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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9 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4)

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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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두 번의 성공적 마감 !

 

우리 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이 소셜펀딩 개미스폰서를 통해 공동으로 진행한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_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지난 2월 28일~4월 1일 사이 모두 2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총 1천만 원이 넘는 모금이 이뤄졌고, 전국 각지 44곳의 대안학교, 마을도서관, 시민단체 등에 친일인명사전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학교에 전할 6권의 사전은 ‘조선학교돕기 몽당연필’에서 오는 6월 22일 개최한 도쿄 콘서트 즈음에 해당 조선학교로 전달할 예정이라 합니다.

 

 

두번째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사전 기증처 20곳

 

 

 

소셜펀딩, 공감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

 

연구소는 소셜펀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사전이 발간된 지 만 2년이 지난 뒤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단 3일 만에 목표모금액을 초과달성하고, 연이은 2차 프로젝트 역시 20여일 만에 성공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의 사회적·교육적 가치를 지지하고 역사정의실현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전체 인원은 292명이고, 이 중 두 번의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한 분도 5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같은 주소의 참여자가 꽤 있어 확인해 본 결과, 한 가족이 각각의 이름으로 참여경우였습니다. 대구의 어느 노신사께서는 연구소로 전화해 인터넷으로 모금을 할 수 없으니 방법을 가르쳐 달라했고, 그 인연이 연구소 회원가입으로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죽기 전에 대구가 바뀌는 걸 보고 싶다”는 노신사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이을 또 하나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2009년 발간한 이래 끊임없는 소송에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친일인명사전의 힘은 철저히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실상과 해방 후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역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내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 가득 안고 시민여러분이 보여주실 또 한 번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습니다.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를 정직하게 보여줄 시민역사관에도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다둥이카드소지자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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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병기 2012.07.17 09:43 address edit & del reply

    늦었지만 친일청산을 해야 합니다. 우리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니리위해 목숩 받치신 분들의 명에를 찾아줘야 하며 군자금이나 일제와 투쟁하시다 체포 구금 등으로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 강제노역으로 옥사하신 명단을 발굴하고 일제당시 제정호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자료발굴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특히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에 대한 자료발굴과 역사관 건립을 서둘러야 합니다.

    마포 경성형무소는 정말 일제가 식민지통치의 대명사로 악명높던 형무소로 붉은 벽돌을 생산하는 데 강제노역을 시켰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생존자가 많지않다고 합니다. 이옷에서 옥사하신 수형자들을 밝혀내고 자료 발굴을 서둘러야 합니다.

  2. 정병기 2012.07.17 09:46 address edit & del reply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애국선열의 민족과 나라위해 걱정하는 호령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이다

    오는 8월15일은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이날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어 가면서까지 만세를 부르고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강토 그 어느곳인들 독립을 위해 피 흘렸던 역사가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이 장소만큼은 그 의미를 다시 새겨야만 하는 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역사의 현장으로 독립투사들에게 악명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 보기 힘들정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지고 있지만 바로 이곳이 독립에 몸바쳤던 수 많은 이들의 피울음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방법원과 검찰청 자리잡은 '경성형무소' 표지석만이 당시 형무소였다는 사실 알려줘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 붉은 벽돌 생산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병사, 그래도 독립의지 지켜내

    마포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 자리에는 현재는 서울서부 지방법원ㆍ검찰청이 들어서 있지만, 당초 한일병합 조약 체결전인 1908년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던 '경성감옥'이 수용공간이 적어지자 이곳 마포구 공덕동에 지은 후 1923년부터는 '경성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었다.

    경성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의 숙부인 김형권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 저의 증조부 또한 이곳에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지난 1928년 5월 20일 이었다. 이런 중요한 경성형무소를 자취도 없게 철거한 후 공공기관을 건축하였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야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 시킬 수 있까? 바로 이곳 경성형무소 자리 옆에라도 '경성형무소 식민지 역사관'을 건립함으로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떤가 한다. 비록 민족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일정 규모라도 복원해 전시함으로서 이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됨으로서 현재 표지석 하나 달랑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산 체험의 장이 되어 다시는 외세에 짓밟히거나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게끔 교훈 삼는 역사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들은 과거의 진실한 역사를 통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게 되고 애국정신의 근본이 될 것이라 점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잊혀지거나 역사속에 묻혀가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가 없게끔 정부는 자료발굴과 그 명예를 찾아 주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는가 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를 위해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가가 해야 할일은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광복 66주년을 맞은 오늘, 국가보훈과 나라사랑에 대한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재인식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 진다는 풍토가 확고하게 정착되기를 바라며 진정한 보훈은 말이나 구호보다 실천이 우선되고 나라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이나 호국영령이 제대로 대우받고 추앙받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글쓴이/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의 증손자. 대구연합일보 논설위원>

  3. 정병기 2012.07.17 09:52 address edit & del reply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선생에 대한 사연입니다.

    증손자 증조부 독립운동 명예 찾으려 지난 36년 고군분투
    정용선 증조부께서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모급운동을 하시다 체로 마포 공덕리 105번지 악명높던 일제식민지통치의 상징인 경성형무소에서 모진 탄압과 고문 그리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시달리시다 41세로 1928.5.20.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작도 옥시기록 담긴 제정호적 제출해도 거증자료 부족리라며 미루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사연을 꼭 대통령님과 청와대 관계자분들이 보시고 증손자의 바램이 이루어지고 자손된 도리를 할수 잇게 도움을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저의 애절하고 절박한 사연에 대하여 알려드리오니 한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증조부를 비롯하여 4대가 국가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 및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41세(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제정호적에 일제가 기록하였습니다.)에 젊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보시지 못하고 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체 잊혀진 명예가 되어버렸답니다.

    저는 증손자로서 지난 30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발굴에 나섰지만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정부의 관리부실 그리고 관보를 지시하여 소각되었답니다. 이런 사연에 대하여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400여장의 증거자료와 소장을 내어 억울한 일을 해결하여 달라고 행정심판을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했답니다. 한번 꼭 관심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행정심판 접수일/2009.8.28. 접수번호 행심-2940 소장 포함 400페이지 분량/동영상자료(kbs1 tv 시청자칼럼)포함

    존경하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님께

    국가보훈처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36년이 넘게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받치며 투쟁하시다 체포되어 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 경성형무소에서 병사하신 정용선 선생인 증조부님에 대한 자료발굴 노력을 해왔으며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 보았지만 거증자료 미비로 미루어온지 벌써 20여년이 다가오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합뉴스, 매일경제신문, 서울신문, 브레이크뉴스 등에 보도되고 심지어는 kbs1 시청자칼럼에 출연하여 호소하여 보았지만 아직도 잊혀진 명예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워 눈물로 세우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악명높던 경성형무소에 관련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관련자료 찾기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저는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이 억울한 사연을 알려 행정처분을 받아 보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제출 접수하였답니다.

    [kbs1 tv 시청자칼럼 출연]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억울한 사연 행정심판청구
    작성일: 2009/08/29 AM 04:06
    작성자: 정병기(jbg1219)

    [kbs1 tv]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의 노력 /출연 정병기
    방송일: 20080814 /동영상/억울한 사연 국가보훈처 상대 행정심판 청구

    우리들세상/시청자칼럼/다시보기 가능합니다.(출연자/정병기) highSpeedVod(1539806);
    시청자칼럼.우리사는세상에서 그 결과를 지켜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억울한 세상이 없는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거슬 버리고 조국에 받치신 애국선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져야 하며, 또 그들의 후손드리 잊혀진 선조의 명예를 찾을수 있게 협조하고 그렇게 돼야합니다.

    서울에 사는 정병기씨는 정씨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시다 옥사하셨지만 근거자료가 부족해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근거를 찾기 위해 30년째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정씨는 증조부의 독립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증빙자료 발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한다.

    시청자칼럼에 출연했으나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아 결과를 얻지 못한 억울한 사연을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습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며 답답하답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문서가 없어지고 소각된 사유는 정부의 귀책사유인데도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은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자료 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국가보훈처가 인정하지않아 억울한 사연을 행정심판청구를 통하여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무총리실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소장을 포함한 서류 400여장 분량에 관련 동영상 자료(2008.8.14. kbs1 시청자칼럼) 소장에서 항일운동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던 중 병사로 독립유공자를 인정하여 잊혀진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이제 국가보훈처인 피청구인과 청구인간에 열띤 공방이 전개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정부의 독립운동 관련 서류가 영구보존문서임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귀책사유가 도마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방송관계자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려워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그 후손들이 대우받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지난 30년이상을 증조부의 잊혀진 명예를 바로 세우고자 한 노력이 헛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국가보훈처장님

    후손들이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기가 독립운동 하기 보다 어려운 현실이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선조의 잊혀진 명예를 찾을수 있게 한번 더 검토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경성형무소에서 사만하셨어도 시신도 인도받지 못한 채 증조할머니 묘소에 비석만 세워놓아 하루속히 잊혀진 명예를 찾아 국립묘지에 가묘라도 모셔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땅히 후손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36년세월이 증조부님의 명에를 찾는데 기여하게 된다면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집안은 증조모님 독립운동으로 풍비박산이 되고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박해로 집안이 흩어지고 머슴살이 전전하거나 처거살이로 살아와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부친도 배움이 없는 (문맹인)무학이시고 저역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이며 부친도 이번에 50년만에 국가유공자 신체검사를 받고 잇으며 저의 아들도 의경으로 입대하여 평택집회현장에서 진압근무 중 다쳐 제대를 하였답니다. 저말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국가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국민이랍니다.

    다시한번 정용선 선생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검토가 이루어져 잊혀진 명에가 반드시 찾아질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의 증손자 정병기



    덧글/일제겅점기 식민지통치의 사징이였던 악명 높던 마포공덕리 경성형무소 역사적 자료발굴과 역사관 건립을 정부가 앞장서 서둘러야 합니다.이곳이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이며 역사의 현장입니다.


  4. 정병기 2012.07.17 09:55 address edit & del reply

    광복절 맞아 애국선열 숭고한 희생정신 가슴에 되새겨야

    진정한 민족의 독립과 광복은 아직도 더 노력해야

    나라위해 목숨 받치고도 버림받고 잊혀진 애국으로 역사 속에 묻혀 안타까워
    미발굴독립운동가 후손들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 처가살이 전전, 고생 달고 살아,

    광복 제67주년, 버림받고 잃어버린 애국이 되지 않게 정부가 자료 발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슬픈 사연들이 많다. 미발굴독립유공자 발굴과 해결문제가 바로 정부의 더 미룰 수 없는 현안이자 당면 과제라고 본다. 후손들이 선조 독립운동 자료 찾아 36년 고군분투 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과 자료의 부실 관리부족과 역사인식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광복 67주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지만 당시 나라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옥사하신 무명의 애국투사와 독립투사들의 애국은 빛이 바래거나 잃어버린 애국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가고 있어 유감스럽고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분이다, 독립운동가 후손 정용선선생의 증손자 36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원래자리 공덕동 서부법원자리)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6년째 외롭고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의 후손인 증손자가 있다. 나는 ‘광복 67주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만사를 제쳐놓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단서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부양할 가족도 있고 몸도 성치 않지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부와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다.

    나는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증조부님이 자랑스러운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마음 뿌듯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해 왔고 그것 이사실이다. 옥사시록이 제정호적에 확연하게 나와 있다. 돌아가신 고모나 큰댁이 증조부님 때문에 온&#49346;수난과 고초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형무소장이 보낸 옥사했다는 사실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 그 증거는 지금도 제정호적에 자세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도 못 믿는다면 그 무엇을 믿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 사실은 바로 일제가 형무소에서 온갖 탄압과 고문 그리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옥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족보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개가한 인동 장씨집안 호적(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2리)을 보면 그 내용을 잘 알 수 있는데도 정부는 두 손 놓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당시 수형당한 경성형무소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이는 후손들의 귀책사유가 아니라 정부문서를 관리하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본다. 국가보훈처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 청와대에까지 서류를 안 내밀어 본 곳이 없지만 ‘객관적인 입증자료인 거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증손자인 본인이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정권인 전두환 군사정권이 관보로 지시(형의실효에 관한 법률)“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관련 자료는 반영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서류임에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지난정부의 실책이라고 본다. 그래도 개인이 후손들이 책임지고 찾아와야 한단 말인가?

    조부이신 정덕수 할아버지는 인접 금광(풍정광업소)에서 일하다 폐병으로 숨졌다. 증손자인 자신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0년 강도 살인범을 붙잡다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유증에 간경화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겪은 고통과 수모를 어찌 말이나 글로 다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자료를 찾는 일을 후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부가 야속하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정부도 이제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 후손들 가슴에 못 박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 한을 풀어 주어야 할 것이며, 일제강점기 관련 당시 제정호적도 중요하게 다루고 살펴 독립유공이 인정되는 분들에 대해서는 명예를 찾아주고 그 후손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국가가 부강해지고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부름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애국선열과 독립투사 미발굴독립유공자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나라위해 피 흘린 목숨 받친 결과가 결코 변할 수 없으며 역사적 가치가 혼동되거나 평가절하 돼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숭고한 정신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모진고문과 강제노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친 악명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을 세워 민족의 치욕스러운 식민지 역사라도 제대로 보존하고 가르쳐 후손들에게 일제의 만행과 탄압사실을 알려야 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게 될 것이다. 지난 과거의 잘못된 사실을 알려야 살아있는 올바른 역사교육이고 민족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덮고 가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나라위해 목숨 받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은 정부가 끝까지 책임을 지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하며 예우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본다. 다시한번 정부는 말이나 구호보다 독립을 위해 목숨 받치신 옥사자에 대한 철저한 자료검증과 발굴을 통하여 그 명예를 찾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아울러 바란다. 글쓴이/정병기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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