 

이승만 독재, 박정희 친일독재, 군부반란자에 대한 처벌...등등 우리는 청산할 게 너무 많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정권을 바꾸지 못한다면.....생각만 해도 아찔한 지경입니다.

"학생들에게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응원할게요!"

'김한별'이라는 중고생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남긴 응원글인데요..김한별 학생 역시  우리 사회가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불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에 불끈 주먹을 쥐어봅니다.

끝으로 리영희 선생의 한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2003년 3월 가카의 절친(?) 부시는 결국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을 치밀하게 밝힌 '반전평화주의자' 였던 선생은 마비가 시작된 손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작성하였는데요...비록 글씨는 삐뚤하지만 그 올곧은 정신만큼은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겠지요?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족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래의 "추천"을 꾹 눌러주신다면 더욱 감사!!!

 否氏狂亂不知其終  (부시의 광란이 끝을 알 수 없으니)

 人類自存直面危亂  (인류자존이 위란에 직면했도다)

 錦繡疆土長變火海  (금수강토가 장차 불바다로 변할지니)

 韓民當呼反戰平和 (한민족은 마땅히 반전평화 외칠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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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네티즌 모금 8주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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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2012년 1월 8일부터 3월 초까지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공동캠페인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이 지난 1월 8일부터 한 달여간 진행됐습니다. 이 행사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그치지 않고, 현재 벌어지는 역사 왜곡을 막아내고 역사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함과 동시에 사전 발간에 동참해 주셨던 많은 시민들의 올바른 역사에 대한 지지와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몇 분이나 찾을 수 있을까'라던 조바심은 연일 이어진 격려와 응원 덕에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며 연구소 상근 일꾼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도리였다'는 겸손의 글,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줘 고맙다'는 감사의 글, '역사적인 과업에 동참했던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감격의 글, '역사정의 실현은 계속돼야 한다'는 다짐의 글을 보면서 이런 분들이 바로 연구소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우리 사회를 함께 변화시켜갈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3월 초까지 1140여 분이 이벤트 게시판에 이름과 주소를 남겨주셨습니다. 2월 3일, 1차로 779분께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를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2월 25일 330분께, 3월 13일 31분께 마저 보내면서 발송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선물하고 싶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의 1차 발송을 위한 포장 작업. 연구소 전직원과 아르바이트생까지 함께 한 완전 수작업 포장. ⓒ 민족문제연구소

그날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제 삶의 하나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윤조님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장서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와 노력, 그리고 희생에 감사를 드립니다." - 조정호님

"감동이네요. 당시 3살이던 아들이 벌써 11살이 되어 옆에서 함께 기사를 읽었습니다.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아가는 민중들의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네요. 민족문제연구소의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김홍성님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요. 너무 쉽게 잊고 사네요. 그때의 뜨거웠던 감정, 알 수 없던 눈물 한 방울, 참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기회였습니다. 님들과 함께해 영광입니다." - 문병수님

"지치지 않고 견뎌낸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사회 바로 세우기는 ''친일청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황소걸음으로!" - 곽성순님

"불의가 지배하고 있는 지금, 정의라는 이름들이 하나둘씩 새겨지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 옵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 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 이덕우님

"우리 딸 최예진 양이 이제 9살입니다. 딸아이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참여했는데 너무 가슴 뿌듯합니다.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하네요. 이제 제대로 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줄 수 있겠네요." - 최석순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던 새신랑입니다. 그 아기가 벌써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 도서관에 주문을 해서 현재 도서관에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한 민족문제연구소에게 감사드립니다. 고 김근태 선생님이 하신 2012년을 점령하기 위해 미력한 힘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 - 류승용님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게시판에 남겨 주신 글 중에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특별기고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모두 4회에 걸쳐 게재한 기사의 총 조회수는 무려 50만 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기사에서 친일인명사전의 공공도서관 보급률이 저조하고 학교 현장에서조차 사전 보급이 차단되고 있다는 사실이 소개되자, 연구소에 사전 구매 문의가 무척 활발해졌습니다.

한편, 사전의 대중적 보급을 위한 자발적인 실천도 다양하게 전개됐습니다. 다음 아고라에는 '공공도서관과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보급을 촉구한다'는 서명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이와 함께 공공도서관에 사전 비치를 위한 '희망도서 신청 방법'을 상세히 알리는 블로거들도 늘었습니다. 또 어느 대학생들은 직접 '친일인명사전' 영상을 제작해 사전 보급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발적 노력과 관심은 또 한 번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연구소는 지난 2월 28일 아름다운재단 소셜펀딩 개미스폰서를 통해 한 달을 모금 예정기한으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를 개시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빨라 모금 개시 이틀 만에 목표 모금액(489만5000원)의 6분의 1이 모였고, 3일째인 3월 2일 새벽부터는 참여 인원이 빠르게 증가하더니 오전 9시부터는 거의 분단위로 모금이 이뤄졌습니다. 결국 3월 2일 오후 5시 3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단 3일 만에 당초 목표 모금액을 초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감됐습니다(달성 금액 497만1000원).

 
친일인명사전은 계속 읽혀야 합니다


자발적인 사전 보급 운동과 사전 기부프로젝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온전한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실현에 대한 시민들의 절절한 열망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초 단기간에 마무리되서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친일인명사전 보급을 통한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을 담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3월 14일부터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20권의 친일인명사전을 농어촌 지역 도서관과 대안학교, 동일본 지진 피해 조선학교 등에 보낼 수 있게 돼 정직한 역사, 친일인명사전을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 바로가기

 우리는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몸소 역사정의 실현을 바라며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아끼지 않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모든 당신들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이어 역사정의실현의 보루가 될 시민역사관 건립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참 역사의 주역인 '당신'과 함께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또한 함께해 주십시오.

오마이뉴스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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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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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뽑는 총선정책 온라인 투표가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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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만큼 요즘 거리를 나가보면 선거철이구나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각종 정당의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더군요. 어떤 결과가 나오던 올해 2012년 대선과 맞물려서 많은 의미를 가지는 선거가 되겠지요. 그런만큼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겠지요.  신문과 방송에서도 각 정당의 공천명단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자주 이름을 들어봤던 사람은 대강 판단하기 쉽지만 상대적으로 언론의 수혜를 덜 받는 사람들은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최종적인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지만, 어떤 후보가 어떤 문제가 되고 있는지는 단순히 신문이나 언론보도만으로는 판단하기가 힘들죠.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진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2012 총선유권자네트워크라는 곳입니다. 유권자들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정보를 기억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 약속을 확인하고 총선넷과 연대기구가 선정한 낙천/낙선자 명단을 확인해서 심판하자라는 부분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있네요.


기본적으로 해당 선거구와 해당 후보자에 따라서 후보자의 출마지역, 정당, 후보정보, 출마, 불출마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즘 이슈가 되고있는 한미FT, 4대강, 핵, 역사교과서 등등 많은 문제들에 관련한 단체들이 제기한 문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

현재 2012총선 유권자네트워크에서는 "유권자가 뽑는 총선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각 단체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지요.


***총선넷 소속 단체들이 제안하는 30개 정책과제***

1) 한미FTA 폐기 및 통상절차법 개정

2) 비정규직 철폐 및 권리보장
3) 4대강사업 진상조사와 재자연화(복원) 추진
4) 검찰개혁(고비처 신설, 검사장 직선제 등)
5)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 및 전면 재검토
6) 반값등록금 실현
7) 국가보안법 폐지.
8) 재벌/대기업 불공정 행위 규제
9) 부자증세(한국판 버핏세) 도입
10) 언론악법 재개정 및 조중동방송 철폐
11) KTX(철도) 등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폐기
12) 신규원전 건설 중단,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폐쇄
13) 정리해고 금지 및 노동법 전면개정
14)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및 의료영리화 정책 폐기
15) 2009 개정 역사교육과정 철폐와 역사교육정상화
16) 국공립어린이집 수를 전체 어린이집의 30%까지 확대
17) 대기업의 중소기업, 중소상인 업종 및 골목상권 진출 규제
18)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19) 전월세상한제 도입과 공공임대주택 확대
20) 국민먹거리보장기본법 및 국민기초식량보장법 제정
21) 성폭력범죄에 대한 친고죄 전면 폐지
22) 공직자의 종교중립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 추가를 위한 국가공무원법 개정
23) 과거청산기본법 개정 및 보·배상 특별법 제정
24) 산재보험 확대와 산업안전보건범죄 가중처벌
25) 비례대표 의석수 대폭 확대
26) 남북공동선언 이행 및 교류협력 활성화 법,제도 정비
27)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과 독립적인 금융소비자원 설립
28)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및 대상자 확대
29)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 및 지방재정 확대
30) 국방예산 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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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돌아오지 못한 남편의 청춘만장 (역사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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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다음으로 역사채널e에서 다룬 주제는 청춘만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소장중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3월 16일에 방송이 되었죠.




청춘만장, 장행기


주제가 된 지원병 출정깃발입니다. 장렬하게 떠난다는 의미로 장행기라고 합니다.  이
장행기에는 이런 글귀가 써 있습니다.

祝 陸軍兵志願者訓練所入所 宮本恩徽君, 國民總力 金堤郡 月村面 堤南部落聯盟

‘축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 입소 宮本恩徽君, 국민총력 김제군 월촌면 제남부락연맹’


김제군 월촌면 제남 부락연맹에서 지원병으로 차출되어 가는 청년들을 환송하기 위해 만들어 준 깃발인 것이지요. 환송을 위한 장행기,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죽으러 가는 깃발과 같다고 해서 ‘청춘만장(靑春輓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태평양전쟁에 끌려갔던 학병 수기에도 "청춘만장"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습니다.



지원병으로 끌려간 새신랑, 그러나....


장행기에 써 있듯이, 宮本恩徽의 본명은 이은휘 입니다. 장행기의 주인공이지요. 宮本恩徽는 창씨명입니다. 1921년 9월 9일 전북 김제군 월촌면에서 태어났고 1940년 옆마을의 연인과 결혼했습니다. 스무살의 청년 이은휘가 일본군으로 강제동원된 건 1938년부터 실시된 "육군특별지원병령" 때문이었습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941년 지방공무원시험을 보기위해 면사무소에 갔다가 지원병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말이 '지원'이지 사실상 강제였던 겁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령은 많은 젊은이들을 지원이란 말 아래 끌고 갔습니다. 이은휘가 끌려갔던 1941년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시기이면서, 지방 관청들이 경쟁적으로 지원병 수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던 시기였지요. 그토록 믿지 못하던 조선인들에게 총을 쥐어줄 만큼 급했던 일제는 몇년 지나지 않은 1943년에는 해군특별지원병령, 1944년 학도 특별지원병령을 거치며 징병제로 나아갑니다.


영혼마저 유폐되어 야스쿠니로


당시 임신 8개월의 아이를 가진 아내를 두고 이은휘는 1941년 6월 특별지원병훈련소에 입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훈련생 때 휴가를 받고 집에 와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부인과 눈물을 흘리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갓난 아기와 사랑스런 신혼의 아내를 두고 생이별을 해야 했던 이은휘. 특별지원병이 아니라 특별희생자였던 것이지요.

이후 전장에서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어 전사했다는 소식만 있었을 뿐, 유골도 유품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무살의 남편을 보내야했던 정복례씨는 할머니가 될 때 까지 남편을 그리며 살다가 자신이 죽으면 남편 대신 이 깃발을 합장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유수명부(留守名簿)에 따르면 이은휘는 남방군 제8방면군 제20사단에서 보병으로 근무하다 1944년 7월 11일 전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되어 원하지도 않던 일본의 영령이 되어있지요. 영혼마저 유폐되어 있는 셈입니다. 뭐 살아있는 사람도 야스쿠니에 있으니 더 말할나위가 없겠지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소장중인 많은 물품 하나하나마다 이런 사연들이 남아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일제시기,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 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잘 둘러보면, 아직도 그 시대의 아픔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 그분들의 아픔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하나, 이분들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 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런 이야기 들을 제대로 전하기에 아직 민족문제연구소 전시실은 좁기만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의 역사관을 지으려는 이유도,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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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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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포스팅 "3일만에 목표 달성된 "친일인명사전 기부 프로젝트" 에서 말씀드렸었지요?

세상에 이벤트를 시작한지 3일만에 끝나버려서... 많은 분들의 문의가 있었다고요...

그 . 래 . 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 2가 개시되었습니다.!!!!!!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바로가기

친일인명사전 지정 기부처 추천 바로가기


어린 딸을 위한 선택 from MinjokMovie on Vimeo.


두번째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많은 분들이 사전 기부프로젝트의 성공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좋은 취지를 더 널리 알리지 못하고 그쳤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해주셨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직한 역사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참여자들의 바람을 담아 한차례 더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난 2월 28일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에서 3·1절을 계기로 추진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불과 3일 만인 3월 2일 모금목표를 달성하면서 성공적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이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 캠페인이 전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불과 11일 만에 5억 원의 편찬기금을 조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역사정의 실현에 대한 시민들의 간곡한 정성들이 모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지금 현실의 문제이자 아이들의 미래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 현실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고, 미래 주축이 될 우리 아이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십시일반 모아 주신 성금은, 선정된 각 도서관·학교·단체에 기증될 친일인명사전 구입비로 쓰입니다. 한편 연구소는 사전 판매 수익금 전액을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시민역사관은 친일인명사전에 담겨있는 일제강점기 오욕의 역사를 실물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시민들의 치열했던 친일청산 운동도 자랑스런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할 예정입니다.

 시민역사관 홍보를 위해 연구소에서 제작한 아래 영상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봐야할 동영상>, <20,30대라면 꼭 봐야할 동영상>이란 영예로운 별명을 얻고서 시민들 스스로 온라인 곳곳으로 전파하여 현재 50만 명 이상이 보고 접했습니다. 역사가 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서야 할 현실이자 개척해야 할 미래인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from MinjokMovie on Vimeo.


정직한 역사, 친일인명사전을 나눕니다.


20권의 친일인명사전(1권당 300,000원)을 기증하려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미래세대와 친일인명사전을 나누고 싶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비록 오욕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정직한 역사 그리고 건강한 미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르고 정직한 역사를 알려주기 위한 사전 기부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세요.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의 기부프로젝트에 참가해 주신 분들의 이름으로, 선정된 도서관에 사전 20권을 기증합니다.

지금까지 추천된 도서관은 금산 간디고등학교 지혜마루 도서관, 공간민들레, 성지송학중학교, 느티울 행복한 학교, 해룡 농어촌도서관, 성미산학교, 홍동밝맑도서관, 박경리문학공원토지학교, 부산교육연구소, 일본 조선학교 3곳, 제주포럼C 입니다. 아직 몇 군데가 더 남았습니다.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에서 기부도 하고 추천도 부탁드립니다.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를 성원해 주셨던 여러분들의 바람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어가고자 하는 맘이 앞서 10여 곳의 기부처만 우선 선정했습니다. 여러분이 나머지 기부처 선정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게시판이나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기부처를 추천해 주세요. (클릭하시면 바로 갑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고, 18년 만인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3권 2,850쪽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 친일인사의 행적이 가감 없이 담겨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각종 공문서·자료 등을 집적한 총 3,000여 종의 원사료와 450여 종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초자료로 분석·정리해 구축한 약 300만 건에 달하는 인물정보를 바탕으로, 각계 전문연구자 180여 명이 방대한 한국근현대 기록과 오랜 기간 씨름한 끝에 얻어낸 소중한 연구 결과물입니다. 연구소는 현재 친일인명사전을 실물로 생생하게 재현할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프로젝트 집행계획


리워드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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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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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EBS 역사채널e 팀이 방문했습니다. 에서 말씀드린게 있지요?

역사채널 e 팀이 방문해서 어느것?에 대해 설명듣고 조사를 해서 갔다고 했었습니다.

힌트는 사진에 있었다고 했었지요?

역사채널e 팀이 조사해 간 어떤것(?)은.... ⓒ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채널 e 팀이 조사해 갔던 자료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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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월 1일 일본에서 일출신문 부록으로 발행한 조선쌍육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일출신문 조선 쌍육 이었습니다.

자, 그럼 영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볼까요??  일단 감상 해 보시지요~~





쌍육,


지금으로 치면 보드게임 입니다.

아이들이 놀게 만든 보드게임에 조차 조선병합을 담았었습니다. 그때는.....

말그대로 조선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지요. 놀이를 통해서 이렇게 강제병합에 관한 일들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이 뿐만 아닙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 중인 다른 쌍육에는 전시체제기 일본군에 입대해서 개선하기까지 병사들

이 해야할 일, 후방에서 (당시는 총의 뒤편이란 뜻으로 총후라고 했지요...) 해야할 일 까지 묘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일출신문 조선쌍육, 민족문제연구소 5층 전시실에 오시면 직접! 실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이 일출신문 조선쌍육에 나와있는 그림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지요.

민족문제연구소5층에 있는 전시실에는 쌍육 뿐만이 아닌 일제시기 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앞으로 역사관이 제대로 건립되면 아직 수장고에 있는 여러 물품들을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을 텐데...

제대로 된 역사관을 지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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