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7.03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4)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 (1)
  2. 2012.06.19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1)
  3. 2012.06.19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1) : 유신의 망령 (1)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4)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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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발상지 논란



새마을운동 발상지 논란의 주역 청도와 포항, 잠시 검색만 해봐도 각각 발상지로 기사가 나옵니다.

경북에 살거나 새마을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실 이야기이지만, 현재 새마을운동은 발상지 논란이 있습니다.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와 경북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서로 원조라고 다투고 있는 것이지요. 두지역이 각자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공금을 들여서 기념관, 연구까지 하는것도 모자라 2009년에는 법정공방까지 벌였습니다. 포항시의원 몇명과 포항 새마을회에서 경상북도와 청도군을 상대로 청도 신도1리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는 것을 써서는 안된다고 사용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거죠. 


2009년 법원은 발상지 개념을 두고 서로 다른 주관적인 기준, 판단에 따른 다툼에 불과하다며 가처분 신청을 각하했다고 합니다. 법원이 각하했지만 그 와중에 경남 동래군 기장면 만화리(현 부산 기장군 만화동)의 동서부락이 발상지라는 주장이 새로 제기되었습니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네요. 


최근에도 검색을 해 보면 아직도 청도와 포항은 각자 자신들이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발상지' 논란에 국고가 투입되어서 기념관을 짓고 연구용역을 주어서 근거를 찾고 했다는 것이지요. 


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재미있습니다. 대학교에 의뢰해서 증빙자료도 첨부해 놓고 있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 http://www.새마을운동 발상지.kr


VS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 : http://saemaul.ipohang.org/



청도도, 포항도, 그리고 부산 기장도1970년대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 발상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자체로만 생각하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게 그전에 아무런 움직임, 경험이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요?


새마을 운동의 기원은 바로 일제시대부터 5.16군사정변시기까지 몇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 재건국민운동 이지요. 



새마을 운동의 숨겨진 기원 - 농촌진흥운동, 국민총력운동



농촌진흥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이지요



농촌진흥운동은 1932년부터 1940년까지 진행된 조선총독부 주도의 관제 농민운동이었습니다. 총독부는 '농가경제 갱생', '자력갱생'을 표방을 했었지만, 실제로는 경제 갱생보다는 그 구호아래 농민들을 호율적으로 통제할 목적이 있었습니다.


 농촌진흥운동은 새마을운동과 여러가지 부분에서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경험이라는 면에서 봐도 마찾가지였지요. 최고지도자였던 박정희 뿐만 아니라 관료부터 마을의 사람들까지 모두 농촌진흥운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과 우가키 가즈시게의 농촌진흥운동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농촌진흥운동의 동원방식과 프로그램들은 새마을운동의 모습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몇 가지를 들어볼까요?


우선 배경과 그 대응이 비슷합니다. 농촌진흥운동이 조선의 경제공황, 민족해방투쟁이라는 위기를 막기위한 미봉책이었듯이 새마을 운동역시 심각한 경제발전의 불균형으로 인해 농촌이 피폐해지는 상황에서 추진되었습니다. 농촌의 피폐는 농촌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지요. 농촌이 못살게되면 농민들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옵니다. 이 사람들이 도시빈민층을 형성하게 되고 노동문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정치, 사회구조로 생긴 농촌의 위기를 농민의 내부 문제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의 슬로건은 잘 알려져 있듯이 '근면, 자조, 협동' 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촌진흥운동도 비슷한 슬로건이 있어요. '자력본원(自力本願)' 과 '자력공려(自力共勵)' 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갱생한다는 것이지요, 자력공려의 공려는 협동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마을 운동에서 보이던 자조와 협동과 같은 내용이지요. 결국 농촌진흥운동에서 농민들의 문제는 농민들의 무지, 게으름, 낭비때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회구조의 문제를 농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렸던 것이지요. 새마을 운동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당시 농촌진흥운동의 방식이 조선총독부의 관료기구를 이용해서 총독부 - 도지사 - 도 - 군 - 동 - 리 체계로 명령이 내려갔고, 주요 사업중 하나가 각 부락에 중견인물을 육성하는 것이었니다. 농촌지배의 파트너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에도 비슷한 것이 있지요? 바로 '새마을지도자'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주도한 관제 농민운동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운동이건 새마을 운동이건 농민들은 이 운동들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율성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농민들의 운동을 국가가 계획하고 지도했다는 점에서, 행정기관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관제'라는 말은 두 운동을 계속 따라다닐 겁니다. 


국민총력운동시기 일본은 조선에 강력한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합니다.



이러한 위로부터의 관제운동은 농촌진흥운동으로만 끝났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제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결성합니다. 모든 주민을 애국반으로 편성해서 통제했지요. 


1941년 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될 즈음 조선총독부는 국민정신총동원운동과 농촌진흥운동을 통합해서 국민총력운동을 만듭니다. 이 국민총력운동 아래 일본은 조선에 강력한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새마을운동의 예행연습 - 재건국민운동



5.16 군사정권이 주도한 재건국민운동, 새마을 운동의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농촌진흥운동, 국민총력운동이 일제시기의 운동이었다면 재건국민운동은 5.16군사정변 직후 벌어진 운동입니다. 


5.16 군사정권은 1961년 국민정신을 개조하고 국가를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재건범국민운동을 시작했다. 내무부가 주관을 했었고 1964년 재건국민운동본부가 해체될 때까지 시행되었지요. 


서울시와 각 도에 지부가 생겨나고 읍, 면, 동과 리 단위에 이르기까지 촉진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재건국민운동본부는  반공과 내핍, 근면정신 고취, 생산 및 건설의식 증진, 도덕적 양양, 정서순화, 국민체위(體位)향상 등을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재건국민운동은 전국에 재건청년회 4만5천여개, 재건부녀회 3만 3천여개가 되었고, 62년도에 들어가면 50만여명의 요원과 360만명에 이르는 청년, 부녀회원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건국민운동의 방식은 꽤 강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재건국민운동은 박정희의 평소 지론인 '인간개조운동'을 포함했습니다. 각급 학교학생들을 '혁명공약'을 달달 외워야 했고 "혁명공약을 이루자"라는 노래를 불러대야 했습니다. 학급 학교에 장교들을 파견해서 지휘, 감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재건체조와 신생활복, 국민가요 등을 제정해 의무적으로 시행케 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에도 일제말 국민총력운동본부가 제정한 라디오체조(보건체조)나 국민복, 또는 국민가요를 부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재건국민운동은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끝나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당연히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발간했던 "재건통신"



부산에 전시한 새마을 운동 관련 부분. ⓒ 민족문제연구소



새마을운동을 두고는 여러가지 평가가 엇갈립니다.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새마을 운동. 그러나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지금 농촌의 풍경이 그 결과를 이야기 해 주는 것이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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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urberry store 2013.04.26 13:39 address edit & del reply

    제외하고 모두 세개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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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의날, 새마을식당, 새마을운동

 

언제부턴가 다시 새마을운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마을 깃발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4월쯤에 거리를 지나면서 새마을운동 깃발이 거리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새마을깃발이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제 2회 새마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거리마다 단 것이더군요.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새마을운동이 다시 눈앞에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마을의날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은 채 2011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년 4월22일 새마을의 날은 국가기념일이 되었지요.

 

 

우리 주변에는 60~70년대 컨셉의 식당이 꽤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은 그중 하나입니다. [출처 : 새마을식당 홈페이지]

 

 

 

또하나 우리 주변에서 유행하는 새마을이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이지요. 비단 특정업체 '새마을식당' 뿐만이 아니라 몇년 전 부터 60~70년대 식의 식당들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이 생겼습니다. 왠지 촌스러운 인테리어에 옛날 영화 포스터, 양은냄비, 막걸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새마을 식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왜 이런 컨셉을 잡았는지 설명이 있습니다. 

 

“1960~70년대식의 인테리어와 식사시간에 흘러나오는 새마을 노래는 먹는이로 하여금 그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어린 시절과 고향생각에 푹 빠지게 만들어버립니다”

 

“정감있는 컨셉”, “향수가득한 어린시절” “고객들의 향수 자극”

 

 추억, 또는 향수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 중 사업가가 잡은 소재가 새마을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어느순간에 우리주위에 다시 보이고 있고, 어르신들의 머릿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새마을운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박정희가 주도한 새마을운동

 

부산에 전시중인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전시 중 새마을운동 부분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1970년 4월 한해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1971년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정권이 직접 나서서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새마을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할 정도로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은 전국민적운동으로 확산되었고, 1975년에는 공장새마을운동, 도시새마을운동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새마을운동하면 근면, 자조, 협동이 들어갔습니다. 농민들에게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일종의 민족성 개조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자포자기에 빠진 농민들에게 '하면된다'는 신념을 준 위대한 정신개혁운동이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국민정신함양운동이었다" 라고 선전되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치적이라는 새마을운동, 과연 새마을운동은 농민을 잘 살게 만들었을까요?

 

한국사 최대, 최장의 국가대중운동이라는 새마을 운동은 극단적인 찬양과 비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근대화의 세계적인 성공사례의 반면에는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일사불란한 획일주의, 외형적 실적주의, 집단주의라는 폐해를 남겼다는 비판이 있지요.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 정말 농촌은 잘 살게 되었을까

 

새마을 운동이 외형상 농촌의 환경을 크게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당시 남아도는 시멘트를 각 부락에 배당하면서 이루어 진 것이니까요. 많은 흙길들이 시멘트 도로로 바뀌고 초가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바뀌면서 지금의 농촌모습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지요. 다양한 소득증대사업이 전개되면서 농민들은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소득도 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10년동안 농가소득은 10배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농가부채가 쌓이기 시작한건 이때부터였지요. 농민들의 이농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평가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건 지금 농촌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대 김영미선생님의 책 '그들의 새마을운동'중에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김영미선생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입니다.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2009

-잘살기 운동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존재했다. 해당 시대 해당 지역의 각 주체들은 최선을 다해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농민들이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농민들은 게으름뱅이에 잘 살려는 의지가 없었으며 농촌 사회에는 부지런한 농군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농민에 대한 우리들의 선조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근대화는 빠른 속도로 앞당겼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민들이 진정으로 잘 살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잘 살게되었다는 지표는 대단히 가시적인 것들이다. 마을환경의 근대화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이 가시적인 성과가 새마을 운동을 성공적인 근대화운동이었다고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꼽히고 있다.그러나 소득증대를 통한 농가경제의 수지 개선은 환경개선처럼 노력만 하면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가 부채는 급증했다.

 

-새마을 운동은 과연 성공적인 농촌 근대화의 모델을 창출했는가. 새마을 운동으로 한국의 농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주체가 되었는가. 과연 박정희 정부가 그렇게 강조한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자조하는 농민이 되었는가? 새마을운동이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평가와 함께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바로 근대화의 질에 대한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데 실패했다. 청년들이 사라진 농촌,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생력을 상실한 농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농촌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새마을 운동이 고조되던 1970년대였다.

 

 

이렇게 말도많고 탈도많은 새마을운동, 그런데 새마을 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천재적인 발상으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새마을운동과 매~우 닮은 운동들이 이전에도 있었지요.  다음포스팅에서는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새마을운동에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링크와 참고할 만한 책을 걸어둡니다. 

 -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새마을운동아카이브

 -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 

 - 오마이뉴스 120421 새마을 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라니



1부 

(1)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2)새마을 운동의 숨겨진 기원

2부 

(1)조국근대화 빛과 그림자 / 

(2)시국선전뉴스와 대한뉴스

3부 

(1)학교, 그 잔혹한 풍경

4부 

(1)총력안보와 전국민 병사만들기

(2)금지곡의 사회사

5부 

(1)명치유신, 소화유신, 그리고 10월유신

6부 

(1)감옥에 갇힌 진실

(2)증언으로 보는 부마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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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scount oakley sunglasses 2013.04.30 07:17 address edit & del reply

    처음엔 알 수 없던 너만의 향기가 느껴져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1) : 유신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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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6월항쟁이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10월 유신이 40년이 되는 해 이기도 합니다. 지금 10대는 말할 것 없고 20대, 30대까지 사람들에게 유신이란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 실감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가 죽은 지 33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박정희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새마을 운동은 다시금 국가기념일이 되었고, 각종 설문조사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에는 박정희가 빠지는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후보는 다름아닌 박정희의 딸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유신,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쪽에서는 박정희기념관을 지어서 박정희의 업적과 공로만을 치켜 세우고 있습니다. 공과를 같이 봐야 한다는 말이 무색할만큼 '공'쪽에만 무게를 두고 있지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여전히 유신시대의 망령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오늘날을 되돌아 보기 위해  '식민의 유산, 유신의그늘'전을 개최하고있습니다. 


직접 가서 보시면 좋겠지만 다른 지방이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가시는 분들을 위해, 하나하나씩 풀어가려고 합니다. 


1부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2부 조국근대화 빛과 그림자 / 전시영상, 시국선전뉴스와 대한뉴스

3부 학교, 그 잔혹한 풍경

4부 총력안보와 전국민 병사만들기

5부 명치유신, 소화유신, 그리고 10월유신

6부 감옥에 같힌 진실

[기획1]시국선전뉴스와 대한뉴스

[기획2]금지곡의 사회사

[기획3]증언으로 보는 부마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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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전

기간 : 2012년 6월10일~6월30일

장소 : 부산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주최 : 6월민주항쟁25주년 부산행사위원회

주관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참고링크]

부산민주공원 홈페이지 : http://www.demopar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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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urberry bags 2013.04.27 11:02 address edit & del reply

    아니면 일반 대중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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