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칙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7.13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6) 죄인의 말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6) 죄인의 말

|


이오덕 선생님의 '죄인의 말'




어린이의 참 삶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이오덕선생님 ⓒ보리출판



민주교육운동, 우리말살리기와 글쓰기교육으로 잘 알려진 고 이오덕 선생님은 일제시기부터 교사였다고 합니다.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요.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갓 교사가 된1944년은 한창 전쟁의 광기가 극을 달하고 있던 때 였습니다. 그 광기는 교육현장에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1982년, 이오덕선생님은 한편의 글을 씁니다. 일제시기, 교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위치는 아이들을 군대식으로 훈련시켰던 식민지 교육의 담당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현장의 모습들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교육현장에 관한 반성의 글이 바로 '죄인의 말'이었습니다. 


몇 구절 옮겨 볼까요?




'죄인의 말'은 수필집 "거꾸로사는 재미"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산처럼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교단에서 무엇을 하였던가.  내가 여기서 할 말이 있다면 죄 지은 얘기를 털어놓는 것 뿐이다. 

-일제의 살벌한 군대식 교육은 체질적으로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였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참교육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만한 나대로의 교육관이나 교육이론이 있을 수 없었다.

-1년 남짓한 그동안에 나는 우리 민족의 아이들을 일본 제국의 아이들로 훈련하는 일에 충실히 협력하였던 것이다. 

-해방이 되어 잠시 꿈같은 날을 보냈지만, 일제의 망령은 모든 학교 교육에서 조금씩 되살아 났다. 아동 중심이니, 민주교육이니 하는 것은 입으로만 지껄이는 말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교육행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교육을 그 세부 실천에 이르기까지 간섭함으로써, 학교교육은 온전히 자주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 교사들은 다만 명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이행하는 기계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또한 교사의 지시 명령에만 움직이는 기계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죄인의 말'에서 이오덕 선생님은 자신을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훈련시킨 교관으로, 돈을 징수하는 세금쟁이로, 아이들을 획일화 한 폭군으로, 비참한 경쟁을 강요한 깡패로, 선거운동을 한 위선자로 묘사하며 반성합니다. 이오덕선생님이 그 후 보여준 모습은 바로 이 지극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오덕 선생님 개인만 죄인이었을까요? 그럴리가요. 수많은 교사들이 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일본제국이 있었고, 독재정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이들은 수많은 이오덕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학교, 그 잔혹한 풍경



부산에서 전시했던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전 ⓒ민족문제연구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을 전후해서 학교는 전쟁에 동원할 소국민을 양성하는 현장이 되어갔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조선어 과목은 아예 없어졌고 일본어 읽기와 쓰기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전시동원을 위한 제식훈련, 체조 군가풍의 국민가요. 전차와 글라이더 만들기가 교과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41년 일제는 소학교의 명칭을 국민학교로 고쳤습니다. 국민학교령이 칙령으로 공포된 것이었지요. 또한 조선총독부는 민족교육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본격적인 황국신민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국민학교로 바뀐 것이 황국신민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국민학교령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목적 부터가 달랐습니다. 국민학교령의 목적은 '국민의 기초적 연성을 목적으로 한다'였습니다. 연성은 일종의 군사용어입니다. 연성도장, 연성도장과 같이 심신과 기예를 단련한다는 말이지요. 한만디로 국민학교는 황국신민을 단련시키는 연성도장이었습니다. 


국민학교령은 칙령 제 148호로 쇼와16년(1941년) 반포되었습니다. ⓒ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국민학교령의 본문입니다. 기초적 연성이라는 표현이 나와있습니다. ⓒ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군국주의 체제로 들어서면서 일본은 기존의 영국, 프랑스를 배척하고 나치의 교육법을 반영합니다. 일본의 은행법이 히틀러의 도이치 은행법을 도입한 것 처럼 국민학교는 나치가 만든 폴크스 슐레를 그대로 직역한 말입니다. 국민학교 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신, 국어, 국사 지리 네 과목은 국민과(國民科)라고 불렸습니다. 이 외에도 국민복, 국민가요.. 등등 국민은 어느새 조선 땅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후 국민학교라는 말을 바로 버렸습니다. 한국은 어땠을까요? 일본으로 부터 해방이 됬지만 우리는 '국민학교'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썼습니다. 결국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나서야 지금의 '초등학교'로 바뀌었지요. 



일제시기와 다르지 않은 박정희시대 학교의 모습


앞에 국민학교 명칭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이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 따마나 해방이 되었어도 학교의 모습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제의 망령은 학교 교육에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1968년 12월 박정희가 선포한 국민교육헌장


요즘도 외우라면 외우실 분들 많을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예전에 익숙하게 보던 풍경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국민학교에서 교육칙어 대신 국민교육헌장을, 황국신민서사 대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애국조회때마다 낭독해야 했습니다. 


머리에 고속도로가 난 학생들, 과연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이기만 할까요?


머릿 속 뿐만이 아닌 겉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허용된 것은  '스포츠형'머리, 또는 단발머리에 교복, 교모, 그리고 교련복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학생답지 않은' 모습들이 보이면 가차없었습니다. 선도부가 교문앞을 지키고 있는 등교길 풍경, 바리깡이나 가위를 든 학생주임 선생님이 머리에 '경부고속도로'를 내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그것 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요. 


가혹한 체벌과 침묵의 강요는 학생들을 그저 복종하는 인간으로 길러냈습니다. 



물론 일제시기와 70년대 그리고 지금 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 겁니다. 사회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민주화 과정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고도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0 And Comment 0
prev | 1 |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