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03.28 '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네티즌 모금 8주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를 시작하며 (2)
  2. 2012.01.30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1)
  3. 2012.01.11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1)
  4. 2012.01.09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주요내용 (3)
  5. 2012.01.08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 공동캠페인] 참 역사의 주인공,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1)

'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네티즌 모금 8주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를 시작하며

|

친일파 명단 기부한 당신, 기억하겠습니다.

▲ 2012년 1월 8일부터 3월 초까지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공동캠페인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이 지난 1월 8일부터 한 달여간 진행됐습니다. 이 행사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그치지 않고, 현재 벌어지는 역사 왜곡을 막아내고 역사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함과 동시에 사전 발간에 동참해 주셨던 많은 시민들의 올바른 역사에 대한 지지와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몇 분이나 찾을 수 있을까'라던 조바심은 연일 이어진 격려와 응원 덕에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며 연구소 상근 일꾼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도리였다'는 겸손의 글,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줘 고맙다'는 감사의 글, '역사적인 과업에 동참했던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감격의 글, '역사정의 실현은 계속돼야 한다'는 다짐의 글을 보면서 이런 분들이 바로 연구소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우리 사회를 함께 변화시켜갈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3월 초까지 1140여 분이 이벤트 게시판에 이름과 주소를 남겨주셨습니다. 2월 3일, 1차로 779분께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를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2월 25일 330분께, 3월 13일 31분께 마저 보내면서 발송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선물하고 싶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의 1차 발송을 위한 포장 작업. 연구소 전직원과 아르바이트생까지 함께 한 완전 수작업 포장. ⓒ 민족문제연구소

그날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제 삶의 하나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윤조님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장서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와 노력, 그리고 희생에 감사를 드립니다." - 조정호님

"감동이네요. 당시 3살이던 아들이 벌써 11살이 되어 옆에서 함께 기사를 읽었습니다. 삐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아가는 민중들의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네요. 민족문제연구소의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김홍성님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요. 너무 쉽게 잊고 사네요. 그때의 뜨거웠던 감정, 알 수 없던 눈물 한 방울, 참여의 소중함을 알게 된 기회였습니다. 님들과 함께해 영광입니다." - 문병수님

"지치지 않고 견뎌낸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사회 바로 세우기는 ''친일청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황소걸음으로!" - 곽성순님

"불의가 지배하고 있는 지금, 정의라는 이름들이 하나둘씩 새겨지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 옵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 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 이덕우님

"우리 딸 최예진 양이 이제 9살입니다. 딸아이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참여했는데 너무 가슴 뿌듯합니다.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하네요. 이제 제대로 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줄 수 있겠네요." - 최석순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던 새신랑입니다. 그 아기가 벌써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됩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제가 근무하는 학교 도서관에 주문을 해서 현재 도서관에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한 민족문제연구소에게 감사드립니다. 고 김근태 선생님이 하신 2012년을 점령하기 위해 미력한 힘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 - 류승용님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게시판에 남겨 주신 글 중에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특별기고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모두 4회에 걸쳐 게재한 기사의 총 조회수는 무려 50만 건에 달했습니다. 특히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기사에서 친일인명사전의 공공도서관 보급률이 저조하고 학교 현장에서조차 사전 보급이 차단되고 있다는 사실이 소개되자, 연구소에 사전 구매 문의가 무척 활발해졌습니다.

한편, 사전의 대중적 보급을 위한 자발적인 실천도 다양하게 전개됐습니다. 다음 아고라에는 '공공도서관과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보급을 촉구한다'는 서명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이와 함께 공공도서관에 사전 비치를 위한 '희망도서 신청 방법'을 상세히 알리는 블로거들도 늘었습니다. 또 어느 대학생들은 직접 '친일인명사전' 영상을 제작해 사전 보급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발적 노력과 관심은 또 한 번의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연구소는 지난 2월 28일 아름다운재단 소셜펀딩 개미스폰서를 통해 한 달을 모금 예정기한으로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를 개시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빨라 모금 개시 이틀 만에 목표 모금액(489만5000원)의 6분의 1이 모였고, 3일째인 3월 2일 새벽부터는 참여 인원이 빠르게 증가하더니 오전 9시부터는 거의 분단위로 모금이 이뤄졌습니다. 결국 3월 2일 오후 5시 3분,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단 3일 만에 당초 목표 모금액을 초과 달성하며 성공적으로 마감됐습니다(달성 금액 497만1000원).

 
친일인명사전은 계속 읽혀야 합니다


자발적인 사전 보급 운동과 사전 기부프로젝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온전한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실현에 대한 시민들의 절절한 열망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초 단기간에 마무리되서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친일인명사전 보급을 통한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을 담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3월 14일부터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20권의 친일인명사전을 농어촌 지역 도서관과 대안학교, 동일본 지진 피해 조선학교 등에 보낼 수 있게 돼 정직한 역사, 친일인명사전을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2 바로가기

 우리는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몸소 역사정의 실현을 바라며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아끼지 않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모든 당신들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이어 역사정의실현의 보루가 될 시민역사관 건립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참 역사의 주역인 '당신'과 함께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또한 함께해 주십시오.

오마이뉴스 기사 바로가기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20 And Comment 2
  1. ghd outlet 2013.04.28 02:33 address edit & del reply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http://noq.botasugger.com/ botas ugg online.

  2. supra skytop 2013.04.29 04:34 address edit & del reply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 한다는 것은 별개이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kikka.tistory.com/97 新建文章 9

    http://simaeul.tistory.com/517 新建文章 4

    http://hbabygom.tistory.com/102 新建文章 8

    http://4hlrs.tistory.com/626 新建文章 5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
※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기까지

▲ 연구소 앞에서 진행된 수구단체의 시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지 한 달여 뒤인 2009년 12월 8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국자유연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수구단체 회원 150여 명은 1시간 가량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폐기',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의 연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둘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바로 20일 뒤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친일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국가운영에서 배제하고 일제시기의 기득권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더 이상 민족적 과제가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 행위'로 간주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일청산을 외치는 일은 가시밭길을 넘어 목숨을 거는 위험천만한 체제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직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 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사지경에 빠진 고난 속에서도 친일파 연구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범위를 문학에서 벗어나 전 친일파로 넓혀서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중에서)

▲ 임종국 선생의 친일인명카드. 연구소는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다. 2만여 장이 넘는 선생의 친일인명카드가 있었기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가능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2003년 12월 30일,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조정래 선생이 말한 또 하나의 '모델 케이스'였습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깨어 있었고 양심들은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산 삭감 9일 만에 통쾌한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첫날인 2004년 1월 8일. 이날은 꼭 55년 전 반민특위가 당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파 청산 작업에 착수한 날이었습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5년 10개월 만인 2009년 11월 8일, 숱한 방해와 위협을 뚫고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게 7.42㎏의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조이며, 애태우고 때론 분노했던가요.

금서 아닌 금서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 보급률 32%

▲ 누가 친일인명사전을 막고 있는가? 반민특위 와해 60년만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과 교육적 가치를 외면한 일부 학교들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도서관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을 발간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얼마만큼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까요. 2012년 1월 현재, 약 4700여 질(기증 포함)이 보급되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인 점, 전문서적인 점, 30만 원으로 가격이 높다는 점, 상업 광고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은 보급 면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평입니다. 특히 발간 초기 온라인 모임인 '세계아고라정의포럼'과 '대한불교청년회'의 보급운동이 눈에 띕니다.

'세계아고라정의포럼'은 2010년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240만 원을 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노들장애인야학, 지리산고등학교, 설천재가노인복지센터 등 국내 10곳과 한국학연구소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7개 외국 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기증된 사전에는 "친일의 역사는 결코 잊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유산이기에 이 책을 나눕니다"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습니다. 대한불교청년회는 192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든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시작한 단체로 2010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사전 보급 운동을 1년 내내 벌여나갔습니다.

그러나 사전 발간을 염원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사전의 보급은 아직도 더디기만 합니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687개 도서관에 223질 밖에 보급되지 않아 보급률이 32% 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느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왜 사전이 없는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적은 예산으로 구입하기에는 <친일인명사전>이 너무 고가인 데다 희망도서신청도 없어 구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전이 비싸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을 위해 사전을 비치해 놓아야 하는데 이토록 소극적이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도서관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 장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고가의 사전류보다는 1만~2만 원 대의 단행본을 주로 구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민 다수가 지속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구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전 구입 거부하는 학교들... '친일인명사전'을 허하라

사전 보급이 더딘 이유 중에는 일선 초중고 학교의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례들은 학교 현장에서 사전 보급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 <오마이뉴스> 김행수 시민기자의 2010년 9월 9일자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교장샘, <친일인명사전> 구입하지 말라고요?)

 

▲ 이상진 전 서울교육위원이 "친일인명사전 현황 보고하라"고 지시했던 공문. 이상진 전 교육위원은 전교조를 친북좌파로 몰아붙이고 이적단체로 검찰에 고발까지 한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상임대표로 한국국공사립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져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① 서울 강서구 ㄷ고 ㅈ교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친일인명사전>을 찾을 수가 없어 확인해 보니 교장 선생님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문제 삼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교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따져 물으니 "(친일파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역사적 판단이 서로 달라 아직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보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② 사립학교인 종로구 ㅅ고 역사 교사인 ㄱ씨는 2009년 11월 수업 참고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는데 5개월이 지난 2010년 4월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서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도서선정위원회의 구입 결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③ 2010년 4월 서울교육청은 서울 소재 모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 여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진 당시 교육위원 이상진씨(전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협의회장)가 이를 문제 삼으며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공문을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이 책의 구입을 주저하였다. 실제로 ㄷ고의 사서 교사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여부를 묻는 교사에게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며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도서관에는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처음 이 공문의 존재를 제보한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히려 이 공문을 보고 더욱 친일인명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에 사전 구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 또는 상급 관청의 지시와 감독으로 인해 사전이 비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사립학교들에서는 '우리 학교 설립자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학사참여가 활발한 것으로 평가되는 광주광역시 초중고 학교의 경우를 봐도, 아직도 <친일인명사전>이 학교 담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8월 29일 광주광역시의회 김선호 교육의원은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광주시내 일선 학교의 <친일인명사전> 비치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시내 147개 초등학교는 단 1곳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중학교는 86개교 중 24개교(27.91%), 고등학교는 66개교 중 28개 학교(42.42%)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의원은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그 책 구석구석에 알알이 박혀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친일인명사전>의 국내 보급이 저조한 가운데, 이 사전의 보급을 꺼려할 만한 일본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활기를 띤다고 합니다. 국내 도서의 해외 유통을 주로 하는 어느 업체 대표는 일본의 각 대학으로 <친일인명사전>이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제 집에서 구박받는 자식, 집 밖에서 대접받는 형국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금서 아닌 금서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언젠가는 전국 방방곡곡 모든 도서관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직접 책장을 넘기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역사가 있으니까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판매 수익금 전부를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 과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학문적 기록이라면 시민역사관은 이를 풀어내 생생한 자료로 진실한 역사를 증거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2 And Comment 1
  1. supra sneakers 2013.04.25 04:04 address edit & del reply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되지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wakingphoto.tistory.com/6 新建文章 4

    http://iamthewalrus.tistory.com/entry/The-Verve-bitter-sweet-symphony?_new_tistory=new_title 新建文章 2

    http://islandlim.tistory.com/1062 新建文章 5

    http://pknmly.tistory.com/33 新建文章 5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
※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에는 모두 7억 여 원이 모금됐다

2004년 초, 시민운동사에 길이 남을 누리꾼 참여운동이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60년간이나 미뤄져 왔던 친일파 청산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3년 12월 말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온갖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면서도 용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세한 예산을 찾아내 도려낸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심의의 철저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정치권의 몰염치를 비난했습니다.

2004년 1월 7일 국회의 반역사적 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기사에 어느 누리꾼(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호룡 선생)이 격동의 심경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민족사의 과제를 국가가 정녕 외면한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 그렇게 거대한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공동캠페인 조인식을 가지고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캠페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1절까지 1억 원, 8·15까지 5억 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2003년 친일인명사전 예산 전액 삭감... 모금운동 11일만에 '5억 원 달성'


▲ 2004년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금모금 공동캠페인
 협약식을 가진후 양 기관의 대표자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
소 소장, 조문기 이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운현 편집국장. 뒷줄은 차영조 민족문제
연구소 운영위원.ⓒ 김진석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모금 시작 하루만에 4000만 원이 모이더니 나흘 만에 1억 원, 엿새 만에 2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뜨거운 모금 열기에 예산 삭감을 진행한 계수조정소위의 위원장인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까지 성금을 보내왔으나 누리꾼들의 반대로 반환하는 해프닝마저 일어났습니다. 전임 대통령도 참여의 뜻을 전해왔으며 여야 의원들과 정당들도 뒤늦게 자성하며 이구동성으로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월 15일 오후 6시 행정안전부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모금 즉시 중지 결정' 공문을 연구소로 보내온 것입니다. 그날 오후 9시 방송사들은 일제히 톱뉴스로 이 기막힌 사태를 보도했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다니" "열받아서 사망 일보 직전이다. 낼 눈뜨자마자 바로 은행 가야지" 여론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이에 허성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도 성금을 냈다"고 공개하면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여론의 뭇매를 맡게 됩니다.

이제 누리꾼 모금운동에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금은 오히려 가속화돼 다음날인 16일 4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18일 밤늦게까지 온라인 입금이 계속되더니 19일 새벽 3시 드디어 목표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11일만에 2만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기금목표 5억 원을 단숨에 달성해 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믿기 힘들었던 이 순간을 '5억 돌파! 물방울이 바위 뚫었다... 명동에 울려퍼진 "친일청산 만세!"'라는 감격어린 제목을 달아 전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눈물나네…나만 그런 건가요?…사랑하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소감을 붙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벅차오르는 자부심에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절망을 접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긍정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메이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모금하는 수재의연금도 아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아닌 역사운동에, 성인 인구 1000명당 1명이 참여하고 평균 2만 원의 소액 성금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기금목표를 이뤄낸 것입니다. 누리꾼들이 스스로 '독립군 진공작전'이라 이름하였듯, 민초들이 이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역으로서, 거짓된 역사를 거부하고 진실한 역사를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기금목표를 달성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누리꾼 모금 공동캠페인을 일단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아래 국민모금으로 전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날 저녁 명동의 반민특위 터에서는 누리꾼들과 연구소 식구들이 운집한 가운데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친일청산을 다짐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압록강 행진곡'을 드높이 외치며 제2의 독립군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 2004년 1월 19일 엄마 손을 잡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8살 우빈군.
우빈군 어머니는 이번 모금상황을 보면서 우빈이와 함께 역사책을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경이로운 순간들과 북받치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오마이뉴스>와 연구소 누리집에 올라왔던 숱한 사연들을. "우리 네 딸들이 아름답고 정의롭게 커가길 바란다"며 정의의 대열에 가족 여섯 명의 이름을 모두 올려달라던 다둥이 아빠(한걸음), "반민특위 위원이 된 기분"이라던 일산 비둘기님, "제2의 독립군 군자금을 낸다"던 이석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던 새신랑(nagne1120).
 
"훌륭한 유산은 바로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라며 가족의 이름으로 동참해 주셨던 가장(cjseodls),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족이 될 수 있겠다"면서 이역만리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범부(bigground)님, 연금의 일부를 보낸다던 지체장애인, 하루 날품삯을 아들 명의로 보내온 막노동자, 면접비를 성금으로 냈던 '청년백수'(rock7896), "비록 사오정이지만 두 아이와 만 원씩 쏜다"던 조기 퇴직자(team), 기름때 묻은 지폐를 모금함에 넣고 돌아서던 호떡 노점상 아저씨, 선대의 친일 행적을 대속한다며 성금을 보내온 수많은 후손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멀리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상을 그리며 고귀한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부족한 생활비를 쪼갠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성이 담긴 소중한 물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돌반지,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 신혼부부의 예물시계. 간절한 사연 속에 진실한 역사와 건강한 사회를 향한 아름다운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차마 기금으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곧 만들어질 시민역사관에 누리꾼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전시하려 합니다.

아이들 돼지저금통, 예물시계... 국민이 만든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친
일인명사전 성금 5억원 모금 달성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인명사전 네티즌 성금 이용방안에
 대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 권우성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은 참여인원과 열기, 모금속도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뿌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배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인터넷 역사문화운동이 만개하는 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구세력들에게는 역사를 움직이는 참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역임을 입증해낸 것입니다.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되면서 한나라당의 책동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도 2004년 12월 부족한대로 개정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얻어냈습니다.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쟁취한 역사적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값진 소득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었습니다. 국민모금에서 나타난 많은 이들의 절절한 염원이 밑거름이 되어 2009년 11월 8일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온갖 방해와 역경을 딛고 18년간의 대장정 끝에 이뤄낸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누리꾼 여러분들을 비롯한 국민 다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
이었지만 숙명아트센터가 측의 안전 문제로 대관 계약을 일방 취소하자 참석자들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장소가 변경하여 묘소로 이동하고 있다.ⓒ 유성호    


누리꾼 모금 8주년을 맞아 이제 참 역사를 지켜낸 그때의 '당신'을 찾습니다.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 호응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감격을 오롯이 담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DVD를 보내드립니다.

☞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들끓고 있는 우리 현실은 상식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힘들이 모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했습니다. 다함께 뭉치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함으로써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신뢰와 그간의 축적된 힘을 기반삼아, 다시 역사전쟁의 최일선에 서고자 합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적에 이어 두 번째 과제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관을 중심으로 친일·독재를 찬양하는 온갖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원 보내주시고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 역사의 진정한 주역 '당신'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가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모금일지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전액 삭감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 2004년도 정부예산안 통과
2004년 01월 07일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 네티즌 모금 발의
2004년 01월 08일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협약 체결
2004년 01월 09일 모금 4000만 원 돌파
2004년 01월 12일 모금 1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4일 모금 2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5일 행정안전부 '모금 즉시 중지 결정' 연구소에 공문으로 통보 모금 3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6일 모금 4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9일 기금 목표 5억원 달성, 명동 반민특위 터에서 결의대회 네티즌모금을 국민모금으로 전환
2004년 01월 27일 국무회의 '2006년까지 35억 원 모금' 승인 의결
2004년 02월 19일 모금 7억 원 돌파
2004년 03월 15일 참여인원 약 3만 2000여 명, 총모금액 7억 5000만 원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0 And Comment 1
  1. pandora 2013.04.30 15:01 address edit & del reply

    세상은 네가 있어 변해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주요내용

|

다큐멘터리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주요내용


1945년 8월,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미군정은 친일세력을 복귀시켰고, 이승만은 권력을 잡기 위해 이들과 결탁했다. 이어진 반민특위 해체와 김구 암살. 이로써 우리 역사는 거짓과 불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금기가 된 친일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했던 임종국. 아버지의 죄과도 기록하는 엄정한 태도로 반평생 친일문제 연구에 몰두했던 임종국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91년 2월, 그의 유지를 계승한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친일세력의 것이었다.



1995년 8월, 연구소 회원들이 ‘친일청산’을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수백 명으로 불어난 연구소 회원들의 꿈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그러나 돈도 연구인력도 모자랐다. 그런 상황에서 맞은 IMF. 연구소는 존망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1999년 회원들은 다시 편찬기금 조성에 나섰고, 그해 8월 대학교수 1만 명이 사전편찬 지지를 선언했다. 그 무렵, 박정희기념관 건립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연구소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1년 12월, 마침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출범한다.



2003년, 수구세력은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을 막아서고, 사전편찬 기초조사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사전편찬이 좌초 위기에 놓였을 때 인터넷 모금운동이 시작되었고, 11일 만에 목표액 5억 원이 달성됐다. 상식과 정의의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친일청산은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국치일, 편찬위원회는 마침내 사전수록예정자 1차명단 3,090명을 발표했다. 수구언론은 거센 비난을 쏟아냈고, 연구소를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시위대가 연구소 앞을 점거했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사전 편찬작업은 흔들림 없이 계속됐다.



2008년 4월 29일, 편찬위원회는 최종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제 친일인명사전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단계로 진입했다. 그러나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대대적인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이들의 역사파괴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진실에 기초한 기록의 힘 뿐이었다. 200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 등이 게재와 배포금지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과는 친일인명사전의 승리. 인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 돌연 행사장 대관이 취소됐다. 분노한 시민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로 자리를 옮겨 독립정신과 역사정의를 되새기는 뜻깊은 헌정식을 가졌다. 친일파들에게 암살당한 백범 선생의 혼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민들은 ‘친일파 청산’을 소리높여 외쳤다.


다큐멘터리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보기


친일인명사전 18년사-Collaborator Dictionary 18years from MinjokMovie on Vimeo.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1 And Comment 3
  1. lunettes de soleil pas cher 2013.04.25 08:11 address edit & del reply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2. Michael Kors handbags outlet 2013.04.26 18:44 address edit & del reply

    젊을 때에 배움을 소홀히 하는 자는 과거를 상실하고 미래도 없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neiture.tistory.com/58 新建文章 6

    http://durumul.tistory.com/162 新建文章 1

    http://pyoungon.tistory.com/71 新建文章 9

    http://untitledyet.tistory.com/401 新建文章 3

  3. cheap oakley sunglasses 2013.05.14 19:51 address edit & del reply

    미안 미안내가슴아좀 아플꺼야잠시 뿐일꺼야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 공동캠페인] 참 역사의 주인공,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

△ 2004년 1월 8일 공동캠페인 협약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1월 8일~19일, 불과 11일 만에 모금액 5억 달성. 그날의 ‘당신’들과 함께 이뤄낸 기적의 순간이었습니다.

△ 2004년 네티즌모금 당시 신문지면



2012년 1월 8일, 그때의 감동을 기억하며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다시 뭉쳤습니다.
"네티즌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를 함께 열었습니다. 
참 역사의 주인공, 여러분들이 바랬던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제작



참 역사의 주인공은 언제나처럼 여러분이십니다.

뭐든 다 가진 자들이 우리 모두의 역사마저도 자기들 것으로 하려는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다해도,
언제나 그랬듯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거스를 수 없고, 그 속엔 늘 우리네 민초들이 있었음을 압니다.

 

                                  그때의 감동을 담아, 그때의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를 띄웁니니다.
   그날의 감동과 기적을 이어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에 함께 해주세요~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다둥이카드소지자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Trackback 7 And Comment 1
  1. ray ban wayfarer 2013.04.29 02:21 address edit & del reply

    전통음식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prev | 1 |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