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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이웃 할아버지 같으셨던,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사 고 조문기 선생을 추모하며 2008년 그해 설을 이틀 앞둔 2월 5일, 설 쇨 마음에 조금은 들떠있던 연구소 식구들에게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님이신 독립투사 조문기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그것이었습니다. 조문기 선생은 1991년 연구소 출범과 함께 "친일청산은 바로 오늘의 독립운동이다"라는 신념으로 투신하여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에 취임하셨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친일청산을 위해 온힘을 쏟으셨습니다. 국가가 개최하는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보다 진정한 조국독립을 위해 거리의 투쟁을 선택하셨던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이었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향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조문기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45년 7월 24일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더보기
自畵像_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EBS 지식채널ⓔ가 지난 2012년 11월 친일연구의 선구 임종국선생의 기일을 맞아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치셨던 임종국 선생이 1989년 11월 60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생의 친일연구 업적과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연구소는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실현이라는 선생의 뜻을 더욱 널리 확산시키고 이를 실천하는 후학을 격려하고자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을 제정해 2012년 11월까지 총 6회의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사실상 금기시되.. 더보기
백년전쟁에 관한 바깥소식과 안소식 2013년 새해 첫날 관람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앞서 연구소와 관련한 기분 좋은 소식들 몇 가지도 언론에 기사화되었습니다. ▣ 2012년 12월 31일 - 연합뉴스 : "역사 바로 알자"…대선 전후 민족문제硏 회원 급증 - 뉴시스 : 박근혜 당선 전후 민족문제硏 회원 급증 - 위키트리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회원 '급증' ▣ 2013년 1월 1일 - 한겨레 : 남영동·26년 잇는 다큐 ‘백년전쟁’ 한달만에… 한겨레 기사가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남영동·26년 잇는 다큐 ‘백년전쟁’ 한달만에… 근현대사 다큐 ‘백년전쟁’ 보셨나요? 소리없이 인기몰이 인터넷공개 한달새 193만명 관람 민족문제연, 이승만·박정희 다뤄 누리꾼들 “역사 바로세우기 실감” 지난 11월26일 서.. 더보기
노근리평화상 상금 전액을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쾌척_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노근리평화상위원회는 제5회 노근리평화상 인권상 수상자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를 선정, 12월 21일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시상식에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은 "보추협이 일제의 강제동원 진상과 피해자 권리 찾기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다"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년)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2007년) 입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노근리평화상은 한국전쟁 당시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피난민 학살사건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주최 측인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은 2008년부터 매해 세계평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인권, 언론, 문학 3개 부문에 노근리평화상을 주고.. 더보기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 (1)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찌라시 수준의 인쇄공해물, 종북백과사전 지난 19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극우논객 조갑제 씨가 펴낸 종북백과사전을 거론하며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을 싸잡아 종북 정치인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틀 뒤에는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친일인명사전을 인용하면서 “친일?종북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해 종북논란이 바야흐로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종북백과사전 대 친일인명사전이란 몹시 마땅찮은 구도를 앞에 두고, 우선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한사람으로서 이러다 두 책이 혹시 같은 부류로 취급받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섰다.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이 전국민적 관심 속에 발간되자, 같은 달 26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급조 극우단.. 더보기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2)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박정희 혈서기사 발굴의 일등공로자, 조갑제 그들이 그렇게도 조작이라고 믿고 싶은 박정희 혈서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원본은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반인은 마이크로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출력도 가능하다(『滿洲新聞』 康德 六年(昭和 十四年) 三月 三十一日, 日本 國會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 이조차 일본이 박정희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정신분석학적 처방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혈서 발굴의 일등 공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갑제 씨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박정희』(1992, 까치)에서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쓴 사실을 처음 언급하여 발굴추적의 물꼬를 텄다... 더보기
다카키 마사오, 민족문제연구소에 문의가 많아 간략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어제(4일) 저녁 대선토론에서 나온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친일과 독재의 후예’라는 이정희 후보의 발언 때문인지 오늘 연구소로 문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간 연구소가 조사하고 축적한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 친일인사 중 1인으로 박정희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주요행적과 일제강점기의 상세한 친일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총 3권 1질의 방대한 사전분량을 스마트폰 안에 쏙 넣을 수 있게 ‘친일인명사전앱’을 출시해 큰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009년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놓기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법원에 자신의 아버지와 관한 사전 게재금지가처분신청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사전 .. 더보기
꼭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_ 친일인명사전 앱 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60년,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18년 만인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이 만들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전 발간은 연구소의 18년을 한결같이 지켜주고 함께 해주신 7,000여 회원이, 2004년 국회(한나라당)의 사전편찬 기초조사예산 전액 삭감에 분노해 단 11일 만에 삭감액 5억 전부를 모아주신 3만 여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때 연구소는 그 감동을 고스란히 안고, 친일인명사전을 반드시 발간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그 때의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전국민적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102년 국치일 8월 29일에 친일인명사전 앱을 출시했습니다. 연구소는 그간 친일인명사전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 더보기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민철 이명박 정권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정권 말기면 드러나는 비리가 이 정권이라고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 비리의 결정판은 역시 세간에서 ‘상왕’으로 불리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씨의 구속이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망나니마냥 수행하던 검찰이 이제 그 칼끝을 돌려 현 권력 심장부를 깊숙하게 찌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 무상의 씁쓸함을 느끼기에 앞서 완장들의 본질을 보는 같아 인간에 대한 환멸까지 느낄 지경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차대조표는 곧 나올 것이다. 이념적인 선호에 따라 그 평가가 매우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낙제점을 면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동안 한.. 더보기
유신40년 기획강좌, 끝나지 않은 유신 1972년 유신체제가 들어선지 40년 입니다. 4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박정희와 유신의 모습들이 남아있습니다. 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자가 박근혜의원이니 두말할 나위 없지요. 이 문제들은 단순히 '박정희의 딸'이 대선후보에 나왔다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요사이 언론에는 '역사논쟁은 그만두고 민생을 이야기 하자' 발언이라던가, '5.16'에 관련된 발언들이 연일 보도 되고 있습니다. 이 발언들을 둘러싼 논쟁들을 나라의 권력을 잡을 집단의 역사인식과 가치관이라는데 문제가 있겠지요. 40년이 지난 유신, 그리고 유신을 둘러싼 논의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식민지 시대 청산하지 못한 과거가 유신시대에 어떻게 되살아 났고, 지금 어떻게 다시 이야기 되고 있는지를 말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