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2.07.16 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2. 2012.07.12 박정희 유신시대가 향수? 그 때가 그리운 분들을 위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 쌩얼" 중간 정리] (2)
  3. 2012.06.29 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4)
  4. 2012.06.19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1)
  5. 2012.03.19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개시!!!! (2)
  6. 2012.03.08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의 1012번째 집회, 1000번의 눈물, 그리고 다시 12주가 흐르다. (1)
  7. 2012.03.07 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8. 2012.02.17 EBS 역사채널e 팀이 방문했습니다.
  9. 2011.10.26 친일인명사전의 기적, 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10. 2011.10.26 간절히 호소합니다. (1)

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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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하나하나 포장해서 기증해 주신 자료 215점



심정섭 회원이 한점 한점 포장해서 기증해 주신 자료 ⓒ 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이 지난 5월에 이어 또 근현대사 관련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 해 주셨습니다. 자료는 총 215점을 헤아립니다. 한점 한점 꼼꼼하게 직접 포장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기증해주신 자료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나주지역에서 발행된 영수증, 지세명기대장각종 서신, 간찰, 1940~1960년대 상장, 근하신년 엽서, 명함, 금융자료, 지방행정자료 등 입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나눈 편지



경성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 ⓒ 민족문제연구소



기증 해 주신 자료 가운데 몇 가지  재미있는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경성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장 눈에 띕니다. 편지봉투에 적혀있는 아버지는 박진옥(朴陣玉)씨 입니다. 조선총독부 직원록을 확인 해 보니 1940년에 해남군 삼산면장(三山面長)을 지내신 분 이네요.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볼 수 있습니다.


"곧 있으면 신체검사를 한다"

"식대와 하복비를 보내달라"

"매월 근로봉사에 출석하고 있다"

"졸업시기까지 학도근로동원을 나가고 동급생들은 3일간 연성을 받는다"

"졸업식은 320일에 시행한다"

"고무신을 잃어버렸다"


고무신, 졸업식과 같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학도근로동원, 연성, 근로봉사와 같은 내용은 전시체제기의 학교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보여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1944년 원동무역 증권



심정섭회원이 기증해 주신 서류 중에는 원동무역주식회사의 증권도 있습니다. 원동무역주식회사는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무역회사였습니다.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 원동무역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지역유지인 옥기환 씨와 애국지사 명도석 선생이 설립한 이 회사의 이익금의 일부는 백산 안희재 선생과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전시 경제통제 강화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지금도 남성동 91-1번지에는 원동무역주식회사 터가 남아있습니다.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귀한 자료기증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 자료기증에 대한 감사패 증정 박한용 연구실장님과 함께


기증해 주신 자료는 연구소에서 정리, 분류 후에 자료실 전시, 기획전시 등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심정섭 회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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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시대가 향수? 그 때가 그리운 분들을 위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 쌩얼" 중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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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 칭했던 박근혜씨의 발언을 옹호하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언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처절하게 과오를 반성해야 할 유신의 망령이 화려하게 부활할 기세입니다. 이에 편승하여 권력을 취하고자하는 수 많은 "유신 전도사"들이이미 박근혜씨 주변과 전면에 포진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독재를 미화하려는 그들은, 이제 친일까지 미화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대표적인 역사테러가 바로 "국사교과서"입니다.친일파 서술이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서술은 대폭 축소된 반면 경제성장에 대한 찬양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근현대사 교육 시간 자체가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종박'세력들의 "멘붕적 역사관"이 그대로 학생들에게 주입되지는 않을지 두렵고도 참담한 마음입니다.

 

군사쿠데타는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미덕을 부인하는 입니다. 거기에는 도덕과 윤리, 정의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총을 갖고 칼을 갖고 탱크를 가진 힘센 놈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행위에도, 정의를 외치던 인사들과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다 탄압하고 고문했던 폭악한 반인륜적 행위에도, 노동자의 권리는 고사하고 인간의 권리 조차 누릴 수 없었던 열악한 노동탄압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들은 이 시대가 그립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박정희 향수속에는 강도적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페어플레이가 없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이 온 사회를 지배 했던 비민주적인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시금, 박정희의 업적을 찬양하고 숭앙하는 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 시절을 향수로 기억하고 싶은지 말입니다.

정치적 의사는 고사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막걸리 한잔 마시다 빨갱이로 몰려 고역을 당해야 했던 그 시절, 노래는 금지되고 헤어스타일, 치마길이까지 모두 통제 당했던 그 시절, 강요된 경제성장론으로 살인적인 노동에 저항하지 못하고 폐병이 들어 비참이 쫒겨나야만 했던 그 시절, 우리의 아들'딸이 다니던 학교에서조차 병영훈련을 받으며 땀흘려야 했던 그 시절.

박정희 유신시대...과연 향수라고 여기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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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1961년 5월 18일 민족일보 사건이 일어난다. 군사정변세력은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해 군사독재체제를 수립했다.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진보언론이었던 민족일보는 간부들이 체포되며 폐간되었다. 민족일보사장이었던 조용수는 결국 사형까지 당했다. 유신정권의 폭압성을 보여주는 서막에 불과했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 쌩얼1] 64년 3월,한일국교정상회담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 경제협력자금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이에 박정희정권은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 쌩얼 2]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 일본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시작된 '기생관광'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에 따라 본격적으로 확산되기시작했다.이를 널리 장려하던 유신정권에게 이 여성들은 일종의 천연자원이었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 쌩얼3]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박정희 정권은 3선개헌을 위해 부정선거로 개헌의석을 차지했고,이를 덮기 위해 동백림 사건을 조작.독일유학생과 교민 중 간첩으로 지명된 사람들은 한국으로 납치되어 구속되어 고문을 받았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4] 69년 3선개헌 반대투쟁! 박정희정권은 정권연장을 위해 67년6월8일 부정선거를 자행하며 개헌의석을 확보했고,69년 3선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정권은 탄압의 강도를 높이며 개헌을 강행, 결국10월17일 3선개헌은 최종 통과되었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5] 1970년11월13일,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고분신했다.조국근대화란 미명하에 놓여진 유신시절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과 한국사회 민주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쌩얼 6] 1973년8월8일,10월유신 선포시 일본에 있던 김대중은 이에 저항했고, 정권은 김대중을 납치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다 실패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이 사건으로 유신은 국제적 비난과 해외동포들의 유신반대운동에 부딪혔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쌩얼7] 1973년10월02일,유신독재 아래 모두가 숨죽일때 서울대에서 유신 이후 최초의 시위가 발생하여 전국으로 확대되자 초강경 정책으로 일관하던 박정권은 유화책으로 처벌을 백지화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위는 그치지 않았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쌩얼 8] 73년10월19일, 유신반대학생들을 지지한 서울대 법대 최종길교수에게 당국이 유럽간첩단사건의 협의를 발표하자 최교수는 결백을 증명하고자 자진 조사를 받았다.그는 3일후 변사체로 발견, 당국은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쌩얼 9] 74년01월08일 긴급조치1,2호발표!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의 특별조치이다.긴급조치는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었으며 74~79년까지 총 9차례나 공포되었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10] 74년01월26일 문인간첩단 사건.73년 10월부터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의 유신반대운동이 일자 문학계에서도 74년 1월 문인 61명의 개헌지지성명을 발표. 보안사령부는 이들을 고문해 조작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조사했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11] 74년4월3일,민청학련사건! 유신반대운동을한 대학생들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정부는 이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며 긴급조치 제4호를 발표하여 1024명을 조사했고 203명을 구속했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12] 74년4월25일,민청학련사건의 배후로 인혁당 관계자들을 지목 사건 조작. 사형 8명,무기징역 7명,징역20년 4명, 징역15년 4명 등을 선고했다. 8명은 대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집행,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었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쌩얼13] 긴급조치로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고 외부간섭배제,기자불법연행거부 등을 결의했다.정권의 압력으로 무더기 광고해약사태로 백지광고가 개제되었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쌩얼14] 75년2월에 실시된 유신헌법의 신임투표에서는 유권자의 79.8%가 참가하여 73.1%의 찬성을 얻었다.유신헌법에대한 어떤 비판과 이의제기도 처벌되었던 당시 상황은 관권선거의 전형적 사례로 정권은 이후 더욱 강경해졌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쌩얼15] 74년12월14일,유신정권에 의해서 조작되어 무고한 시민8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인혁당사건'에 고문조작설을 제기하며 전모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던 시노트 신부와 오글 목사가 박정희독재정권으로부터 강제추방되었다

[트윗으로보는 유신의쌩얼 16] 75년04월11일,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이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저항,학내의 자유성토대회에서 양심선언문을 읽고 할복자살했다.장례 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였고 이는 민주진영의 지식인,특히 여러시인들의 감성을 일깨웠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17] 동일방직노동자들은 72년 한국최초의 여성지부장을 선출하며 권리를 주장했다.회사와 경찰은 노조를 탄압하며 대의원 대회를 무산시켰다. 76년 7월 여성노동자들은 옷마저 벗어가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행해갔다

[트윗으로보는유신의쌩얼18] 1975년 08월 17일 장준하는 김대중과 재야세력을 규합하여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벌이기로 합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준하는 제2차 100만인 개헌서명운동을 불과 3일을 남겨 두고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으로 민족문제연구소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다시 연재될 "트윗으로 보는 유신의 쌩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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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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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두 번의 성공적 마감 !

 

우리 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이 소셜펀딩 개미스폰서를 통해 공동으로 진행한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_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지난 2월 28일~4월 1일 사이 모두 2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총 1천만 원이 넘는 모금이 이뤄졌고, 전국 각지 44곳의 대안학교, 마을도서관, 시민단체 등에 친일인명사전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학교에 전할 6권의 사전은 ‘조선학교돕기 몽당연필’에서 오는 6월 22일 개최한 도쿄 콘서트 즈음에 해당 조선학교로 전달할 예정이라 합니다.

 

 

두번째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사전 기증처 20곳

 

 

 

소셜펀딩, 공감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

 

연구소는 소셜펀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사전이 발간된 지 만 2년이 지난 뒤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단 3일 만에 목표모금액을 초과달성하고, 연이은 2차 프로젝트 역시 20여일 만에 성공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의 사회적·교육적 가치를 지지하고 역사정의실현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전체 인원은 292명이고, 이 중 두 번의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한 분도 5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같은 주소의 참여자가 꽤 있어 확인해 본 결과, 한 가족이 각각의 이름으로 참여경우였습니다. 대구의 어느 노신사께서는 연구소로 전화해 인터넷으로 모금을 할 수 없으니 방법을 가르쳐 달라했고, 그 인연이 연구소 회원가입으로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죽기 전에 대구가 바뀌는 걸 보고 싶다”는 노신사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이을 또 하나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2009년 발간한 이래 끊임없는 소송에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친일인명사전의 힘은 철저히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실상과 해방 후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역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내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 가득 안고 시민여러분이 보여주실 또 한 번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습니다.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를 정직하게 보여줄 시민역사관에도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다둥이카드소지자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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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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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의날, 새마을식당, 새마을운동

 

언제부턴가 다시 새마을운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마을 깃발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4월쯤에 거리를 지나면서 새마을운동 깃발이 거리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새마을깃발이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제 2회 새마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거리마다 단 것이더군요.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새마을운동이 다시 눈앞에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마을의날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은 채 2011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년 4월22일 새마을의 날은 국가기념일이 되었지요.

 

 

우리 주변에는 60~70년대 컨셉의 식당이 꽤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은 그중 하나입니다. [출처 : 새마을식당 홈페이지]

 

 

 

또하나 우리 주변에서 유행하는 새마을이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이지요. 비단 특정업체 '새마을식당' 뿐만이 아니라 몇년 전 부터 60~70년대 식의 식당들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이 생겼습니다. 왠지 촌스러운 인테리어에 옛날 영화 포스터, 양은냄비, 막걸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새마을 식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왜 이런 컨셉을 잡았는지 설명이 있습니다. 

 

“1960~70년대식의 인테리어와 식사시간에 흘러나오는 새마을 노래는 먹는이로 하여금 그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어린 시절과 고향생각에 푹 빠지게 만들어버립니다”

 

“정감있는 컨셉”, “향수가득한 어린시절” “고객들의 향수 자극”

 

 추억, 또는 향수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 중 사업가가 잡은 소재가 새마을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어느순간에 우리주위에 다시 보이고 있고, 어르신들의 머릿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새마을운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박정희가 주도한 새마을운동

 

부산에 전시중인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전시 중 새마을운동 부분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1970년 4월 한해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1971년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정권이 직접 나서서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새마을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할 정도로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은 전국민적운동으로 확산되었고, 1975년에는 공장새마을운동, 도시새마을운동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새마을운동하면 근면, 자조, 협동이 들어갔습니다. 농민들에게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일종의 민족성 개조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자포자기에 빠진 농민들에게 '하면된다'는 신념을 준 위대한 정신개혁운동이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국민정신함양운동이었다" 라고 선전되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치적이라는 새마을운동, 과연 새마을운동은 농민을 잘 살게 만들었을까요?

 

한국사 최대, 최장의 국가대중운동이라는 새마을 운동은 극단적인 찬양과 비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근대화의 세계적인 성공사례의 반면에는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일사불란한 획일주의, 외형적 실적주의, 집단주의라는 폐해를 남겼다는 비판이 있지요.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 정말 농촌은 잘 살게 되었을까

 

새마을 운동이 외형상 농촌의 환경을 크게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당시 남아도는 시멘트를 각 부락에 배당하면서 이루어 진 것이니까요. 많은 흙길들이 시멘트 도로로 바뀌고 초가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바뀌면서 지금의 농촌모습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지요. 다양한 소득증대사업이 전개되면서 농민들은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소득도 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10년동안 농가소득은 10배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농가부채가 쌓이기 시작한건 이때부터였지요. 농민들의 이농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평가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건 지금 농촌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대 김영미선생님의 책 '그들의 새마을운동'중에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김영미선생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입니다.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2009

-잘살기 운동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존재했다. 해당 시대 해당 지역의 각 주체들은 최선을 다해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농민들이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농민들은 게으름뱅이에 잘 살려는 의지가 없었으며 농촌 사회에는 부지런한 농군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농민에 대한 우리들의 선조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근대화는 빠른 속도로 앞당겼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민들이 진정으로 잘 살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잘 살게되었다는 지표는 대단히 가시적인 것들이다. 마을환경의 근대화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이 가시적인 성과가 새마을 운동을 성공적인 근대화운동이었다고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꼽히고 있다.그러나 소득증대를 통한 농가경제의 수지 개선은 환경개선처럼 노력만 하면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가 부채는 급증했다.

 

-새마을 운동은 과연 성공적인 농촌 근대화의 모델을 창출했는가. 새마을 운동으로 한국의 농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주체가 되었는가. 과연 박정희 정부가 그렇게 강조한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자조하는 농민이 되었는가? 새마을운동이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평가와 함께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바로 근대화의 질에 대한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데 실패했다. 청년들이 사라진 농촌,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생력을 상실한 농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농촌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새마을 운동이 고조되던 1970년대였다.

 

 

이렇게 말도많고 탈도많은 새마을운동, 그런데 새마을 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천재적인 발상으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새마을운동과 매~우 닮은 운동들이 이전에도 있었지요.  다음포스팅에서는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새마을운동에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링크와 참고할 만한 책을 걸어둡니다. 

 -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새마을운동아카이브

 -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 

 - 오마이뉴스 120421 새마을 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라니



1부 

(1)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2)새마을 운동의 숨겨진 기원

2부 

(1)조국근대화 빛과 그림자 / 

(2)시국선전뉴스와 대한뉴스

3부 

(1)학교, 그 잔혹한 풍경

4부 

(1)총력안보와 전국민 병사만들기

(2)금지곡의 사회사

5부 

(1)명치유신, 소화유신, 그리고 10월유신

6부 

(1)감옥에 갇힌 진실

(2)증언으로 보는 부마항쟁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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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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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포스팅 "3일만에 목표 달성된 "친일인명사전 기부 프로젝트" 에서 말씀드렸었지요?

세상에 이벤트를 시작한지 3일만에 끝나버려서... 많은 분들의 문의가 있었다고요...

그 . 래 . 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 2가 개시되었습니다.!!!!!!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 -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시즌2 바로가기

친일인명사전 지정 기부처 추천 바로가기


어린 딸을 위한 선택 from MinjokMovie on Vimeo.


두번째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많은 분들이 사전 기부프로젝트의 성공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좋은 취지를 더 널리 알리지 못하고 그쳤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해주셨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직한 역사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참여자들의 바람을 담아 한차례 더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난 2월 28일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에서 3·1절을 계기로 추진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불과 3일 만인 3월 2일 모금목표를 달성하면서 성공적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이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 캠페인이 전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불과 11일 만에 5억 원의 편찬기금을 조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역사정의 실현에 대한 시민들의 간곡한 정성들이 모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닌 지금 현실의 문제이자 아이들의 미래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회 현실입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고, 미래 주축이 될 우리 아이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십시일반 모아 주신 성금은, 선정된 각 도서관·학교·단체에 기증될 친일인명사전 구입비로 쓰입니다. 한편 연구소는 사전 판매 수익금 전액을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시민역사관은 친일인명사전에 담겨있는 일제강점기 오욕의 역사를 실물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시민들의 치열했던 친일청산 운동도 자랑스런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할 예정입니다.

 시민역사관 홍보를 위해 연구소에서 제작한 아래 영상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꼭 봐야할 동영상>, <20,30대라면 꼭 봐야할 동영상>이란 영예로운 별명을 얻고서 시민들 스스로 온라인 곳곳으로 전파하여 현재 50만 명 이상이 보고 접했습니다. 역사가 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서야 할 현실이자 개척해야 할 미래인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from MinjokMovie on Vimeo.


정직한 역사, 친일인명사전을 나눕니다.


20권의 친일인명사전(1권당 300,000원)을 기증하려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미래세대와 친일인명사전을 나누고 싶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비록 오욕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지향하는 바는 정직한 역사 그리고 건강한 미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르고 정직한 역사를 알려주기 위한 사전 기부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세요.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의 기부프로젝트에 참가해 주신 분들의 이름으로, 선정된 도서관에 사전 20권을 기증합니다.

지금까지 추천된 도서관은 금산 간디고등학교 지혜마루 도서관, 공간민들레, 성지송학중학교, 느티울 행복한 학교, 해룡 농어촌도서관, 성미산학교, 홍동밝맑도서관, 박경리문학공원토지학교, 부산교육연구소, 일본 조선학교 3곳, 제주포럼C 입니다. 아직 몇 군데가 더 남았습니다.




소셜펀딩 개미스폰서에서 기부도 하고 추천도 부탁드립니다.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를 성원해 주셨던 여러분들의 바람을 조금이라도 빨리 이어가고자 하는 맘이 앞서 10여 곳의 기부처만 우선 선정했습니다. 여러분이 나머지 기부처 선정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댓글 게시판이나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기부처를 추천해 주세요. (클릭하시면 바로 갑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고, 18년 만인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3권 2,850쪽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 친일인사의 행적이 가감 없이 담겨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각종 공문서·자료 등을 집적한 총 3,000여 종의 원사료와 450여 종의 데이터베이스를 기초자료로 분석·정리해 구축한 약 300만 건에 달하는 인물정보를 바탕으로, 각계 전문연구자 180여 명이 방대한 한국근현대 기록과 오랜 기간 씨름한 끝에 얻어낸 소중한 연구 결과물입니다. 연구소는 현재 친일인명사전을 실물로 생생하게 재현할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프로젝트 집행계획


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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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의 1012번째 집회, 1000번의 눈물, 그리고 다시 12주가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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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차 수요시위(3월 7일)는 연구소가 주관하였습니다. 

이번 수요시위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과 더불어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회, 노틀담 수녀회, 까리따스 수녀회, 통합진보당, 일제 피해자공제조합회원일동, 한국정신대연구소, 구리 연극협회 극단 마중물, 일본 오사카 대학원 일본학과 학생들을 포함한 약 5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할머님들의 건강이 조금 걱정되더군요. 

성명서와 함께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달합니다. 

  제 10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성명서

지난 해 겨울 1,000번째의 수요시위 이후 또 12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주 아흔 세 번째 3.1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한 세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원폭,강제징용 등 전쟁피해자들에게 어떠한 실천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사죄도,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땅이라 가르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등 일본 정부 차원의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했다는 대한민국의 정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건국절’ 제정이나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개악문제 등 일본과 다르지 않은 ‘역사왜곡’이 정부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는 일제 강점시기 ‘일본군 위안부’ 등의 강제동원 문제를 언급하지 않다가 1,000회 수요집회로 국내외의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시안에 넣기도 했다.

지난 해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정부가 구체적 해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해결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떠넘겨왔다. 

그러다가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15일, 헌재 결정에 따른 조처로 일본정부에 ‘위안부’에 관한 외교적 협의를 정식 제안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과 3.1절 행사에서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선거용’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늦게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정부는 일회성 제스처에 그치지 말고 공식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협상을 벌여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확인시키고, 공식 사죄와 배상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본정부를 압박해야 할 것이다.

이미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해 국제사회는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과와 법적 배상을 할 것을 촉구해왔다. 이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선 데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가 20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도 폭력과 야만에 대한 책임을 또다시 미룬다면 일본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올바르고 조속히 해결될 때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 일본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하고, 다시는 이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명확한 조치를 이행하라!

* 한국정부는 ‘조용한 외교’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 외교’ 노력을 다하라!

* 한국 정치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정치적 노력을 다하라!  

2012년 3월 7일 

민족문제연구소

제 1012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 일동


▲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012차 수요시위 전경


▲시위에 참석한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님들 모습


▲사회를 맡은 서우영 시민역사관 건립 사무국장이 할머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연구소 직원과 자원봉사자



▲자유발언을 하고 계시는 이용수 할머님



▲일본대사관을 향해 사과를 촉구하고 계시는 김복동 할머님


▲제 10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성명서 낭독


▲일본의 사과와 법적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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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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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EBS 역사채널e 팀이 방문했습니다. 에서 말씀드린게 있지요?

역사채널 e 팀이 방문해서 어느것?에 대해 설명듣고 조사를 해서 갔다고 했었습니다.

힌트는 사진에 있었다고 했었지요?

역사채널e 팀이 조사해 간 어떤것(?)은.... ⓒ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채널 e 팀이 조사해 갔던 자료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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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월 1일 일본에서 일출신문 부록으로 발행한 조선쌍육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일출신문 조선 쌍육 이었습니다.

자, 그럼 영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볼까요??  일단 감상 해 보시지요~~





쌍육,


지금으로 치면 보드게임 입니다.

아이들이 놀게 만든 보드게임에 조차 조선병합을 담았었습니다. 그때는.....

말그대로 조선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지요. 놀이를 통해서 이렇게 강제병합에 관한 일들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이 뿐만 아닙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 중인 다른 쌍육에는 전시체제기 일본군에 입대해서 개선하기까지 병사들

이 해야할 일, 후방에서 (당시는 총의 뒤편이란 뜻으로 총후라고 했지요...) 해야할 일 까지 묘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일출신문 조선쌍육, 민족문제연구소 5층 전시실에 오시면 직접! 실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이 일출신문 조선쌍육에 나와있는 그림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지요.

민족문제연구소5층에 있는 전시실에는 쌍육 뿐만이 아닌 일제시기 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앞으로 역사관이 제대로 건립되면 아직 수장고에 있는 여러 물품들을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을 텐데...

제대로 된 역사관을 지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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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역사채널e 팀이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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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역사채널e 팀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전시중인 어떤 것(?)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와서 어떤 것(?)에 대한 설명도 듣고 다른 전시물도 찬찬히 둘러보고 갔습니다.

저는 지식채널e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년 부터 역사만 단독으로 팀을 꾸려서 방송을 해왔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지식채널e를 참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서, 이렇게 취재를 오니 반갑습니다.

아직 방송 전이라 자세한 내용을 올리기는 좀 걱정스러워 이렇게 힌트만 드립니다. 어떤 것(?)은 아래 쪽에 올린 사진에 있습니다.

정답발표(?)는 EBS방송이 나간 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방송 영상 링크와 함께 상세한 설명을 같이 올려드리지요.  EBS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만들어 줄 지 기대됩니다.



"역사관건립위 사무국" 카테고리에서는 시민역사관을 준비하며 있게 될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올려드릴 예정입니다. ^^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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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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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역사왜곡!
수구세력의 역사반란! 시민의 힘으로 막아내자!

역사정의의 실현을 바라는 시민 여러분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우리 근현대사가 백척간두에 서있습니다. 현 정권 들어 역사왜곡이 도를 넘고 있는 것입니다. 집권초의 건국절 논란으로 시작된 과거회귀세력의 역사조작 음모는 이제 전방위에 걸쳐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항일세력을 탄압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살인귀로 악명을 떨친 간도특설대의 장교 출신 백선엽과 김백일의 기념조형물이 세워졌습니다.


사월혁명 때 시민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끌어내려진 독재자 이승만의 동상도 다시 세워졌습니다.


시민사회가 온 힘을 다해 저지했던 박정희기념관도 오는 11월 15일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집요하게 역사왜곡에 앞장선 것은 어제 오늘의일이 아니지만, 이제 국민들이 내는 시청료로 지탱하고 있는 공영방송까지 권력의 시녀가 되어 정치적 의도가 명백한 친일·독재·재벌 찬양 방송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백선엽을 조국을 구한 전쟁 영웅으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이병철 정주영을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떠받드는-외눈박이 역사인식으로 일관한 다큐멘터리를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이라는 미명 아래 시리즈로 제작 방영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이 모든 반역사적 몰가치적 망동을 서슴지 않는 데에는 거대한 음모가 자리잡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에서 특정정치인의 입지를 공고히 하여 보수정권을 재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구세력의 역사적 정통성을확보하고자 하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과거회귀세력의 역사파괴는 거짓 영웅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과서 대개악입니다. 한국사 전공자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면서 집필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지막지하게 국사를 뜯어 고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마저 압살한 장본인인 이승만 박정희를 추종하는 자들이 진보세력을 위축시키기 위해 감히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색깔론으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임명한 ‘역사교육과정 개발 추진위원회’ 위원 다수가 항의의 뜻으로사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저들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한편으로 식민지근대화·개발독재·독점재벌을 미화하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미래세대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수구언론과 뉴라이트 어용학자들이 깃대를 잡더니, 국방부 통일부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까지 나서 교과서 집필에 간섭을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청과 재향군인회가 냉전시대의 흑백논리를 어린이들에 주입시키려 반공만화책을 무더기로 배포하는 등 시대착오적 망발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정도가 과거 어느 권위주의 정권 때보다 한층 더 노골적이어서, 민족사가 훼손되고 역사정의가 실종되는 날이 가까워 옴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발맞추어 이명박 정부는 2012년 12월 개관을 목표로 광화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건립하고 있습니다. 독재정권과 냉전시대를 그리워하는 기득권세력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치기하려는 음모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자, 교묘하게 우회하여 입맛대로 거짓 역사를 전파할수 있는 역사왜곡의 선전장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시민 여러분! 거대한 역사왜곡이 치밀한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송두리째 훼손하려는 만행이 백주 대낮에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두고 본다면 광화문 대로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이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조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조작을 방치한다면 교육의 백년대계가 무너짐은 물론 나라와 민족의 미래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독립운동 선열들과 민주영령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어찌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민족문제연구소는 18년간의 대장정 끝에 친일인명사전을 펴냈습니다. 이제 역사관을 건립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전파하는 민족사의 보루가 되고자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역사관은


첫째, 친일로 얼룩진 한국근현대사의 진실과 친일청산운동의 역사를 알려나가겠습니다.


둘째, 뉴라이트가 전파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막아내겠습니다.


셋째, 반민주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이승만·박정희 정통론을 분쇄하겠습니다.


작은 힘이 모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진실을 우리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에서 확인했습니다. 역사의 주역이신 시민 여러분. 민족문제연구소가 다시 한번 역사전쟁의 선봉에 서겠습니다. 작지만 옹골찬 역사관을 세워 저들의 반역사적 반민족적 불의에 맞서 분연히 싸워나갑시다. 모두 함께 역사관 건립의 주체가 되어주십시오.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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