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2.03.12 [박정희 기념관 폐관 촉구 기자회견 성명서] (1)
  2. 2012.02.22 박정희 기념도서관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4)
  3. 2012.02.20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개탄 기자회견
  4. 2012.01.30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1)
  5. 2012.01.11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1)
  6. 2011.12.05 일본군 장교 출신 유재흥, 아버지 유승렬에 이어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 (1)
  7. 2011.11.17 친일인명사전 발간 2주년 기념,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됩니다 (1)
  8. 2011.11.15 역사정의 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 (2)
  9. 2011.11.11 "역사정의 실천연대"가 발족합니다. (6)

[박정희 기념관 폐관 촉구 기자회견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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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관 폐관 촉구 기자회견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기념관 폐관 촉구 기자회견 성명서]


기념관이 웬말이냐, 친일·독재 사과하라!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가 처참하게 능욕당하는 비극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독재자 박정희의 기념관이 도서관이라는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간 우리는 박정희 우상화의 본산이 될 기념관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그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지원이 일시 철회되는 성과도 거두었으나, 수구세력의 집요한 압박으로 결코 만들어져서는 안 될 기념관이 들어서는 참담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국민들의 압도적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 대기업들의 기부금과 혈세를 동원 기념관을 개관한 일은 수구세력이 저지른 또 하나의 반역사적 폭거로 기록될 것이다.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말인가?

박정희는 안정된 교직을 팽개치고 삼수한 끝에 혈서지원이라는 묘수까지 써가며 자발적으로 황군의 장교가 되었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는 감탄을 들으며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괴뢰 만주국의 군인이 되어 항일세력 탄압에 앞장섰다.
해방이 되자 기민하게 광복군에 편입하여 국내로 들어왔으며, 시류를 좇아 남로당에 가담하고 군부 내 좌익세력의 핵심으로 암약하였다.
여순사건이 일어나 사세가 불리해지자 숱한 동지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넣은 대가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리를 보전하였다.
이승만 정권 때부터 틈만 나면 쿠데타를 운위하며 정치군인으로서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마침내 기회가 오자 다수 군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5·16쿠테타를 일으켜 4월혁명의 정신과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민정이양·군부복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반칙과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기나긴 독재정권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앞으로는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뒤로는 국정을 농단하고 온갖 비리의 원천이 되었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하여 헐값에 민족자존심을 팔아넘기고 이 와중에도 정치자금을 조성하였다.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 농민들을 핍박하고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어 독점자본을 굳건히 함으로써 오늘날 1%만을 위한 계급사회의 반석을 놓았다.
국민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기집권을 위해 삼선개헌으로 헌정을 유린하고 반대세력을 폭력을 동원 탄압하였다.
심지어 민족의 숙원인 통일문제까지 정권연장에 악용하였으며, 이를 빌미로 친위쿠데타인 10월유신을 일으켜 종신총통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 기도하였다.
민주화항쟁을 총칼로 탄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정권유지를 위해 고문과 사법살인 등 인권유린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대한민국을 암흑 속에 신음하는 거대한 병영국가로 전락시켰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로 연결되기 마련인 법.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한 썩을대로 썩은 권력은 도덕적 타락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낮에는 농민들과 소탈하게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고 밤에는 연예인들과 음주가무로 밤을 지새는 위선자. 정수장학회 영남대 강탈 등 청렴결백과는 거리가 먼 권력형 부정축재자. 이것이 독재자 박정희의 진면목이다.

이 자리에서 그 죄과와 악행을 두루 밝힐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 박정희의 망령을 불러내려는 자들에게 다시 묻는다. 역사 앞에서 진정 진실을 감출 수 있다고 보는가. 배신 변절 독선 폭력 오만 반칙 부정부패 황음. 이 중 무엇을 기념하고 싶은가. 어떻게 왜곡하여 미래세대를 오염시키고 싶은가.

박정희가 집권한 시대는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독재, 그리고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치관이 투쟁하던 시대였다. 이 빛과 그림자의 대극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반민족과 반민주 그리고 반통일의 화신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이 어둠의 자락 아래 수많은 친일잔재와 파쇼세력이 기만적인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때로는 ‘박정희 신도’로 자처하면서 박쥐와 같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정희 집권기 구축된 기득권세력이 우월한 지위와 특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상징화 작업이 바로 오늘 문을 여는 박정희 기념관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는 결코 기념할 대상이 아니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독재로 이어진 오욕의 20세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21세기 민족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더욱이 박정희와 그 추종세력들은 30년이라는 기나긴 군부통치 기간, 각종 국가기구와 관변단체를 통해 이른바 박정희이데올로기라는 파쇼적 가치관을 국민 뇌리 속에 각인시켜 놓았다. 이제 다함께 치열한 각성을 통해 다시는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을 바로잡아야 한다.

유신 40년. 자숙해야 할 유신잔당들이 유신의 망령을 무덤 속에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우리가 오늘 이 기념관을 허용한다면 머지않은 장래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의 기념관이 들어서는 희극적 비극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켜만 본다면 우리들은 정신적으로 그들의 압제를 영원히 벗어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박정희 기념사업이 아니라 박정희 청산사업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박정희기념관은 즉각 문을 닫아야 한다.

2012년 2월 2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 한상권(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
                공동대표 : 김영훈(민주노총 위원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장석웅(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정동익(사월혁명회 의장)

논란 끝에 개관한 박정희 기념 도서관 ⓒ민족문제연구소





■ '박정희기념·도서관' 개관 일지
      1999.5.13.     김대중 대통령, 대구에서 '기념관 건립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 약속      
      1999.5.26.     '박정희 기념관 설립위원회' 창립총회, 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발족      
      2000.7.19.     박정희 기념관 부지, 서울 마포구 상암근린 공원 내로 확정.      
      2000.9.28.     250 여 단체 '박정희 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결성.      
      2001.10.5.     서울시, '박정희 기념관' 건립 허가      
      2002             기념관 건설 공사 착공      
      2004             민간보조금 확보목표액 500억원 중 100억원에 그치자 공사 중단      
      2005.3.8.       행정자치부, 확보 조건 기부금이 104억 수준에 머물자 보조금 교부결정 취소      
      2005             국고보조금 208억원 중 170억원 회수. 사업 중단, 기념사업회, 국고보조금 교부결정 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      
      2005.12.30.     1심 재판부, 원고 승소 판결      
      2007.12.31.     2심 재판부, 정부 항소 기각 판결      
      2009.4.24.      대법원, 원고 승소 확정 판결      
      2010.3           기념관 공사 재개      
      2010.4.15       박지만 씨, “기념사업회가 기념관을 건립한다며 모급해놓고 국민 동의 없이 서울시 소유의
                         기념도서관 건립으로 사업 내용을 변경했다”며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2010.5           박지만 씨가 신청한 기념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기각      
      2010.7.27       국무회의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계획(174억원 국고지원) 의결      
      2011.11.        박정희 기념·도서관 준공      
      2012.2.21.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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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도서관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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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도서관은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다
 - 박정희 기념 ·
도서관 개관을 보며


역사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21세기 역사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1972년 공포의 유신 독재 40년 만에 박정희라는 친일 독재의 망령이 무덤에서 부활하고 있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세상이 뒤바뀌고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결코 박정희는 기념할 대상이 아니다.

박정희군이 혈서로 군관을 지원했다는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자 보도. ⓒ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가 누구인가. 그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천황을 받들고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교사직도 팽개치고 자진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고 일본 육사를 거쳐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는 데 앞장 선 다카기 마사오, ‘최후의 일본제국군인’이었다. 모든 조선인들이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는 패전을 맞이했다. 일제가 패망함으로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것만이 일제 식민지시기 박정희의 삶의 실체였다. 천황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한 그가 일본이 패망하지 자결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박정희는 일본 천황제파시즘의 정점에 있었던 일왕 쇼와의 아들이다. 그가 선포한 10월유신 조차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근대화 모델과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가 내세운 군국주의 이념인 쇼와유신의 분단형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는 민족반역자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다. 4.19민주혁명의 꽃을 군화발로 무참히 짓밟으며 이 땅에 18년 군부독재의 길을 장본인이다. 심지어 남북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체제를 선포해 종신독재를 꿈꾸었다.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조국과 민족 그리고 사상과 양심마저 내던지며 변신을 거듭한 자가 바로 박정희였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박정희만은 결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어느 독립운동가는 절규했다.

박정희가 걸어온 삶이 이렇듯 뚜렷하게 부정적이기에, 그의 추종자들조차 박정희의 공로로 드는 것은 오직 하나 경제성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밑천으로 내세우는 대일청구권자금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수많은 범죄사실을 불과 몇 푼의 돈을 받는 대가로 눈감아 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한일협정 전후 불법적인 검은 돈의 뒷거래가 이루어졌다는 미 중앙정보부의 충격적인 보고서도 공개되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어 독립국가로서 새로 조약을 맺으면서 이 무슨 매국적 망발이란 말인가! 이 미 정보부의 보고서의 진실도 밝혀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선진화를 하겠다고 하면 장기집권을 용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산26번지에 자리한 '박정희 기념.도서관



허울 좋은 ‘고도성장의 금자탑’ 아래에는 ‘베트남전쟁’에서 의미 없이 죽어갔거나 아직도 고엽제 휴유증에 시달리는 수만 명 베트남 참전군인의 비극과 베트남 민중의 한이 배어 있다. 박정희가 휘날린 조국근대화의 허황한 깃발에는 저임금 장시간 중노동에 항의하다 무참히 짓밟힌 노동자들의 피가 묻어 있다. 새마을운동의 노래가 높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빚더미에 눌린 농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화려한 도시의 그늘 아래 수 백만 도시빈민의 통곡이 넘쳐흐른 게 박정희시대였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장기집권이 불가피했다고?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많은 독재자들이 장기집권을 위해 내세운 상투어가 바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러고는 제멋대로 헌법을 뜯어고치고 군대와 경찰 그리고 정보조직을 통해 피로써 장기집권을 꾀했다. 그리고 예외 없이 국민들에게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한 사실을 상기하라. 박정희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박정희의 이른바 근대화는 ‘피의 근대화’였다. 앞으로도 선진화를 하겠다고 하면 장기집권을 용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박정희시대에는 오적(五賊)과 떡고물로 표현되는 부정부패가 보다 거대한 규모로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았다.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재벌의 족벌 경영,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만성적인 외채경제는 박정희가 주조한 왜곡된 경제구조의 핵심이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심지어 박정희와 그의 추종자들은 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가치가 유보될 수 있다고 주장해, 인간을 오직 빵으로만 사는 동물적 존재로 돌려버렸다. 박정희가 민주화를 훼손시켰지만 경제성장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희생해도 좋다는 전도된 가치관에 다름 아니다. 이런 반인간주의 이념을 21세기 한국사회의 가치관으로 계승, 보급한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하겠는가!


국민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거대한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 바로 ‘박정희기념.도서관’이다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개관한 21일,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주최한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즉각 중단 기자회견’이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서 열렸다


박정희가 집권한 시대는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독재, 그리고 통일과 반통일이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치관이 투쟁하던 시대였다. 이 빛과 그림자의 투쟁에서 박정희는 언제나 반민족으로, 독재로 그리고 반통일의 화신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이 암흑의 지배 아래 수많은 친일잔재와 파쇼 세력이 기만적인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때로는 ‘박정희 신도’로 자처하면서 박쥐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기념사업’은 박정희 시기 그의 ‘공범’들과 박정희가 남겨놓은 관변 시스템에 유착한 세력 그리고 지지 기반을 넓히려는 현 집권층의 권력욕 그리고 ‘뼛속가지 친일과 친미로 물든’ 이명박 대통령의 자의적인 역사 해석이 엉키어 진행되는 추악한 권력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집권기 구축된 권력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21세기까지 연장하고 정당화하고자 국민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거대한 범죄의 재구성 현장이 바로 ‘박정희기념.도서관’이다.

더구나 이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기념관측은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친일과 독재를 해도 버젓이 기념하는 이 시대의 역사범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 것인지 차마 낯을 들 수 없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을 용납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한 예비 범죄마저 방조하는 것에 다름없다.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 집권 여당의 최고 실력자이자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공인의 신분임에도, 아버지의 친일과 독재의 업을 대속하는 대신 그 업적을 칭송하는데 앞장서는 데 대해 우려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이 무색하게 헌누리당으로 가는 이 역사의 반동을 방관할 수 없다. 진실이 침묵할 때 거짓이 장화를 신고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제 거짓의 역사를 뿌리봅고 진실과 정의의 역사를 세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렇다. 지금은 박정희 기념사업이 아니라 박정희 청산사업이 시작될 때이다.

*이 글은 통일뉴스에 동시 개제되었습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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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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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갑자기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이 발표되었습니다. 작년부터 개관이 계속 미루어 지다가 2월에 들어서 개관을 하는군요. 준공은 이미 2011년 11월에 완료되었습니다만, 몇달이 지난 후에야 개관을 하네요.

개관소식이 나오자 몇몇 뉴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개관중단촉구, 개명운동, 박정희 관련 서적논란 등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유신40년, 총선과 대선을 앞에 둔 시점, 그분의 따님이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고있는 지금,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일일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개관에 맞추어 개관규탄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 일단, 개관모습을 보고난 후 다시한번 글을 올리지요.



아래는 역사정의실천연대의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규탄 기자회견 안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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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 규탄 기자회견

 

 

일시: 2012년 2월 21일(화) 10시
장소: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산26번지)
주최: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1. 오는 21일 ‘박정희 기념·도서관’이 기습적으로 개관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친일·독재 전력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에 대해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회귀 세력들은 결국 국민의 혈세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역사범죄를 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올해 ‘유신 40년’을 맞아 유신잔재 청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유신의 망령을 기념하겠다는 역사날조 정점의 상징물인 것입니다.

 

2.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오는 21일(화) 오전 10시 ‘박정희 기념·도서관’ 앞에서 국민의 혈세로 친일․독재 원흉을 우상화하려는 ‘박정희 기념·도서관’ 개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습니다.

 

3.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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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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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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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기까지

▲ 연구소 앞에서 진행된 수구단체의 시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지 한 달여 뒤인 2009년 12월 8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국자유연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수구단체 회원 150여 명은 1시간 가량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폐기',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의 연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둘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바로 20일 뒤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친일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국가운영에서 배제하고 일제시기의 기득권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더 이상 민족적 과제가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 행위'로 간주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일청산을 외치는 일은 가시밭길을 넘어 목숨을 거는 위험천만한 체제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직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 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사지경에 빠진 고난 속에서도 친일파 연구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범위를 문학에서 벗어나 전 친일파로 넓혀서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중에서)

▲ 임종국 선생의 친일인명카드. 연구소는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다. 2만여 장이 넘는 선생의 친일인명카드가 있었기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가능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2003년 12월 30일,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조정래 선생이 말한 또 하나의 '모델 케이스'였습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깨어 있었고 양심들은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산 삭감 9일 만에 통쾌한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첫날인 2004년 1월 8일. 이날은 꼭 55년 전 반민특위가 당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파 청산 작업에 착수한 날이었습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5년 10개월 만인 2009년 11월 8일, 숱한 방해와 위협을 뚫고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게 7.42㎏의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조이며, 애태우고 때론 분노했던가요.

금서 아닌 금서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 보급률 32%

▲ 누가 친일인명사전을 막고 있는가? 반민특위 와해 60년만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과 교육적 가치를 외면한 일부 학교들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도서관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을 발간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얼마만큼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까요. 2012년 1월 현재, 약 4700여 질(기증 포함)이 보급되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인 점, 전문서적인 점, 30만 원으로 가격이 높다는 점, 상업 광고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은 보급 면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평입니다. 특히 발간 초기 온라인 모임인 '세계아고라정의포럼'과 '대한불교청년회'의 보급운동이 눈에 띕니다.

'세계아고라정의포럼'은 2010년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240만 원을 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노들장애인야학, 지리산고등학교, 설천재가노인복지센터 등 국내 10곳과 한국학연구소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7개 외국 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기증된 사전에는 "친일의 역사는 결코 잊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유산이기에 이 책을 나눕니다"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습니다. 대한불교청년회는 192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든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시작한 단체로 2010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사전 보급 운동을 1년 내내 벌여나갔습니다.

그러나 사전 발간을 염원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사전의 보급은 아직도 더디기만 합니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687개 도서관에 223질 밖에 보급되지 않아 보급률이 32% 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느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왜 사전이 없는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적은 예산으로 구입하기에는 <친일인명사전>이 너무 고가인 데다 희망도서신청도 없어 구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전이 비싸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을 위해 사전을 비치해 놓아야 하는데 이토록 소극적이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도서관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 장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고가의 사전류보다는 1만~2만 원 대의 단행본을 주로 구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민 다수가 지속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구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전 구입 거부하는 학교들... '친일인명사전'을 허하라

사전 보급이 더딘 이유 중에는 일선 초중고 학교의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례들은 학교 현장에서 사전 보급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 <오마이뉴스> 김행수 시민기자의 2010년 9월 9일자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교장샘, <친일인명사전> 구입하지 말라고요?)

 

▲ 이상진 전 서울교육위원이 "친일인명사전 현황 보고하라"고 지시했던 공문. 이상진 전 교육위원은 전교조를 친북좌파로 몰아붙이고 이적단체로 검찰에 고발까지 한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상임대표로 한국국공사립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져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① 서울 강서구 ㄷ고 ㅈ교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친일인명사전>을 찾을 수가 없어 확인해 보니 교장 선생님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문제 삼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교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따져 물으니 "(친일파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역사적 판단이 서로 달라 아직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보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② 사립학교인 종로구 ㅅ고 역사 교사인 ㄱ씨는 2009년 11월 수업 참고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는데 5개월이 지난 2010년 4월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서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도서선정위원회의 구입 결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③ 2010년 4월 서울교육청은 서울 소재 모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 여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진 당시 교육위원 이상진씨(전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협의회장)가 이를 문제 삼으며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공문을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이 책의 구입을 주저하였다. 실제로 ㄷ고의 사서 교사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여부를 묻는 교사에게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며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도서관에는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처음 이 공문의 존재를 제보한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히려 이 공문을 보고 더욱 친일인명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에 사전 구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 또는 상급 관청의 지시와 감독으로 인해 사전이 비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사립학교들에서는 '우리 학교 설립자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학사참여가 활발한 것으로 평가되는 광주광역시 초중고 학교의 경우를 봐도, 아직도 <친일인명사전>이 학교 담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8월 29일 광주광역시의회 김선호 교육의원은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광주시내 일선 학교의 <친일인명사전> 비치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시내 147개 초등학교는 단 1곳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중학교는 86개교 중 24개교(27.91%), 고등학교는 66개교 중 28개 학교(42.42%)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의원은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그 책 구석구석에 알알이 박혀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친일인명사전>의 국내 보급이 저조한 가운데, 이 사전의 보급을 꺼려할 만한 일본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활기를 띤다고 합니다. 국내 도서의 해외 유통을 주로 하는 어느 업체 대표는 일본의 각 대학으로 <친일인명사전>이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제 집에서 구박받는 자식, 집 밖에서 대접받는 형국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금서 아닌 금서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언젠가는 전국 방방곡곡 모든 도서관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직접 책장을 넘기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역사가 있으니까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판매 수익금 전부를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 과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학문적 기록이라면 시민역사관은 이를 풀어내 생생한 자료로 진실한 역사를 증거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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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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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에는 모두 7억 여 원이 모금됐다

2004년 초, 시민운동사에 길이 남을 누리꾼 참여운동이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60년간이나 미뤄져 왔던 친일파 청산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3년 12월 말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온갖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면서도 용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세한 예산을 찾아내 도려낸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심의의 철저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정치권의 몰염치를 비난했습니다.

2004년 1월 7일 국회의 반역사적 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기사에 어느 누리꾼(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호룡 선생)이 격동의 심경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민족사의 과제를 국가가 정녕 외면한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 그렇게 거대한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공동캠페인 조인식을 가지고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캠페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1절까지 1억 원, 8·15까지 5억 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2003년 친일인명사전 예산 전액 삭감... 모금운동 11일만에 '5억 원 달성'


▲ 2004년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금모금 공동캠페인
 협약식을 가진후 양 기관의 대표자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
소 소장, 조문기 이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운현 편집국장. 뒷줄은 차영조 민족문제
연구소 운영위원.ⓒ 김진석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모금 시작 하루만에 4000만 원이 모이더니 나흘 만에 1억 원, 엿새 만에 2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뜨거운 모금 열기에 예산 삭감을 진행한 계수조정소위의 위원장인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까지 성금을 보내왔으나 누리꾼들의 반대로 반환하는 해프닝마저 일어났습니다. 전임 대통령도 참여의 뜻을 전해왔으며 여야 의원들과 정당들도 뒤늦게 자성하며 이구동성으로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월 15일 오후 6시 행정안전부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모금 즉시 중지 결정' 공문을 연구소로 보내온 것입니다. 그날 오후 9시 방송사들은 일제히 톱뉴스로 이 기막힌 사태를 보도했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다니" "열받아서 사망 일보 직전이다. 낼 눈뜨자마자 바로 은행 가야지" 여론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이에 허성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도 성금을 냈다"고 공개하면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여론의 뭇매를 맡게 됩니다.

이제 누리꾼 모금운동에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금은 오히려 가속화돼 다음날인 16일 4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18일 밤늦게까지 온라인 입금이 계속되더니 19일 새벽 3시 드디어 목표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11일만에 2만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기금목표 5억 원을 단숨에 달성해 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믿기 힘들었던 이 순간을 '5억 돌파! 물방울이 바위 뚫었다... 명동에 울려퍼진 "친일청산 만세!"'라는 감격어린 제목을 달아 전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눈물나네…나만 그런 건가요?…사랑하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소감을 붙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벅차오르는 자부심에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절망을 접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긍정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메이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모금하는 수재의연금도 아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아닌 역사운동에, 성인 인구 1000명당 1명이 참여하고 평균 2만 원의 소액 성금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기금목표를 이뤄낸 것입니다. 누리꾼들이 스스로 '독립군 진공작전'이라 이름하였듯, 민초들이 이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역으로서, 거짓된 역사를 거부하고 진실한 역사를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기금목표를 달성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누리꾼 모금 공동캠페인을 일단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아래 국민모금으로 전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날 저녁 명동의 반민특위 터에서는 누리꾼들과 연구소 식구들이 운집한 가운데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친일청산을 다짐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압록강 행진곡'을 드높이 외치며 제2의 독립군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 2004년 1월 19일 엄마 손을 잡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8살 우빈군.
우빈군 어머니는 이번 모금상황을 보면서 우빈이와 함께 역사책을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경이로운 순간들과 북받치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오마이뉴스>와 연구소 누리집에 올라왔던 숱한 사연들을. "우리 네 딸들이 아름답고 정의롭게 커가길 바란다"며 정의의 대열에 가족 여섯 명의 이름을 모두 올려달라던 다둥이 아빠(한걸음), "반민특위 위원이 된 기분"이라던 일산 비둘기님, "제2의 독립군 군자금을 낸다"던 이석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던 새신랑(nagne1120).
 
"훌륭한 유산은 바로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라며 가족의 이름으로 동참해 주셨던 가장(cjseodls),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족이 될 수 있겠다"면서 이역만리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범부(bigground)님, 연금의 일부를 보낸다던 지체장애인, 하루 날품삯을 아들 명의로 보내온 막노동자, 면접비를 성금으로 냈던 '청년백수'(rock7896), "비록 사오정이지만 두 아이와 만 원씩 쏜다"던 조기 퇴직자(team), 기름때 묻은 지폐를 모금함에 넣고 돌아서던 호떡 노점상 아저씨, 선대의 친일 행적을 대속한다며 성금을 보내온 수많은 후손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멀리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상을 그리며 고귀한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부족한 생활비를 쪼갠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성이 담긴 소중한 물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돌반지,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 신혼부부의 예물시계. 간절한 사연 속에 진실한 역사와 건강한 사회를 향한 아름다운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차마 기금으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곧 만들어질 시민역사관에 누리꾼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전시하려 합니다.

아이들 돼지저금통, 예물시계... 국민이 만든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친
일인명사전 성금 5억원 모금 달성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인명사전 네티즌 성금 이용방안에
 대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 권우성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은 참여인원과 열기, 모금속도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뿌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배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인터넷 역사문화운동이 만개하는 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구세력들에게는 역사를 움직이는 참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역임을 입증해낸 것입니다.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되면서 한나라당의 책동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도 2004년 12월 부족한대로 개정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얻어냈습니다.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쟁취한 역사적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값진 소득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었습니다. 국민모금에서 나타난 많은 이들의 절절한 염원이 밑거름이 되어 2009년 11월 8일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온갖 방해와 역경을 딛고 18년간의 대장정 끝에 이뤄낸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누리꾼 여러분들을 비롯한 국민 다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
이었지만 숙명아트센터가 측의 안전 문제로 대관 계약을 일방 취소하자 참석자들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장소가 변경하여 묘소로 이동하고 있다.ⓒ 유성호    


누리꾼 모금 8주년을 맞아 이제 참 역사를 지켜낸 그때의 '당신'을 찾습니다.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 호응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감격을 오롯이 담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DVD를 보내드립니다.

☞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들끓고 있는 우리 현실은 상식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힘들이 모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했습니다. 다함께 뭉치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함으로써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신뢰와 그간의 축적된 힘을 기반삼아, 다시 역사전쟁의 최일선에 서고자 합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적에 이어 두 번째 과제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관을 중심으로 친일·독재를 찬양하는 온갖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원 보내주시고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 역사의 진정한 주역 '당신'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가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모금일지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전액 삭감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 2004년도 정부예산안 통과
2004년 01월 07일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 네티즌 모금 발의
2004년 01월 08일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협약 체결
2004년 01월 09일 모금 4000만 원 돌파
2004년 01월 12일 모금 1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4일 모금 2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5일 행정안전부 '모금 즉시 중지 결정' 연구소에 공문으로 통보 모금 3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6일 모금 4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9일 기금 목표 5억원 달성, 명동 반민특위 터에서 결의대회 네티즌모금을 국민모금으로 전환
2004년 01월 27일 국무회의 '2006년까지 35억 원 모금' 승인 의결
2004년 02월 19일 모금 7억 원 돌파
2004년 03월 15일 참여인원 약 3만 2000여 명, 총모금액 7억 5000만 원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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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출신 유재흥, 아버지 유승렬에 이어 대전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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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탑 비문 :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제3대 합참의장(1957~59년)과 제19대 국방장관(1971~73년)을 지낸 유재흥 예비역 육군 중장이 91살을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군은 29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정승조 합참의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합참장(合參葬)을 치렀고, 이후 고인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검색 결과

  


  원균을 능가하는 졸장, 북한군 최고의 명장 ……


》유재흥 전 국방장관

이와 같은 비아냥거림은 고 유재흥 장군의 6·25전쟁 중 전적 즉 자신이 지휘한 부대마다 패전하고, 심지어 그로인해 자신의 군단이 해체되기까지 했던 것을 두고 일컫는 말들이다. 그런데 29일 치러진 합참장에서 “당신은 휴전 때까지 한 번도 전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진정한 전투지휘관”이라며 그의 전적은 치하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불굴의 용기와 숭고한 헌신, 투철한 군인정신은 후배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호국의 불씨로 남으리라 한다. 아무리 고인에 대해 너그러운 것이 우리네 풍습이라 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친일은 집안 내력


유재흥은 '부자(父子) 친일 장교'로 유명하다. 그의 친아버지 유승렬(劉升烈, 1891~1958)은 1914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26기로 졸업해 나고야의 일본군 제3사단 보병 6연대에서 견습사관 과정을 거쳐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1920년대 중반까지 나고야에 머물던 중 1921년 8월 2남 유재흥을 낳았다. 유재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41년 제55기로 졸업했고 이후 근위보병 제3연대 일본군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더불어 양자로 출계(出系)한 큰아버지 유익렬(劉益烈, 1886~?)은 일제 때 충청남도 청양군수·보령군수를 지냈으며, 유승렬의 딸이자 유재흥의 여형제는 일제 말기 경북 선산군수를 지낸 부완혁(夫琓爀, 1919~1984)과 결혼했다. 한 집안에서 본인을 비롯해 총 4명이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이다.



》경성육군지원병훈련소에 입소한 지원병 ⓒ 민족문제연구소


  학병지원은 조선을 위한 일


특히 유재흥은 일본군 보병소위 시절이던 1943년 11월 도쿄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강당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연설에서 자신은 일본 육사를 나온 중위로서 아침저녁으로 천황을 지키고 있다고 소개하고, ‘지금 우리 조선인은 우리의 가치를 일본인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기회’이며 ‘이 시국에 일본 군대 장교로서 능력을 가진 조선인 학생들이 군에 들어가 밑에 거느린 일본 병정들을 가르쳐 주면서 임무를 완수하면 그 성과는 조선인을 위한 일이 될 것’이라고 군 입대를 종용했다.


이때 이광수, 최남선도 함께 한 ‘조선인 학병지원 촉구 연설’은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까지도 학병 ‘지원’을 하도록 권유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제가 미국을 상대로 벌인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직접 조선인 청년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의 한 수단이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유재흥 항목

     유재흥 劉載興│江本載興, 1921~2011

일본군 대위


1921년 8월 3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충청남도 공주다. 일본육사 제26기 졸업생으로서 일본군 대좌를 지낸 유승렬(劉升烈)의 차남이다.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군수를 지낸 큰아버지 유익렬(劉益烈)에게 양자로 출계(出系)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부친이 대위로 승진해 함경북도 나남으로 부임지를 옮기면서 경원군으로 이사했다. 경원의 소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나남소학교로 전학했다. 1년 만인 1932년 부친이 용산(龍山) 제20사단 보병 제79연대 대위로 옮기자 경성 삼판심상소학교로 전학했다. 1932년 경성의 용산중학교를 입학했으나 3학년 때 부친이 평양 77연대로 전속(轉屬)되어 평안북도 일원의 신의주중학교, 신의주동중학교, 신의주상업학교, 의주농업학교, 정주 오산중학교의 배속 장교를 맡게 되자 신의주중학교로 전학했다.

1937년 신의주중학교 4학년 2학기에 평양 77연대에서 일본육사 예과에 응시해 합격한 후 1938년 12월 일본 육군예과사관학교를 입학했다. 신원보증인은 부친이 나고야 6연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중대장을 지낸 이시카와(石川房三) 예비역 소장이다. 1939년 11월 예과사관학교를 마친 후 도쿄(東京) 부근에 자리 잡은 근위보병 제3연대에서 4개월의 대부근무(隊付勤務 : 부대실습)를 거친 후 1940년 4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41년 7월에 제55기로 졸업했다. 졸업 후 견습사관으로 다시 근위보병 제3연대 유수대(留守隊 : 동부 제6부대) 보병포 중대에 배치되었다가 며칠 뒤 지바(千葉) 소재 보병학교에 입교해 3개월 과정의 보병포 교육을 받고 근위보병 제3연대로 복귀해 일본군 보병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근위보병 제3연대장은 영친왕 이은(李垠)이었다.

1943년 11월 14일 상부의 지시로 도쿄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강당에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서 이광수·최남선과 함께 조선인 학병지원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자신은 일본 육사를 나온 중위로서 아침저녁으로 천황을 지키고 있다고 소개하고, ‘지금 우리 조선인은 우리의 가치를 일본인에게 충분히 인식시킬 기회’이며 ‘이 시국에 일본 군대 장교로서 능력을 가진 조선인 학생들이 군에 들어가 밑에 거느린 일본 병정들을 가르쳐 주면서 임무를 완수하면 그 성과는 조선인을 위한 일이 될 것’이라고 군 입대를 종용했다. 같은 해 보병 대위로 진급했고 박격대(迫擊隊) 대장을 맡았다.

1945년 3월 유수연대 보병포 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본토 결전에 대비해 제206사단이 편성되면서 사단 중박격포연대 제2대대장으로 옮겼다. 새로 포병학교에 들어가 1개월간 중박격포 교육을 받고 부대 편성과 훈련을 마치고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아리아케(有明) 해안에 배치되었다가 패전을 맞이했다. 1945년 5월 육군대학에 응시했으나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무산되었다. 교토에 있는 사단사령부에서 복원(復員) 절차를 밟고 육사 예과 과정의 대부실습 때 상관인 대본영(大本營)의 구메고로(久米五郞) 중령의 도움으로 도쿄에서 후쿠오카(福岡)까지 항공편으로, 후쿠오카에서 부산까지는 배편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를 이용해 9월 28일 귀국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부친과 일본 육사 동기생인 이응준(李應俊)의 추천으로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해 1946년 1월 졸업하고(군번 3번) 육군 대위로 임관했다. 이후 과도정부 군수국장과 제6여단장 등을 지냈으며, 1948년 12월 대령으로 진급했다. 1949년 1월 육군사관학교 부교장으로 임명받았으나 3월에 제주도지구 전투사령관에 임명되어 4·3사건을 전후해 2개월간 제주지역에서 ‘토벌작전’을 지휘했다. 1949년 5월 초 6여단 소속 8연대 제1대대장 표무원(表武源)과 제2대대장 강태무(姜太武)가 대대원들을 이끌고 각기 집단 월북한 사건으로(강·표사건) 제6여단장 김백일(金白一)이 해임되고 제6여단이 제6사단으로 승격되자 초대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이와 함께 준장으로 승진했다. 1950년 1월 태백산지구 전투사령관으로 공산유격대를 소멸하는 작전을 전개하다가 6·25 개전 보름 전 의정부 방면의 제7사단장으로 부임했다. 6ㆍ25전쟁에 제7사단장·제2군단장으로 참전했으며, 1950년 9월 육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육군 참모차장, 제2군단장, 연합참모본부 총장, 제1군사령관을 역임한 뒤 1960년 7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1960년 8월부터 주태국 대사, 주스웨덴 대사, 주아이슬랜드 대사, 주이탈리아 대사를 지냈고, 1970년 9월 대통령비서실 안보국방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1971년 8월 제19대 국방부장관을 맡아 1973년 12월까지 재직했다. 1974년 대한석유공사 사장, 1980년 대한석유협회 초대 회장, 1991년 성우회(星友會) 회장을 역임했다. 을지·충무·금성·태극 무공훈장과 1등 수교훈장 등을 받았다. 2011년 11월 26일 사망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京城日報』 1940.3.2 ; 滿鮮日報』 1940.3.5 ; 每日新報 1943.11.15, 1943.11.17 ; 朝鮮日報』 1949.5.21 ; 東亞日報』 1949.6.4 ; 三千里』 제12권 제4호(1940.4) ; 大韓民國人事錄』(1949.12) ; 忠淸人士集』(1957.5) ; 韓國名士大鑑 第1輯』�(1958.2) ; 1966年版 韓國·北朝鮮人名辭典』(1966.5) ; 現代韓國人名辭典(合同年鑑 67年版 別冊)』(1967.1) ; 陸軍士官學校(1969) ; 韓國出身 日本陸士·滿洲軍校同窓生名簿』(1975) ; 韓國戰秘史』(1977) ; 悲劇의 軍人들』(1982) ; 日本留學韓國人名錄』(1982.10) ; 創軍』(1984.2) ; 滿洲國軍誌』(1987) ; 大韓民國歷代三府要人總鑑』(1993.10) ; 激動의 歲月 : 劉載興回顧錄』(1994) ; 태극무공훈장에 빛나는 6.25전쟁 영웅������(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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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발간 2주년 기념,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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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지 2주년이 되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오전 9시30분 부터 5시까지 충무아트홀 컨벤션 센터에서 『친일인명사전』발간 2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립니다. 

학술회의의 제목은 
 
"과거에 대한 성찰, 미래를 위한 역사쓰기; 친일인명사전의 성과와 과제"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시는 말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의 기치를 높이든 지 1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구성되고 민족사정립의 대역사에 착수한 지 8년만인 지난 2009년 11월 8일. 수많은 이들의 정성과 염원이 합쳐진 끝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이 드디어 첫 결실을 맺었습니다.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핵심 부분인 인명편 전3권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여기에 이르기까지 한국근현대사의 과업을 추진해 온 힘은 오로지 국민적 지지와 성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발간 2주년을 맞아 편찬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파장 그리고 이후의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들끓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기억과 책임’이라는 상식적 해법이 결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전을 바라는 선생님. 바쁘시더라도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고, 역사정의를 향한 도정에 지혜와 힘을 보태주십시오. 고맙습니다.

2011. 11. 16.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경로·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순서

09:30~09:40 개회사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09:40~10:10 기조강연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역사적 의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주제발표  사회 :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10:10~10:50 1주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선정기준과 범주   
                                발표 :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토론 : 김명구 안동대

10:50~11:30 2주제      시민사회의 친일청산운동 전개와 그 영향  
                                발표 :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토론 : 전진성 부산교대 

11:30~12:10 3주제     한국민족주의와 친일인명사전   
                                발표 : 김기협 역사학자   토론 : 정해구 성공회대

12:10~13:00               점 심

13:00~13:40 4주제     친일’ 문제와 일본사회   
                               발표 :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   토론 : 홍종욱 도시샤대 

13:40~14:20 5주제     독일 과거청산의 지속과 공직자-나치시기 외교관들의 책임문제
                               발표 : 이동기 서울대   토론 : 한정숙 서울대

14:30~17:00 종합토론 사회 : 안병욱 가톨릭대   발표자·토론자 전원
 




오시는 길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 6호선 신당역 9번출구 2호선 신당역 1번출구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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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의 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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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역사정의 실천연대"가 발족합니다. 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11월14일 오전 프레스 센터에서 "친일독재미화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 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 자료집에 따르면 '역사정의 실천연대'는 앞으로 아래와 같은 계획을 가지고 활동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1. 대한민국 건국이념과 헌법정신 바로알기 운동


2. 교과서 개정절차 확립 및 내용 개악을 막기 위한 입법 청원 운동


3. 2012년 ‘6월항쟁’ 25주년과 ‘10월유신’ 40주년 학술대회 개최


4.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과 김인규 방송공사(KBS) 사장 퇴진 운동


5. 친일파와 독재자를 찬양하는 기념사업 저지, 서훈 취소, 수상거부, 조형물 철거 운동


6. 박정희 기념사업과 대한민국역사관 건립에 맞서는 시민역사관 건립 운동

아래쪽은 진행된 기자회견 사진입니다.

행사 시작은 항일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열사분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였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여는 말씀은 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기자회견에는 각계의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언론사에 기자들도 와서 기사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회는 서우영 시민역사관 건립위원회 사무국장이 맡았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격려말씀은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 민족문제연구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교과서 개악문제에 대해 참가자들이 구호를 손에 들고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연대 경과보고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연대사업국장인 이경희씨가 해 주셨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활동계획발표는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한상권선생님이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 민족문제연구소



교과서뿐만 아니라 친일 독재찬양반대도 역사연대의 주요 주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연대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 전 한성대총장 윤경로선생님 ⓒ 민족문제연구소



참여단체 대표발언은 장석웅 전교조위원장이 해 주셨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구호를 마지막으로 친일 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발족 기자회견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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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의 실천연대"가 발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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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등 400개 시민사회단체는 14일 "친일· 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발족할 예정입니다. 11월 14일 오전 11시이고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입니다.

며칠 전 언론에도 공개 된 내용입니다만, 교과서 집필기준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일단 역사학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개질의, 성명서를 내는 방향을 추진중이라고 합니다. 또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인 이신철교수의 말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발표를 철회하는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라는 군요. 여기에 더해서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아래쪽에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덧붙입니다. 




1. 건국절 논란으로 시작된 수구세력의 역사조작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백선엽,김백일,이승만 동상 건립과 다큐멘터리 방영, 박정희기념도서관 개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개발독재와 재벌독점을 미화하는 교과서 개악 등 전방위에 걸쳐 조직적인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정치적 의도가 명백해 보이는 이같은 음모는, 극우세력 일부의 준동이 아니라 뉴라이트와 조,중,동,KBS 등 보수언론이 주창하고 현 정권이 제도적 물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3. 치밀한 기획 아래 조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조작을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송두리째 훼손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토대가 흔들림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것이 분명합니다.


4. 이에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시민사회단체, 학부모·청년·여성단체 등 400여개 각 분야 단체들과 사회 원로들이 오는 14일(월)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발족식을 갖고, 전국민적인 저항운동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130-866)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38-29 금은빌딩 3층

전화 02-969-7094 전송 02-965-8879 메일 historyact@hanmaill.net


[관련링크]
한겨레 11-11-09  학계, ‘역사교육의 뜻’ 대통령에 공개질의 추진
경향11-11-09 역사학계 “교육부 장관 고시권한 견제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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