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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9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1)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3) : 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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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의날, 새마을식당, 새마을운동

 

언제부턴가 다시 새마을운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마을 깃발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는 느낌입니다

 

4월쯤에 거리를 지나면서 새마을운동 깃발이 거리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새마을깃발이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제 2회 새마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거리마다 단 것이더군요.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새마을운동이 다시 눈앞에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마을의날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은 채 2011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년 4월22일 새마을의 날은 국가기념일이 되었지요.

 

 

우리 주변에는 60~70년대 컨셉의 식당이 꽤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은 그중 하나입니다. [출처 : 새마을식당 홈페이지]

 

 

 

또하나 우리 주변에서 유행하는 새마을이 있습니다. 새마을식당이지요. 비단 특정업체 '새마을식당' 뿐만이 아니라 몇년 전 부터 60~70년대 식의 식당들이 복고풍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이 생겼습니다. 왠지 촌스러운 인테리어에 옛날 영화 포스터, 양은냄비, 막걸리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새마을 식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왜 이런 컨셉을 잡았는지 설명이 있습니다. 

 

“1960~70년대식의 인테리어와 식사시간에 흘러나오는 새마을 노래는 먹는이로 하여금 그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어린 시절과 고향생각에 푹 빠지게 만들어버립니다”

 

“정감있는 컨셉”, “향수가득한 어린시절” “고객들의 향수 자극”

 

 추억, 또는 향수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 중 사업가가 잡은 소재가 새마을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어느순간에 우리주위에 다시 보이고 있고, 어르신들의 머릿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잡은 새마을운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박정희가 주도한 새마을운동

 

부산에 전시중인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전시 중 새마을운동 부분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1970년 4월 한해대책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1971년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정권이 직접 나서서 전국적으로 퍼져갔습니다. "새마을의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할 정도로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1973년부터 새마을운동은 전국민적운동으로 확산되었고, 1975년에는 공장새마을운동, 도시새마을운동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새마을운동하면 근면, 자조, 협동이 들어갔습니다. 농민들에게 이것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새마을운동은 일종의 민족성 개조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자포자기에 빠진 농민들에게 '하면된다'는 신념을 준 위대한 정신개혁운동이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국민정신함양운동이었다" 라고 선전되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치적이라는 새마을운동, 과연 새마을운동은 농민을 잘 살게 만들었을까요?

 

한국사 최대, 최장의 국가대중운동이라는 새마을 운동은 극단적인 찬양과 비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근대화의 세계적인 성공사례의 반면에는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일사불란한 획일주의, 외형적 실적주의, 집단주의라는 폐해를 남겼다는 비판이 있지요.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 정말 농촌은 잘 살게 되었을까

 

새마을 운동이 외형상 농촌의 환경을 크게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당시 남아도는 시멘트를 각 부락에 배당하면서 이루어 진 것이니까요. 많은 흙길들이 시멘트 도로로 바뀌고 초가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바뀌면서 지금의 농촌모습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지요. 다양한 소득증대사업이 전개되면서 농민들은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소득도 늘었다고 합니다. 1970년대 10년동안 농가소득은 10배가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농가부채가 쌓이기 시작한건 이때부터였지요. 농민들의 이농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새마을운동의 평가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그건 지금 농촌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대 김영미선생님의 책 '그들의 새마을운동'중에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김영미선생님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입니다.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2009

-잘살기 운동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나 존재했다. 해당 시대 해당 지역의 각 주체들은 최선을 다해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비로소 농민들이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농민들은 게으름뱅이에 잘 살려는 의지가 없었으며 농촌 사회에는 부지런한 농군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농민에 대한 우리들의 선조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 근대화는 빠른 속도로 앞당겼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민들이 진정으로 잘 살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잘 살게되었다는 지표는 대단히 가시적인 것들이다. 마을환경의 근대화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이 가시적인 성과가 새마을 운동을 성공적인 근대화운동이었다고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 꼽히고 있다.그러나 소득증대를 통한 농가경제의 수지 개선은 환경개선처럼 노력만 하면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새마을 운동을 경과하면서 농가 부채는 급증했다.

 

-새마을 운동은 과연 성공적인 농촌 근대화의 모델을 창출했는가. 새마을 운동으로 한국의 농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주체가 되었는가. 과연 박정희 정부가 그렇게 강조한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자조하는 농민이 되었는가? 새마을운동이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평가와 함께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바로 근대화의 질에 대한 것이다.


-새마을 운동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데 실패했다. 청년들이 사라진 농촌,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생력을 상실한 농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농촌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새마을 운동이 고조되던 1970년대였다.

 

 

이렇게 말도많고 탈도많은 새마을운동, 그런데 새마을 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천재적인 발상으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새마을운동과 매~우 닮은 운동들이 이전에도 있었지요.  다음포스팅에서는 새마을운동의 숨겨진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새마을운동에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링크와 참고할 만한 책을 걸어둡니다. 

 -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 푸른역사

 -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새마을운동아카이브

 - 국가기록원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 

 - 오마이뉴스 120421 새마을 운동 창립일이 국가기념일이라니



1부 

(1)새마을운동, 정말 새마을이 되었나

(2)새마을 운동의 숨겨진 기원

2부 

(1)조국근대화 빛과 그림자 / 

(2)시국선전뉴스와 대한뉴스

3부 

(1)학교, 그 잔혹한 풍경

4부 

(1)총력안보와 전국민 병사만들기

(2)금지곡의 사회사

5부 

(1)명치유신, 소화유신, 그리고 10월유신

6부 

(1)감옥에 갇힌 진실

(2)증언으로 보는 부마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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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scount oakley sunglasses 2013.04.30 07:17 address edit & del reply

    처음엔 알 수 없던 너만의 향기가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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