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에 해당되는 글 39건

  1. 2013.01.14 自畵像_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3)
  2. 2013.01.07 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3. 2012.12.05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 (1) (3)
  4. 2012.12.05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2) (10)
  5. 2012.12.05 다카키 마사오, 민족문제연구소에 문의가 많아 간략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27)
  6. 2012.09.03 꼭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_ 친일인명사전 앱 (10)
  7. 2012.08.23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8. 2012.07.16 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9. 2012.07.13 [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6) 죄인의 말
  10. 2012.06.29 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4)

自畵像_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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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지식채널ⓔ가 지난 2012년 11월 친일연구의 선구 임종국선생의 기일을 맞아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치셨던 임종국 선생이 1989년 11월 60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생의 친일연구 업적과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연구소는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실현이라는 선생의 뜻을 더욱 널리 확산시키고 이를 실천하는 후학을 격려하고자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임종국상>을 제정해 2012년 11월까지 총 6회의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사실상 금기시되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해 이듬해인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해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던 선생처럼, 연구소는 온갖 음해와 방해 속에서도 18년을 한결같이 오로지 사실과 진실만을 좇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습니다.

 

온갖 거짓 역사가 부끄럼도 없이 판을 치는 2013년 오늘,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다시 가슴깊이 새기게 됩니다.

 

 

 

 

EBS 지식채널ⓔ <자화상>에 활용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영상다큐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를 클릭해 보세요.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둥이카드소지자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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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2013.01.16 14:13 address edit & del reply

    ㅠㅠㅠㅠㅠㅠㅠㅠ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납니다. 임종국 선생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친일파 연구는 임종국 선생님께서 연구하신 범위 내에서 한 발짝도 더 넘어서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 만큼 완벽한 사실관계에 근거한 자료조사...그 과정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존경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종국 선생님의 삶에서 보여준 용기와 인내는 우리 남는 사람의 몫이겠지요 감사합니다.ㅠㅠ

  2. MCITP Certification 2013.04.02 12:45 address edit & del reply

    히 포샵질로 왜곡이라고 어떻게든 우기시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생각이 1차원 적이신것 같고.. 말해도 이해 못 할 거란 말씀도 이해가 되고..

  3. ugg baratas 2013.04.13 21:00 address edit & del reply

    ♡ 살아있으므로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고 살아있으므로 너의 사랑의 느껴

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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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희망으로! 희망을 행동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담는 시민역사관

 

 

 

 

     역사전쟁은 단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국민의 힘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습니다.

            2012년 역사다큐 백년전쟁! 거짓역사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습니다.

            2013년 올해 시민역사관의 주춧돌을 세우겠습니다. 

▲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발간 국민보고대회 개최

 

▲ 백범 김구선생 묘역에서 진행한 친일인명사전발간 국민보고대회 현장


 

         민족반역자들에게 분노했다면, 역사적 진실에 가슴을 쳤다면

         허탈과 좌절을 떨쳐버리고 시민역사관 건립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시민역사관 건립모금 현황

 

           목표모금액 : 50억

           모금현황 : 현재까지 역사관 건립모금 총액 15억!

                         (친일인명사전 판매수익금 10억 + 시민역사관 건립모금액  5억)

           모금인원 : 10만원 이상 역사관 건립기금을 내주신 발기인 1000명

                         십시일반 힘을 보태주신 시민추진단 600명  

▲ 민족문제연구소·오마이뉴스 공동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 진행 3일만에 5억 모금(2004년 1월)



 


     시민역사관 건립계획

 

           광복70주년을 맞는 2015년 8월 15일 개관을 목표로 합니다.

           독립과 민주화운동의 성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에 세우겠습니다.

           시민역사관은 진실된 역사의 전시/ 교육/ 문화/ 연구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 시민역사관, 같이 만들고 함께 가꾸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유물

 

민족문제연구소는

20여년간 문헌류·시청각류·박물류를 포함한 3만여점의 유물을 기증받고 수집해 보유하고 있습니다. 

1991년 연구소 설립 이후 축적해온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180만건의 학술정보DB를 구축했습니다.

계속적인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국내외의 근현대 유물과 학술정보DB를 축적할 계획입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3.1 독립선언서> 원본

 

▲ 유신40년 특별전시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서대문형무소 12옥사

(2012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유신40년을 맞아 38회에 걸친 전국순회전시를 개최)




     국민여러분께



      친일인명사전이 밝혀낸

      민족반역자들에게 분노했다면

      백년전쟁이 보여준 

      역사적 진실에 가슴을 쳤다면

      이땅의 역사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나아가길 희망한다면

      힘을 모아주십시오. 시민역사관 반드시 만들어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 │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 02-969-0226 / E-mail.
 minjok@minj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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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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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찌라시 수준의 인쇄공해물, 종북백과사전 


지난 19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극우논객 조갑제 씨가 펴낸 종북백과사전을 거론하며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을 싸잡아 종북 정치인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틀 뒤에는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친일인명사전을 인용하면서 “친일?종북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해 종북논란이 바야흐로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종북백과사전 대 친일인명사전이란 몹시 마땅찮은 구도를 앞에 두고, 우선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한사람으로서 이러다 두 책이 혹시 같은 부류로 취급받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섰다.




▲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지난 19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극우논객 조갑제 씨가 펴낸 종북백과사전을 거론하며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을 싸잡아 종북 정치인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이 전국민적 관심 속에 발간되자, 같은 달 26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급조 극우단체가 친북반국가인명사전을 만들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소동을 피우는 강경극우세력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 말았지만, 그 기민한 대응과 패러디의 기발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날 발표한 명단에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들이 다수 포함되었는데, 그 때 거기에 빠진 어떤 분들은 “내가 이렇게도 한 일이 없었는가”하고 자탄해마지 않았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도 더러 들려왔다. 명단이 발표된 뒤 전혀 소식이 없어 한갓 해프닝으로 여기고 있었더니만, 살짝 이름을 바꾼 종북백과사전이란 살벌한 느낌의 책이 나온 것을 이번에 이한구 대표의 친절한 소개가 있고서야 알게 되었다.


짐작은 했지만 책을 직접 보니 한마디로 찌라시 수준의 인쇄공해물에 불과해 2만원이란 책값도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소 내용이 궁금하더라도 절대 사볼 필요가 없는 허접 쓰레기라는 점을 거듭 밝혀둔다. 이 책의 참고자료들은 대부분 재심에서 무죄취지로 결론이 난 사건에 대한 안기부 국정원 검찰의 공안기록이거나 자신들이 발간한 책 아니면 인터넷 기사들이다. 이 따위 책에다 함부로 백과사전이란 명칭을 붙이다니 언어를 농단해도 분수가 있어야 한다. 한 때 치밀한 채증과 예리한 분석으로 정평이 있던 조갑제 씨가 판단력마저 종북 색출에 저당잡힌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종북이라면 어감상 친북보다 죄상이 한결 무거워 보이는데, 조 씨는 종북백과사전에 전직 국무총리 둘과 대선주자들을 포함 야당 국회의원 33명을 무더기로 집어넣는 쿠데타적 사변을 일으켰다. 1952년 이승만 정권 때 국회의원 40여 명이 통근버스에 탄 채 크레인으로 헌병대에 끌려간 부산정치파동 이후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이런 봉변을 당한 일은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내용이 진실이라면 나라의 명운이 가히 적화통일 직전의 백척간두에 서있다고 할 만하다. 검찰은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듣기 전에 미적거리지 말고 조 씨를 소환하여 사실관계를 알아봐야 한다. 조사결과 관련자들이 혹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벌해야 하며, 반대의 경우에는 유언비어유포죄나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아 그런데 박정희 정권이 긴급조치 때 만든 유언비어유포죄는 없어졌나 보네요. 뭐 다른 죄목 없나요.)


어느 나라에서나 극우인물들의 언행이 선동적이고 과격하다 하지만 상궤를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쪽박부터 깨는 이런 식의 행태를 보인다면 도대체 의회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이 무슨 수로 가능하겠는가.



종북 공격이 잇따르고 있는 까닭



▲ 유신 40년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유신 40년이 되는 이 해, 유신의 망령이 우리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다.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체제와 박정희주의의 완전한 극복을 위해 '박정희 유신"의 모든 것을 담은 전시회를 진행 중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종북 공격이 잇따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본원’이 박근혜 의원이기 때문이다. 말 수 적은 그가 단호하게 ‘자유’와 ‘국가관’ 검증을 언급했을 때 화살은 시위를 떠난 것이라 봐야한다. 이미 사당화한 새누리당 내외의 ‘종박세력’은 그 뜻을 충실히 받드는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유신시대를 떠올리면서 공포스런 데쟈부를 경험하고 있다.


유신 40년이 되는 이 해, 냉전시대로 끝없이 후진하는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지켜보면서 박정희체제와 박정희주의의 완전한 극복 없이는 민주주의란 헛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 논란이 어찌된 노릇인가. 종북 놀음의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반드시 대선에 유리할지도 의문이며, 후과에 대한 책임도 결코 적지는 않을 것임을 단언한다.


유신의 망령이 우리의 머리 위를 배회하고 있는 이 시점에, 친일인명사전은 편찬자들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역사전쟁이 아닌 이념전쟁의 전면에 놓이게 되었다. ‘박정희 친일?종북 원조론’은 사실 박정희 전대통령 추종세력에겐 역린을 건드린 것과 진배없는 불경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박정희주의자들은 특이하게도 종북 부분보다 친일에 더 격분하고 과민반응을 보여 왔다. 남로당원 경력은 동료들을 밀고한 것으로 대속하였다고 생각하는지 또는 가혹한 사상탄압으로 상쇄되었다고 보는 것인지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어쨌든 친일문제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불똥은 이제 친일인명사전으로 옮겨붙었다.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 유포되고 있던 근거 없는 반론들이 자가발전을 통해 재구성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


먼저 그들이 보아도 치명적인 친일의 증거이면서 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지원혈서는 무조건 조작이라고 떼를 쓴다. 다음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주체가 빨갱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정치적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고 덮어씌운다. 모두 합리적인 반론이라기보다 막무가내식 들이대기에 가까운 주장이긴 하지만, 여론을 호도할 우려가 있어 부득이 한 마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중에서도 혈서조작설은 친일인명사전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는 조작설로 도배가 되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그대로 작동되고 있다. 진실은 덮이고 억지 주장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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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deyekiller 2013.03.29 12:47 address edit & del reply

    역사를 조작 폄훼하는 좌익조직 민좃문제연구소...

    바른 역사가 너들과 그 후대의 수급을 베리라..!!

    맑고 백지 처럼 맑고 깨끗한 어리고 젊은 영혼들을 붉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물들게 하여

    인성과 사상과 인간 그 자체를 파괴시켜 악의 구렁텅이에 처 박는 인간말종 친종북놈들의

    사악한 역사조작, 반역적 행위에 그 당사자는 물론 그 후대까지 모조리 천벌을 내려주기를

    간구하며 이 글을 복사하여 올린다.

    이 사이트를 찾아온 사람들과, 조작된 역사 "100년전쟁"을 본 사람들은 이 종북 놈들이 처

    놓은 악의 그물에서 빠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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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두 번째 재판의 치명적인 약점


    5.18에 대한 젊은 층들의 관심이 뜨겁다. 젊은층이 게시한 최근의 쓸 만한 글들을 보면 5.18에 대한 진실 그대로다. 그런데 최근 언론 기자들마저 진실과 허위를 거꾸로 알면서 젊은 층들을 나무란다. 그래서 필자는 1995.5.17. 검찰의 최종보고서 즉 5.18사건을 두 번째로 재판한 데 대한 근거자료를 수록한 검찰보고서를 스캐닝 하여 곧 공개하고자 한다. 이것을 공개해야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5.18사건을 처음 재판 한 시기는 1980년이다. 일단 같은 사건을 두 번째 재판하려면 재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1995년 말부터 1997.4.17.에 이르기까지 번갯불에 콩궈먹는 식으로 진행된 두 번째 5.18재판은 재심 재판이 아니라 급조된 사생아 ‘5.18특별법’에 의해 진행됐다.



    김영삼이 자기 살기 위해 역사 뒤집었다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해 온 사회가 뒤집혔다. 10월 28일경, 김대중이 북경에 가 있으면서 “나는 노태우로부터 20억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사회가 또 한 번 뒤집혔다. 그리고 국민의 시선이 김영삼에 쏠렸다. “김대중이 20억을 받았으면 노태우 밥상머리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느냐, 이실직고 해라” 씨-프린스호 사고, 삼풍백화점사고, 성수대교사고, 구포열차사고, 목포여객기추락사고 등이 이어져 귀신 붙은 사나이, 재수 없는 사나이로 멸시받던 김영삼이 궁지에 몰렸다.


    김영삼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국민의 시선을 노태우와 전두환에 돌렸다. “저 놈들 잡아 넣어라, 저 놈들 쿠데타 하고, 광주에서 학살한 놈들이다.” 이후 검찰, 재판부, 헌법재판소가 김영삼에 아부하여 법리를 왜곡했다. 5.18사건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은 이런 더러운 약점이 있는 것이다.



    검찰보고서는 1980년이나 1995년이나 변한 게 없다. 단지 변한 것은 판사들의 법 해석이다. 1980년의 판사들은 시실과 법리를 제대로 해석했다. 그런데 1996-7년 의 민주화판사들은 사실과 법리를 인민군 입장에서 했다. 15개의 코미디 판결 중, 네 개만 뽑아 본다.



    1997년의 5.18재판 판결문은 인민군 판사들이 썼다


    1.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다. 이런 준헌법기관을 신군부가 군을 도구로 이용하여 무력으로 진압한 행위는 내란이다.



    2. 광주시위는 민주화운동으로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됐어야 했는데 신군부가 이를 조기 진압한 것은 분명한 내란이다. 내란 과정에서 살인행위가 저질러졌기 때문이 신군부는 내란목적 살인범들이다.



    3. 최규하는 바지다. 바지가 서명한 것은 모두 전두환 책임이다.


    4. 계엄령을 선포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정치-군사적 판단에 속하며, 사법부의 재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전두환 마음에는 이미 내란하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계엄령 확대선포 그 자체가 내란이다.







    북한책 베껴 쓴 ‘황석영 책’을 5.18바이블로 믿고 있는 한심한 국민들


    5.18에는 또 다른 약점이 있다. 당시 대학생들은 황석영이 풀빛출판사를 통해 1985년에 내놓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5.18 바이블로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 바이블은 북괴가 1982년에 내놓은 “주체에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1985년에 출간한 ‘광주의 분노’를 베낀 책이다. 지금의 40-50대들은 물론 그를 기초로 하여 기사들을 쓴 언론들에 의해 이 나라 국민은 북괴가 날조하여 유포시킨 모략의 역사를 정사로 알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닌가?



    반역자 황석영이 북에 가서 대남모략 영화 시나리오 썼다

    그런데 5.18의 우상 황석영이 윤이상과 함께 1989년부터 김일성에 불려가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대남모략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시나리오를 썼고, 윤이상은 배경음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깔은 역적들이다. 이 사실은 2011년 필자가 탈북자들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통일부 자료로부터 발굴해 냈다.



    5.18은 북한이 만든 대남공작의 꽃

    5.18의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5.18을 북한에서 매년 전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기념하고 죽은 자들을 추모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의 최고인 것에는 명예의 상징으로 5.18을 앞에 붙이도록 ‘5.18을 명예로 하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북한 책에도 있고, 우리 통일부가 발간하는 주간정세보고서에도 있다.



    5.18에 대한 두 개의 판결 중에서, 역사를 제대로 반영한 판결은 1980년 판결이고, 빨갱이입장에서 역사를 뒤집은 반역적 판결이 1997년 4.17에 종결된 판결이다.


    2013.3.28.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 일베충킬러 2014.06.12 08:57 address edit & del

      일베충이나 변희재같은 것들 볼때마다 김일성 개새끼와 북괴빨갱이새끼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김일성 개새끼와 북괴빨갱이새끼들이 6.25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지금과 같은 종북프레임이 먹히지 않았을 것이며,

      구데기만도 못한 일베충이나 변희재같은 것들도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니까...일베충 병신새끼들...

  2. 오유인 2013.05.13 03:28 address edit & del reply

    이 글 시리즈 오유로 퍼갑니다.

    하아~~~근현대사라도 많은 분들이 재대로 알았으면 하네요 ㅠㅠ

박정희 혈서기사가 조작이라구요? - 종북놀음과 박정희 혈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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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


박정희 혈서기사 발굴의 일등공로자, 조갑제




▲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만주신문 마이크로 필름 ⓒ 민족문제연구소


▲ 일본국회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판독기에 나온 만주신문의 혈서지원 기사 ⓒ 민족문제연구소


그들이 그렇게도 조작이라고 믿고 싶은 박정희 혈서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원본은 현재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반인은 마이크로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출력도 가능하다(『滿洲新聞』 康德 六年(昭和 十四年) 三月 三十一日, 日本 國會圖書館 所藏 마이크로필름). 이조차 일본이 박정희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정신분석학적 처방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혈서 발굴의 일등 공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조갑제 씨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박정희』(1992, 까치)에서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쓴 사실을 처음 언급하여 발굴추적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박정희 연구자들의 끈질긴 조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증거자료는 찾을 수가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친일인명사전 집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2009년 10월에 가서야 가까스로 관련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증언만 있었을 뿐 확실한 증거가 발굴되지 않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지 못할 뻔했던 엄청난 내용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우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지막 순간에 순국선열들의 보살핌이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여기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당초 발굴한 혈서기사에 관한 보도자료를 따로 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혈서 자체도 충격이거니와 ‘조국(일본)을 위해 일사봉공(一死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하겠다’는 등 편지 내용이 워낙 엽기적이라 톱뉴스가 되고도 넘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치쟁점화를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연구소가 방침을 바꿔 자료 공개를 결정하게 된 데는 박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의 도발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2009년 10월 28일 일차적으로 게재금지가처분신청을 낸 뒤, 11월 8일로 예정되어 있던 발간보고회 직전인 11월 4일 기습적으로 법원에 배포금지를 추가 신청했다. 사실상 친일인명사전을 금서로 만들려는 악의적인 시도였다. 거기에다 박정희 지지자들의 위협도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연구소는 결정적인 증거자료 공개만이 유일한 대응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11월 5일 즉각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된 것이다.



박정희가 일본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다고요?


이밖에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이지 일본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친일인명사전이 허위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모함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도 연구소는 확고한 반증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둔다.(『舊時陸軍軍人(軍屬)屆』, 昭和 二十年 三月 一日.)



▲ 박정희가 일본군 예비역 소위임을 입증하는 공문서 ⓒ 민족문제연구소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며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현역 장교가 직접 지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졸업한 엄연한 일본군 예비역 소위이며, 관동군에서 복무한 시기도 있었다.


또 박정희가 대적한 팔로군은 중공군이므로 공비토벌이지 항일세력 탄압이 아니라는 유치한 발상도 연구소를 공격하는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팔로군도 항일부대이며 중국 소련에 대한 적대행위는 당시로서는 연합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상식 수준의 이해도 하지 못하는 억설이라 치부하겠다. 특히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항일을 위해 팔로군에 복무하고 있었던 사정을 감안하면 이런 궤변은 더더욱 삼가야 마땅하다.


중위를 단순하게 하급장교 정도로 간주하는 ‘대범함’도 당시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관대한 시각이다. 당시의 위관급 장교는 지금과 달리 군이 절대적 우위에 있던 파시즘 국가의 고등관으로서 군수나 경찰서장도 쩔쩔맬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출세욕에 불탄 박정희가 연령 제한에 걸리고도 혈서까지 써가며 거듭 군관을 지원했던 이유의 하나이다. 참고로 일제 35년간을 통틀어 자발적으로 일본제국의 장교된 자는 일본육사와 만주군관학교 출신을 포함 17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간택받은 존재들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박정희는 바로 적국의 장교다. 비록 착수 전에 해방이 되긴 했지만 만약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이 개시되었다면, 박정희는 그토록 꺼려했던 장준하처럼 사선을 넘어 광복군에 입대한 상당수의 일본군 출신 애국자들과 전장에서 만나는 운명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박정희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직을 버리고 군관의 길을 선택하였다. 강요에 의한 입대도 아니었으며 생계나 생존이 위협받는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다. 목적이 출세였든 영웅심의 발로였든 간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부일협력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과 정황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논쟁에도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다. 


▲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 교수 학자 180여명이 참여하여 3,000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증거자료에 의거 객관적으로 집필한, 한국근현대 최대최고의 인물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적 학문적 성과물이다 ⓒ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과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이들을 빨갱이로 모는 야비한 공격은 일찍부터 있어왔다.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면 4대강 반대도 파업도 무상급식도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고삐 풀린 극우세력의 방약무인함을 보면서 동시에 냉전의 끝자락을 붙잡고 유지해 온 그들의 기득권도 이제 소멸의 때가 왔음을 예감하게 된다. 도대체 합리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은 각 분야 교수 학자 180여명이 참여하여 3,000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증거자료에 의거 객관적으로 집필한, 한국근현대 최대최고의 인물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역사적 학문적 성과물이다. 지난 4월 13일 만주국 사무관을 지낸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후손이 제기한 서적복제배포금지소송이 대법원에서 기각됨으로써 3년간에 걸친 기나긴 소송도 끝이 났다. 사법부는 박정희를 포함한 5건의 관련 소송에서 모두 연구소 승소로 판결했다. 일관되게 친일인명사전의 공공성 객관성 엄밀성을 인정한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 내부의 자성이 담긴 과거사에 대한 최소한의 학문적 정화과정의 결과물이다. 왜 친일인명사전을 정치의 이름으로 오염시키려 하는가.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발족 때부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목적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정계에 입문하기도 전이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20여 년간 시쳇말로 영양가 없는 작업을 해왔다는 언설이 가당하기나 한가. 도대체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단 말인가. 이는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와 관계자들의 헌신을 모독하는 횡포일 뿐이다.


이미 객관적인 증거도 제시되었고 최종 판결까지 내려졌다. 논쟁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내세울 것이 있으면 내세우자. 역사 앞에 성역은 없고 인물에 대한 비판에 금기가 있을 수 없다. 언제까지 박정희신화에 얽매여 그를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셈인가. 박정희를 극복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에 미래는 없다. 장담하거니와 보수세력 그대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7면 전문 ⓒ 민족문제연구소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자료실 고양이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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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놈은 부관참시만이 답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얼굴을 들수가 없습니다.
    창피해서

  7. 슬픈땐 하늘을 보자 2015.03.19 23:0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역사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주장한다고 정사가 될수없습니다.

  8. 슬픈땐 하늘을 보자 2015.03.19 23:1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따라서 민문연의 주장은 일개 단체의 주장일뿐이지 정사가 아니란거죠.
    일본군사학교를 다녔다고 친일파다란 논리는 말도 안되구요.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았다는것도 말도 안되죠.그당시 만주엔 광복군이 없었습니다.교사에서 직업군인으로 직업을 바꾼건 그냥 직업선택의 자유죠.

  9. 슬픈땐 하늘을 보자 2015.03.19 23:1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박정희가 친일파라면 젤 좋아할 사람들은 일본애들이죠.한국의 발전이 일본을 따르는 사람에 의해서 됬다는 논리가 성립되니

    • 종북좌파out 2016.02.27 20:01 address edit & del

      1.
      누가, 어떤 단체가 주장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이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민문연은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저 아무런 근거없이 정사가 아니다, 정사가 아니다,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민문연이 역사를 편찬하나요? 정사가 왜 나옵니까?

      2.
      독립군 토벌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본 육사를 졸업, 일본군으로 복무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입니다.

      3.
      예를 들어 보죠. 만일 나와 당신이 북괴 수괴 김정은에서 충성혈서를 쓰고 충성의 맹세를 한 후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한다고 합시다. 빨갱이가 아니죠?
      국군을 공격한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을 해치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니깐요. 그런데 그게 맞나요?
      북괴 수괴 김정은에게 충성혈서를 쓰고 충성의 맹세를 한 것만으로 빨갱이인것처럼, 일본 천황에서 충성하는 황군의 일원이 된 것만으로 친일파인겁니다.

      4.
      보통 이런 말을 하면 '그럼 지청천 장군도 친일파냐?'라고 하던데, 지청천 장군은 자랑스러운 대일본제국 황군으로 복무하기를 거부, 만주로 가서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니 친일파가 아닙니다.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지청천 장군과 같은 행보를 보였어야 합니다.

      5.
      하판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일본경찰이 되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고문했습니다. 피를 뽑아 뿌리고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6.
      개인의 노력, 개인의 자유 중요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출세한 것 뿐인데 왜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는가?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덕술이 경찰 고위직으로 가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까? 또 김구 선생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까? 둘다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노력을 했는데, 왜 둘 다 칭송하지 않나요? 왜 한사람은 온갖 비난을 듣는거죠? 직업선택의 자유에 따라 그저 경찰이 된 것 뿐이데 말이지요.

      7.
      직업선택의 자유를 말씀하시니 하는 말인데.. 기본권도 제한될 수 있다는 거 아시죠?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는 건 불령선인으로 낙인이 찍히는 거였습니다.

      8.
      마찬가지 만일 지금 당신이 反대한민국적 행위를 하고 친북좌파 활동을 하면 , 그 행위와 활동이 하나의 직업과 같이 당신 개인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것이더라도 직업선택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지 못합니다.
      무슨말인고 하니 직업선택의 자유는, 반민족적 행위까지도 옹호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9.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독립운동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친일행위(정확히는 반민족행위)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연합군에 의해 조국이 광복을 맞은 후 대한민국이 건국도고 나서는, 더 이상 친일파도 없고, 독립운동가도 없습니다.

      10.
      그렇기에 비록 박정희가 친일의 과오는 있으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까지 박정희가 친일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비록 친일의 과오는 있으나 대통령으로서 성실히 직무에 임했던 박정희에 의해 발전한 것이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일본을 따랐던 친일파 박정희에 의해 발전한게 아닙니다.

      11.
      설령 일본애들이 좋아한다고 칩시다. 그게 뭔상관입니까?
      예를 들어보죠. 현재 영국의 왕실은 독일 하노버 왕가입니다. 독일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죠? 자랑스러운 독일 게르만족이 대영제국을 통치했다고 하면서?

      12.
      한 국가의 지도자의 혈통, 행적을 그 국가 전체와 연관짓는 것은 '지도자=국가'라는 북괴김일성왕조와 아주 유사한 국가관입니다. 우리가 빨갱이들이고, 여기가 빨갱이 국가입니까?
      친일파였던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고 일본애들이 좋아한다? 그러라고 하세요. 그게 뭔 상관입니까? 친일파 박정희에 의해 대한민국이 발전했다고 이 대한민국이 다시 일본식민지가 되지 않습니다.

      13.
      그리고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꼭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발전에 공이 있는 모든 친일파들은 친일파가 아니어야 합니다. 일본애들이 좋아할테니깐. 그죠? 간도특설대 출신의 친일파 백선엽 장군의 눈부신 활약(한국전쟁에서의)을 보며 舊일본황군 출신들이 얼마나 '반자이'를 외쳤겠습니까? 역시 우리 황군이다라면서..

      14.
      김일성은 독립운동을 했습니다(김일성 가짜설은 다 논파된 거짓입니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가가 북괴를 만들고 그 체제하에서 2천만 동포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누가 제일 좋아하나요? 일본애들이 제일 좋아하겠죠? 역시 쓰레기 불령선인이라고, 이래서 독립운동가 새끼들은 글러처먹었다고..

      15.
      우린 이제 김일성 때문에라도.. '역시 독립운동가 새끼들은 무능력하고 쓰레기 같은 칙쇼 조센징이다'라며, 김일성을 보며 좋아할 일본애들 때문에라도, 우리 위대한 항일영웅들의 역사 전부를 지워야 합니까?
      대한민국 건국원훈이지만 친일파들인 사람들을 보며 좋아할 일본애들 때문에 친일의 역사를 전부 지워야 하는 것처럼?

      16.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세요. 왜 끊임없이 왜놈들의 시선을 의식해 국내의 역사까지 뒤집어야 합니까?

      last.
      박정희라는 한 인물에 대한 열렬한 존경심때문에 친일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기준을 완화시키는 사람들.. 아주 많이 봤습니다. 박정희가 존경스럽긴 한데.. 친일파다? 이런 상황에선 보통 친일을 부정하더군요.
      어찌보면 한 개인에 대한 숭배 때문에 역사(정사ㅋㅋ)를 부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한 개인에 대한 숭배때문에 사상과 가치관을 왜곡시키는 건 북괴 빨갱이들이 주로 하는 겁니다.

      아주 적은 양의 오염물질 때문에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선, 그 오염원의 양보다 몇백배나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법이지요. 당신의 글은 짧으나 저의 글은 너무 길군요. 그냥 읽지 마시길.. 나 혼자 떠든거니.

      이상 친일파를 극렬히 싫어하는 애국보수.

다카키 마사오, 민족문제연구소에 문의가 많아 간략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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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일) 저녁 대선토론에서 나온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 친일과 독재의 후예’라는 이정희 후보의 발언 때문인지 오늘 연구소로 문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간 연구소가 조사하고 축적한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 2권 106~107쪽 박정희 항목 부분

 

 

친일인명사전앱 '박정희' 검색화면

 

 

친일인명사전에는 4,389명 친일인사 중 1인으로 박정희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주요행적과 일제강점기의 상세한 친일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총 3권 1질의 방대한 사전분량을 스마트폰 안에 쏙 넣을 수 있게 ‘친일인명사전앱’을 출시해 큰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2009년 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놓기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법원에 자신의 아버지와 관한 사전 게재금지가처분신청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사전 발간예정일을 이틀 앞둔 11월 6일 법원에서 이 신청은 기각되었고, 8일 사전 발간보고대회는 예정대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

 

이런 과정을 거쳐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되었음에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고, 특히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만주군 혈서 지원과 관련해서는 연구소의 조작이라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역사 연구자들의 철저한 검증과 법원의 판단이 있었음에도 말이지요.

 

다시 한 번 확인하시지요.

 

 

 

 

이상의 사실은 미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된 한미관계조사보고서인 ‘프레이저 보고서’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프레이저 보고서가 담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실상은 연구소제작 역사다큐 “백년전쟁”의 스페셜에디션 <프레이저보고서 -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를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역사다큐 "백년전쟁" 스페셜에디션

<프레이저보고서 -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 관람하러 가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일제강점기 교사 또는 일본제국 군인으로 체득한 식민의 유산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서서히 외화되어 마침내 이 땅 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리며 끔찍한 암흑의 역사, 유신시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연구소는 올해 10월유신 선포 40년을 맞아 유신독재의 본질을 조명하는 특별전시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전을 개최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서대문형무소 옥사에서 개막전을 진행한 이후로 창원, 부산, 광주, 대구 등 대도시에서 순회전시를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소규모 야외 전시를 무려 5개월 여 동안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특별전 전면소개. 위 내용은 전시도록에 더 상세히 실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정리가 좀 되시는지요?

 

이상의 주요내용들은 유신40년 특별전시도록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에 각종 이미지들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도록에 관한 문의는 민족문제연구소 전화 02-969-0226 으로 해주십시오.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특별전 전시도록 표지

 

 

<식민의 유산, 유신의 추억> 전시도록 6~7쪽, '친일인명사전으로 본 박정희'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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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의 2012.12.05 20:37 address edit & del reply

    박정희 대통령과 그 자식인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의는 사라지겠지요. 앞으로 우리나라에 전쟁이나 위기가 왔을때 나라를 위해 싸우면 3대가 못사는데 누가 목숨걸고 싸울까요? 독립군 때려잡던 박정희, 북한이 장악했을때는 친북행위하던 박쥐였던 박정희가 독립군들이 목숨걸고 지켜낸 나라의 대통령을 한것도 부끄러운 수치의 역사인데 그딸까지 대통령을 만들어야 할까요?

    • 소현맘 2012.12.05 21:51 address edit & del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요..
      일본군대에서 죽어라 독립군을 죽여댔던 사람이 어떻게 너무도 그렇게 쉽게 남로당에 가입했죠??
      그리고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북쪽으로 안가고 남쪽에서 대통령을 하게 된건가요??좀더 구체적인 진실을 알고 싶네요..그래야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 꼭보세요 2012.12.06 17:04 address edit & del

      유투브에 백년전쟁 검색해서 꼭보세요
      거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발전한건 우리의 노력도 있지만
      미국이 우리나라 공산화를 막기위해 많은 원조를 해줬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오희려 화폐계혁실패등등 방해만 했더라고요.
      꼭 보세요 진실이 있습니다.

    • 豊田 2014.03.15 04:30 address edit & del

      백년전쟁 영화 보면 성우의 근거 없는 나래이션만 잔뜩 있고 이를 뒷바침해주는 근거는 텍스트로 만들어 넣은 제목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색안경끼고 선동 당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봐봐라~ 이게 역사냐? 역사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배우는것이지 니들처럼 조작 날조하여 정신착란증 환자 마냥 허구를 만들어 맹신하는게 아닐것이다. 니들은 역사 조작하는 일본 극우와 다를바가 없다!

  2. 일심 2012.12.05 21:39 address edit & del reply

    한 인간의 사적 욕망으로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비틀어 댄 것을 용서 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식에게도 상황에 맞추어 타협하고 눈치보며 살면 된다는 동물적 약육강식의 삶을 가르치는 꼴이 될 테니까요.

  3. 이 닭대가리야 2012.12.06 00:46 address edit & del reply

    멍청한 소현이 엄마를 위해 짧게 하겠다.

    문제)청아대 씨박이는 누구를 찍을까요?
    1번 닭근애 2번 문후보 3번 이후보

    씨박이 한테 힘 실어주고 싶으면 1번 닭근애 찍으면 되고,
    씨박이 족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번호 찍으면 된다.

    되도 않은 머리 굴리지 말고. 씨박이 반대로만 가면 그게 옳은 길이다.
    모를땐 자문해바. 씨박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 반대로 하면 답이다.

    • 이경우 2013.02.19 09:29 address edit & del

      이런 개 호로 색 큉 니가 진리냐 그렇게 잘 알면 니가 정치해

      맨날 이런 구석 탱이에서 영웅 행사 처 하지말고 디비자~

  4. 소현맘님 2012.12.06 02:49 address edit & del reply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간단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회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그 때 그 때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일제 시대에는 출세하기위해 혈서까지 써가며 일본군이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하라는 강요를 받은적도 없었으며 교사였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해 만주군이 되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해방 후에는 당시의 분위기(당시에는 사회주의 인기 좋았습니다)에 편승해 남로당에 가입했습니다(물론 형의 영향도 있겠죠. 그러나 만약 단순히 형의 죽음 때문에 남로당에 가입한 것이라면 이성적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대통령 자격 박탈이지요). 그러다가 또 자신이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니 동료들을 모조리 불고, 일본군 출신 친일파 선배들의 구명으로 목숨을 건졌죠. 그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덕분에 잘 살게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박정희 시대의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발전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베트남에 파병간 장병들과 서독에 간 광부와 간호사들도 생각하시고요. 또한 박정희의 한일협정때문에 지금까지도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프레이저 보고서 다큐멘터리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본 이후에도 박정희 혼자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라면 우리나라가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80년대의 전두환도 마찬가지로 인정하실 수 있는지요.
    하나 덧붙이자면 앞의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 그리고 헌법이 있는 나라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문 및 간첩 조작 등으로 사형하는 등 탄압을 일삼고 이를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이 아니며, 박정희는 왕이 아닙니다.

    • 2013.01.06 21:03 address edit & del

      글쎄... 시대상을 전혀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역사의 평가는 그 시대로 돌아가서 해야하는것 그 말대로면 그 당시 박통사후 울면서 거리를 가득메우던 당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돌대가리구만

  5. 지나가는 객 2012.12.06 07:40 address edit & del reply

    소현맘님이 궁금하신 부분은 인터넷상에 도울의 이념의 종언을 보시면 될듯합니다. 함 찾아보세요.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6. 2012.12.06 23:47 address edit & del reply

    누가 잘햇꼬 누가 못했꼬 종북 친일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
    ==거짓된역사를 주입 하지말고 진실을 바로알고
    ==그리고 판단은 본인에게 맏끼자
    ==진실 진실이 알고 싶다

  7. 2012.12.06 23:50 address edit & del reply

    ==이승만을 보고난후 토 나올려 한다
    ==지난간 일이자나 그만 미화하고 그만치장하고
    ==있는그대로의 진실을 알고 싶다

  8. 2013.01.06 21:00 address edit & del reply

    글쎄...민주당이면 95-97프로 표주는 전라도 인간들이 여태 이나라를 얼마나 좀먹었나

    전라도 인간들은 광주사태도 민주화라고 우겨대지...

    근데...여기서 경부고속도로 없이 경제발전을 이룩할수 있다고 우기는새끼있나?

    박통아니었어도 포항제철이 세계에 우뚝서고 경부고속도로를 밀어부칠수 있었다고 하는 새끼있나?

    그리고 끝으로...박통시절에 우리가 필리핀보다 못살고 북한보다 세배 못살았던거 겪어봤나?

    기회주의자? 인간은 다 기회주의자다....김구도 그렇고 김대중이 노무현이도 그렇다

    김대중이는 충성혈서는 아니지만 전범 아키히로일왕의 죽음에 구십도로 조문했으며

    그렇게 욕하더니 노태우 돈20억 받았고...ㅋㅋㅋㅋ

    그럼 대체 누가 깨끗한가? 노무현이는 돈받아쳐먹고 죽고


    박통만큼 헌신적이었던 지도자는 없다...각자 집에 가봐라 아버지 존경 스러운가?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평생 실수도없었고 평생 어떤일에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살았나?

    • 정의 2013.01.07 00:09 address edit & del

      전형적인 물타기를 하시네요. 박정희가 잘못한 것이 있다. 그런데 노무현도 김대중도 잘못이 있으니 다를바 없다? 과오의 수준이 다르지요.게다가 지도자의 과오는 미래와 우리 역사를 위해 비판하고 정리해야할 부분이죠. 그런데 잘못 안 하는아버지 없으니 넘어 가라? 박정희가 언제부터 우리 아버지고 가족인가요? 돈 잘 벌게해줬으면 다다? 컨닝하고 사람패도 일등하는 엄석대면 되는지요. 매맞고 협박받는게 내자식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독재를 정당화해준 경제발전론의 허구는요?
      납치범에게 잡혀있던 인질이 납치범을 옹호하기도 한다는 스톡홀름증후군이 생각나는군요.

    • 됐고 2014.05.30 23:58 address edit & del

      박정희가 헌신적인 지도자였다고 칩시다. 뭐..까이꺼. 경제발전의 공도 다 그사람 것이라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생목숨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한 것이 정당한가요?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죄없는 사람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정당한가요?
      그런자를 독재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겁니까?

  9. 정의2 2013.01.07 18:00 address edit & del reply

    길은 바보임에 틀림없다.

  10. 이경우 2013.02.19 09:45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들 애들이야?

    박정희 신화격으로 포장한면도 있고 진실된면도 있고 그때 부모님 새대 개고생 해서 이만큼 온것도

    사실이야 항상 감사해 하면서 본인들 스스로 열심히 살면됭 사람은 기회주의자 맞거든

    지금 와서 니들 입장에서 박통까고 난리치고 옹호 해주고 해도 역사는 안변해

    그냥 이런 정보 알려주면 전부 다는 믿지말고 그럴수도 있다고만 생각해라 그게전부 진실은 아니더라

    여기보면 프레이져보고서는 미국애들 입장에서 자기들 시각으로 박통을 평가했지 그게진리는 아니라는거야

    모든게 진리인양 너무 매도 하지말고 똑같은 과오를 안당하고 싶으면 주댕이로 떠들지 말고

  11. 이경우 2013.02.19 09:54 address edit & del reply

    이번에는 경제 민주화 하는데 열좀 올려봐

    지금은 돈이 많으면 왕이야 상송공화국 현다이 다 박정희때 키워 줫잔어

    어서 거품 물고 좀 덤벼봐 경제민주화 한번 이루어 보자

    야이 잡것들아 한사람 까는것도 설득력 있게 까야지 2분법식으로 두 역대 대통령을 개양아치 건달에

    정체성도 없는 인간들로 만들어 버리냐 ㅎㅎ?

    건달 양아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세리들 민족역사거시기들은 까는 소리 하번도 안하네? ㅋㅋ

  12. 이경우 2013.02.19 10:04 address edit & del reply

    미국을 까는 소리를 하지는 못할망정 프레이져 보고서를 인용해서 이번에는 그게100% 진리인양

    이번에는 박정희를 또 개차반 인간으로 까네 ㅋㅋ

    야 이 잡것들아 맞는 것도 있지만 너무 2분법 아니냐?

    처음에 나도 여기서 자료를 접하면서 새로운 사실에 허탈한 마음도 적지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민족연구소 의도가 지금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위해서 너무 두 전직 대통령을 자기들 입장에서

    매도한것을 볼수 있습니다

  13. 이경우 2013.02.19 10:13 address edit & del reply

    바른 역사관 바로 알기..... 당현이 찬성입니다

    하지만 가령 50% 진실을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나머지 50% 또 거짓을 낳는 상황은 이해 할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자료가 저한테는 그렇게 보여 지네여

    권해요의 나래이션 적란하게 승만이형 입장에서 갱스터식으로 풀이 해서한 독백들

    오~ 아주 매도 하기 좋은 구사법이야

    여기 관리자나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똑같은 분류들임 ㅎㅎ

    • 이용욱 2013.03.23 03:47 address edit & del

      논리적인 글에는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셔야죠. 이거 참... 수준 떨어지네요.

  14. MCITP 2013.04.02 12:41 address edit & del reply

    보고서 충격과 경악을 금치못했습니다. 나 자신의 근대사에 대한 무지와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요. 만드신분들 감사합니다 널리 알려 모든 국민들이 보고 토론해야 할 소중한 다큐입니다. 저도 주변에 알리겠습니다

  15. ghd 2013.04.21 12:05 address edit & del reply

    차가운 나를 움직이는 너의 미소

  16. supra footwear 2013.04.26 13:49 address edit & del reply

    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17. 송은옥 2013.12.16 12:51 address edit & del reply

    다카키 딸년 언제 쫓겨나노?,,, 빨리 국민에 의해 쫓겨나야하는데..
    매국노들의 우두머리 닭까끼 딸년을 빨리 쫓아내고 친일매국노
    청산도 해야하는데...

    프레이즈 보고서 백년전쟁 2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18. 우승육 2013.12.21 23:40 address edit & del reply

    박정희는 스스로 다카키 마사오가 되어 제 조국을 배반하고, 해방 후에는 총구로 권력을 잡아 자랑스러운 4.19 혁명의 민주 이념을 짓밟았으며 , 굴욕적인 야합과 무자비한 탄압으로 과거사 청산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부정부패와 권모술수로 정치 기강을 흐트려놓았으며,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죽을 때까지 권력의 정점에 서고자 하였는 데다가, 민주주의를 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계엄과 긴급조치를 앞세워 무섭게 통제하고 억압하고 심지어 잡아서 잔인하게 고문하고 무참히 학살하기까지 했다. 박정희는 `국부'가 아닌 흉악무도한 죄인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공적으로 그의 죄악이 절대 덮어져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는 명백한 민족반역자이자 정권찬탈자이자 철혈독재자이자 연쇄살인마이다. 그의 가려진 죄악부터 낱낱이 드러내야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19. 박재흥입니다 2015.03.29 16:33 address edit & del reply

    진실을다른걸로포장해서 부정부패도정당화하는
    가슴아픈역사입니다 진실을바로알리는역사연구회가되길

꼭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_ 친일인명사전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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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가 와해된 지 60년,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18년 만인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은 국민이 만들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전 발간은 연구소의 18년을 한결같이 지켜주고 함께 해주신 7,000여 회원이, 2004년 국회(한나라당)의 사전편찬 기초조사예산 전액 삭감에 분노해 단 11일 만에 삭감액 5억 전부를 모아주신 3만 여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때 연구소는 그 감동을 고스란히 안고, 친일인명사전을 반드시 발간해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그 때의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전국민적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102년 국치일 8월 29일에 친일인명사전 앱을 출시했습니다. 

 

연구소는 그간 친일인명사전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정가 30만원인 고가의 사전이기에 여러 사람이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보급에 특히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사전 구입을 꺼려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앱은 친일인사 4,389명이 수록된 전3권 총 3,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사전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고가라서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웠고 공공도서관 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내 손안”에서 찾아보기 쉽게 함으로써 사전을 보다 간편하게 보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 손안의 친일인명사전!” 이제 스마트폰만 있으면 거리나 지하철, 그 어디서나 친일인명 검색이 가능하고, 인명 외에도 분야별·지역별·출생연대별 등 다양한 영역별 검색이 가능해 훨씬 편리하게 활용도 가능한 것이 큰 장점입니다.

 

연구소는 당초 무료이용을 검토했으나 개발비용과 종이책 보급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부득이 앱 가격을 1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수수료와 세금 등 경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건당 약 5천원)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할 예정이다.

 

시민역사관은, 일제 식민지배가 근대화의 기초라느니 5.16군사쿠데타가 근대화혁명이라느니 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과거 친일독재세력의 역사바꿔치기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지켜온 진실한 역사를 오롯이 담을 것입니다. 오로지 객관적인 사료에 근거해 엄정하게 기록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역사왜곡에 골몰하는 이들로부터 더욱 강고하게 역사정의를 지켜내 미래세대에 전달할 시민역사관 또한 반드시 세워내겠습니다.


 


- 현재 내려받기는 안드로이드폰(구글)에서만 가능하며, 애플용은 승인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9월말 출시됩니다.

- 포털(다음, 네이버) 검색창에서 "친일인명사전 앱"을 검색하셔도 쉽게 구매사이트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용 친일인명사전 앱 다운로드 바로가기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minjok.pjdic

      (안드로이드는 아이폰·아이패드를 제외하고 국내에 출시된 스마트폰·스마트기기 대부분이 해당됩니다.)


 

  좀 더 자세한 안내를 원하신다면 아래 바로가기를 클릭해 보세요~ 

     구매안내  /  사용설명서  /  문의 및 건의







      다둥이카드소지자 │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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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호환 2012.09.21 13:47 address edit & del reply

    라반특에서 앱 출시했다는 말 듣고 바로 설치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보지 못 해서. 앱에는. 사진자료가 전혀 없네요! 아쉽습니다. 한가지 더...탭에서도 화면이 작게 나와서 불편합니다. 수정이 가능하다면...부탁드려요

    • 오인가족세트 2012.09.21 14:2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감사합니다. 앱 용량 관계로 사진자료를 전혀 넣지 못했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화면 크기 자동변환 문제는 현재 수정개발 중이고, 완료되면 무료 업데이트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2. 이정민 2012.09.30 00:32 address edit & del reply

    친일인명사전 앱 출시를 축하드립니다.
    아이폰에서 어제 구입했습니다. 현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의 예산 삭감에 분노한 분들과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넘어갔지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딴나라당을 용서하지 않았을 국민들의 마음과 뜻을 같이하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늦은 일은 없죠~
    2012년에도 살아 숨쉬는 친일 찌끄러기들을 청산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애쓰셨습니다~~

  3. 버드나무 2012.10.01 01:18 address edit & del reply

    드디어 앱으로 나왔네요. 바로 구매했습니다.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할 앱이라고 생각합니다.

  4. NGC6543 2012.10.01 21: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구매했습니다. 늘 고생 많으십니다. 화이팅이에요!!!

  5. 오인가족세트 2012.10.05 16:3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응원하고 지켜봐주시는 모든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6. 2012.10.21 00:22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사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할수 있는 일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배워서 다음세대에 옳은 역사인식을 전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7. 독립투사 2012.12.03 06:42 address edit & del reply

    바로 구입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8. 하늘그림자 2013.01.11 14:00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어제 저녁 밤새 고민하다가 구입햇습니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소심한 저도 동참할 수 있겟죠?

  9. MCITP Certification 2013.04.02 12:46 address edit & del reply

    히 포샵질로 왜곡이라고 어떻게든 우기시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생각이 1차원 적이신것 같고.. 말해도 이해 못 할 거란 말씀도 이해가 되고..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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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민철

이명박 정권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정권 말기면 드러나는 비리가 이 정권이라고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그 비리의 결정판은 역시 세간에서 ‘상왕’으로 불리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씨의 구속이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망나니마냥 수행하던 검찰이 이제 그 칼끝을 돌려 현 권력 심장부를 깊숙하게 찌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 무상의 씁쓸함을 느끼기에 앞서 완장들의 본질을 보는 같아 인간에 대한 환멸까지 느낄 지경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차대조표는 곧 나올 것이다. 이념적인 선호에 따라 그 평가가 매우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낙제점을 면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그동안 한국 사회가 성취했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준이 다소 퇴보할 것이라고는 모두들 예상했다. 그러나 그 퇴보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방위적이었다. 몇 가지의 목록만 열거해 보자.

정부의 신뢰도를 잃게 만든 광우병 파동, 사회의 갈등을 힘으로만 밀어붙여 해결하려다 빚어낸 용산 참사와 이후의 무대책,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한 채 한반도의 긴장만 악화시킨 반북정책의 지속과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천안함 사건, 환경재앙에 가까운 4대강 사업의 강행, 역대 정권 중 ‘가장 깨끗한 정권’이라고 자부한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잇따른 비리와 구속, 특정 집단에 이익을 주기 위해 밀어붙인 종합편성채널(종편) 사태, 자유로운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남용한 미네르바 사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언론사 사장을 몰아낸 사건, 한국의 경제구조를 미국의 요구에 맞게 만들기 위한 한미FTA 체결 강행, 독재정권 하에서나 있었던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한 민간인 사찰, 그간의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마련한 교과개정의 전면 부정과 역사교과서의 수정 강요(이른바 금성교과서 사건), 편법으로 체결하려다 해프닝으로 끝난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 시도 등등.

목록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것을 수습하기도 전에 다른 더 큰 사건이 터져 앞의 문제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커녕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할 능력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왜 이런 현상들이 지속되고 있을까. 합리성의 결여와 비민주성 등 다양한 해석과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두 가지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정책의 공공성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공적 이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이 정책을 주도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공적 이익이라는 것도 실상은 사적 이익들간의 집단적 조정을 통해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 조정이 너무 편향적이고 일방적이어서 롤스의 지적처럼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 양산된 것이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오랫동안 많은 특권을 누려왔다. 그 특권이 너무 오래되고 일상화되어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겨 왔다. 다만 그 특권이 정치적 민주화로 인해 부분적으로 견제 받고 침해 받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정권 탈환에 절치부심했던 심리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정치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아니 독재정권 하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정치권력까지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민주화 이후 독재권력으로부터 통제당하던 상황이 사라지면서 재벌을 비롯한 특권세력의 발언권이 커져, 이제는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조정하는 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민주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집단이 특권세력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특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만들어놓은 규칙을 너무 쉽게 바꾼 것에 있다. 두 번째의 공통된 현상이면서 매우 위험한 현상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경기장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의 운영원리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결과를 양산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뜯어고친 사건이다.

이른바 뉴라이트들이 기존 역사교과서를 좌편향적이며 자학사관이라 비판하자, 이명박정권은 수년에 걸쳐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일을 강행했다. 어떤 의미에서 교과서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도덕감각과 표준적인 지적 수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정권에 따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인식이야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민주 사회에서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유아적 발상이거나 독재적 발상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을 태연하게 저지른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가 바뀐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교과서 사건의 심각성은 역사인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사회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를 흔들어놓은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수자원공사의 고소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위험하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를 수자원공사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일은 경기의 룰을 무시하는 폭력과 다름없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행위를 비판하는 일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어 비판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 만약, 이번 고소 사태가 성립한다면, 국가권력이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실행한 행위로 빚어진 결과에 대해 당사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반대논리도 성립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국가 행위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는 소송 사태가 벌어지게 되고, 행정부는 준비서면 쓰느라 마비상태에 이를 것이다. 다행히도 현실 세계는 정치적 행위와 사법적 행위라는 서로 다른 운영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수자원공사가 이를 무시하고 소송을 진행했다. 완장들의 충성 경쟁으로만 치부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더 걱정이다.

사회의 운영원리 자체를 훼손하거나 자신들 마음대로 운영하겠는 식의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지 않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여놓은 것이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만일 이게 아니라면 순전한 엄포용이다. 마치 미네르바 사건처럼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민주 사회가 지탱되는 기본원리가 무너졌다. (국내 유일 과거사 청산 관련 전문잡지 "역사와 책임" 3호 권두언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발간도서 자세히 보기 ▶ "히스토리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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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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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 근현대 자료 215점 기증


하나하나 포장해서 기증해 주신 자료 215점



심정섭 회원이 한점 한점 포장해서 기증해 주신 자료 ⓒ 민족문제연구소



심정섭 회원이 지난 5월에 이어 또 근현대사 관련 자료를 연구소에 기증 해 주셨습니다. 자료는 총 215점을 헤아립니다. 한점 한점 꼼꼼하게 직접 포장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기증해주신 자료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나주지역에서 발행된 영수증, 지세명기대장각종 서신, 간찰, 1940~1960년대 상장, 근하신년 엽서, 명함, 금융자료, 지방행정자료 등 입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나눈 편지



경성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 ⓒ 민족문제연구소



기증 해 주신 자료 가운데 몇 가지  재미있는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경성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장 눈에 띕니다. 편지봉투에 적혀있는 아버지는 박진옥(朴陣玉)씨 입니다. 조선총독부 직원록을 확인 해 보니 1940년에 해남군 삼산면장(三山面長)을 지내신 분 이네요.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볼 수 있습니다.


"곧 있으면 신체검사를 한다"

"식대와 하복비를 보내달라"

"매월 근로봉사에 출석하고 있다"

"졸업시기까지 학도근로동원을 나가고 동급생들은 3일간 연성을 받는다"

"졸업식은 320일에 시행한다"

"고무신을 잃어버렸다"


고무신, 졸업식과 같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학도근로동원, 연성, 근로봉사와 같은 내용은 전시체제기의 학교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보여주는 내용이 많습니다.


1944년 원동무역 증권



심정섭회원이 기증해 주신 서류 중에는 원동무역주식회사의 증권도 있습니다. 원동무역주식회사는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무역회사였습니다.



마산에서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주식회사 원동무역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지역유지인 옥기환 씨와 애국지사 명도석 선생이 설립한 이 회사의 이익금의 일부는 백산 안희재 선생과 상해 임시정부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전시 경제통제 강화로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지금도 남성동 91-1번지에는 원동무역주식회사 터가 남아있습니다. ⓒ 국내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귀한 자료기증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5월 자료기증에 대한 감사패 증정 박한용 연구실장님과 함께


기증해 주신 자료는 연구소에서 정리, 분류 후에 자료실 전시, 기획전시 등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심정섭 회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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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6) 죄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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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죄인의 말'




어린이의 참 삶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이오덕선생님 ⓒ보리출판



민주교육운동, 우리말살리기와 글쓰기교육으로 잘 알려진 고 이오덕 선생님은 일제시기부터 교사였다고 합니다.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요.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이 갓 교사가 된1944년은 한창 전쟁의 광기가 극을 달하고 있던 때 였습니다. 그 광기는 교육현장에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1982년, 이오덕선생님은 한편의 글을 씁니다. 일제시기, 교사가 되었지만 자신의 위치는 아이들을 군대식으로 훈련시켰던 식민지 교육의 담당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현장의 모습들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교육현장에 관한 반성의 글이 바로 '죄인의 말'이었습니다. 


몇 구절 옮겨 볼까요?




'죄인의 말'은 수필집 "거꾸로사는 재미"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산처럼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교단에서 무엇을 하였던가.  내가 여기서 할 말이 있다면 죄 지은 얘기를 털어놓는 것 뿐이다. 

-일제의 살벌한 군대식 교육은 체질적으로 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였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참교육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만한 나대로의 교육관이나 교육이론이 있을 수 없었다.

-1년 남짓한 그동안에 나는 우리 민족의 아이들을 일본 제국의 아이들로 훈련하는 일에 충실히 협력하였던 것이다. 

-해방이 되어 잠시 꿈같은 날을 보냈지만, 일제의 망령은 모든 학교 교육에서 조금씩 되살아 났다. 아동 중심이니, 민주교육이니 하는 것은 입으로만 지껄이는 말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교육행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교육을 그 세부 실천에 이르기까지 간섭함으로써, 학교교육은 온전히 자주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 교사들은 다만 명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이행하는 기계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또한 교사의 지시 명령에만 움직이는 기계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죄인의 말'에서 이오덕 선생님은 자신을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훈련시킨 교관으로, 돈을 징수하는 세금쟁이로, 아이들을 획일화 한 폭군으로, 비참한 경쟁을 강요한 깡패로, 선거운동을 한 위선자로 묘사하며 반성합니다. 이오덕선생님이 그 후 보여준 모습은 바로 이 지극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오덕 선생님 개인만 죄인이었을까요? 그럴리가요. 수많은 교사들이 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일본제국이 있었고, 독재정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이들은 수많은 이오덕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학교, 그 잔혹한 풍경



부산에서 전시했던 "식민의 유산 유신의 그늘" 전 ⓒ민족문제연구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을 전후해서 학교는 전쟁에 동원할 소국민을 양성하는 현장이 되어갔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조선어 과목은 아예 없어졌고 일본어 읽기와 쓰기는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전시동원을 위한 제식훈련, 체조 군가풍의 국민가요. 전차와 글라이더 만들기가 교과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41년 일제는 소학교의 명칭을 국민학교로 고쳤습니다. 국민학교령이 칙령으로 공포된 것이었지요. 또한 조선총독부는 민족교육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본격적인 황국신민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국민학교로 바뀐 것이 황국신민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국민학교령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목적 부터가 달랐습니다. 국민학교령의 목적은 '국민의 기초적 연성을 목적으로 한다'였습니다. 연성은 일종의 군사용어입니다. 연성도장, 연성도장과 같이 심신과 기예를 단련한다는 말이지요. 한만디로 국민학교는 황국신민을 단련시키는 연성도장이었습니다. 


국민학교령은 칙령 제 148호로 쇼와16년(1941년) 반포되었습니다. ⓒ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국민학교령의 본문입니다. 기초적 연성이라는 표현이 나와있습니다. ⓒ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군국주의 체제로 들어서면서 일본은 기존의 영국, 프랑스를 배척하고 나치의 교육법을 반영합니다. 일본의 은행법이 히틀러의 도이치 은행법을 도입한 것 처럼 국민학교는 나치가 만든 폴크스 슐레를 그대로 직역한 말입니다. 국민학교 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신, 국어, 국사 지리 네 과목은 국민과(國民科)라고 불렸습니다. 이 외에도 국민복, 국민가요.. 등등 국민은 어느새 조선 땅에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와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후 국민학교라는 말을 바로 버렸습니다. 한국은 어땠을까요? 일본으로 부터 해방이 됬지만 우리는 '국민학교'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썼습니다. 결국 김영삼정부가 들어서고나서야 지금의 '초등학교'로 바뀌었지요. 



일제시기와 다르지 않은 박정희시대 학교의 모습


앞에 국민학교 명칭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이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 따마나 해방이 되었어도 학교의 모습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제의 망령은 학교 교육에서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1968년 12월 박정희가 선포한 국민교육헌장


요즘도 외우라면 외우실 분들 많을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예전에 익숙하게 보던 풍경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국민학교에서 교육칙어 대신 국민교육헌장을, 황국신민서사 대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애국조회때마다 낭독해야 했습니다. 


머리에 고속도로가 난 학생들, 과연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이기만 할까요?


머릿 속 뿐만이 아닌 겉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에게 허용된 것은  '스포츠형'머리, 또는 단발머리에 교복, 교모, 그리고 교련복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학생답지 않은' 모습들이 보이면 가차없었습니다. 선도부가 교문앞을 지키고 있는 등교길 풍경, 바리깡이나 가위를 든 학생주임 선생님이 머리에 '경부고속도로'를 내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그것 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요. 


가혹한 체벌과 침묵의 강요는 학생들을 그저 복종하는 인간으로 길러냈습니다. 



물론 일제시기와 70년대 그리고 지금 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힘들 겁니다. 사회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민주화 과정이 있었지요. 하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고도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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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당신의 이름으로 아이들, 지역주민, 일본 조선학교에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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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두 번의 성공적 마감 !

 

우리 연구소와 아름다운재단이 소셜펀딩 개미스폰서를 통해 공동으로 진행한 <정직한 역사를 나눕니다_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는 지난 2월 28일~4월 1일 사이 모두 2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총 1천만 원이 넘는 모금이 이뤄졌고, 전국 각지 44곳의 대안학교, 마을도서관, 시민단체 등에 친일인명사전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학교에 전할 6권의 사전은 ‘조선학교돕기 몽당연필’에서 오는 6월 22일 개최한 도쿄 콘서트 즈음에 해당 조선학교로 전달할 예정이라 합니다.

 

 

두번째 <친일인명사전 기부프로젝트> 사전 기증처 20곳

 

 

 

소셜펀딩, 공감의 힘과 가능성을 확인

 

연구소는 소셜펀딩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친일인명사전을 보급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사전이 발간된 지 만 2년이 지난 뒤라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단 3일 만에 목표모금액을 초과달성하고, 연이은 2차 프로젝트 역시 20여일 만에 성공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친일인명사전의 사회적·교육적 가치를 지지하고 역사정의실현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신 전체 인원은 292명이고, 이 중 두 번의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한 분도 5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같은 주소의 참여자가 꽤 있어 확인해 본 결과, 한 가족이 각각의 이름으로 참여경우였습니다. 대구의 어느 노신사께서는 연구소로 전화해 인터넷으로 모금을 할 수 없으니 방법을 가르쳐 달라했고, 그 인연이 연구소 회원가입으로까지 이어질 듯합니다. “죽기 전에 대구가 바뀌는 걸 보고 싶다”는 노신사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이을 또 하나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2009년 발간한 이래 끊임없는 소송에 단 한 번도 패소하지 않은 친일인명사전의 힘은 철저히 자료와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제 식민지 지배의 실상과 해방 후 한일과거사 청산운동의 역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려내겠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 가득 안고 시민여러분이 보여주실 또 한 번의 기적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습니다.

아프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우리의 역사를 정직하게 보여줄 시민역사관에도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다둥이카드소지자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
- 세상도, 사람도 늘 변화 · 발전함을 믿는다.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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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병기 2012.07.17 09:43 address edit & del reply

    늦었지만 친일청산을 해야 합니다. 우리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니리위해 목숩 받치신 분들의 명에를 찾아줘야 하며 군자금이나 일제와 투쟁하시다 체포 구금 등으로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 강제노역으로 옥사하신 명단을 발굴하고 일제당시 제정호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자료발굴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특히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에 대한 자료발굴과 역사관 건립을 서둘러야 합니다.

    마포 경성형무소는 정말 일제가 식민지통치의 대명사로 악명높던 형무소로 붉은 벽돌을 생산하는 데 강제노역을 시켰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생존자가 많지않다고 합니다. 이옷에서 옥사하신 수형자들을 밝혀내고 자료 발굴을 서둘러야 합니다.

  2. 정병기 2012.07.17 09:46 address edit & del reply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애국선열의 민족과 나라위해 걱정하는 호령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이다

    오는 8월15일은 제67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이날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어 가면서까지 만세를 부르고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강토 그 어느곳인들 독립을 위해 피 흘렸던 역사가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는 이 장소만큼은 그 의미를 다시 새겨야만 하는 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역사의 현장으로 독립투사들에게 악명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 보기 힘들정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지고 있지만 바로 이곳이 독립에 몸바쳤던 수 많은 이들의 피울음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방법원과 검찰청 자리잡은 '경성형무소' 표지석만이 당시 형무소였다는 사실 알려줘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 붉은 벽돌 생산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병사, 그래도 독립의지 지켜내

    마포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 자리에는 현재는 서울서부 지방법원ㆍ검찰청이 들어서 있지만, 당초 한일병합 조약 체결전인 1908년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던 '경성감옥'이 수용공간이 적어지자 이곳 마포구 공덕동에 지은 후 1923년부터는 '경성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었다.

    경성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의 숙부인 김형권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 저의 증조부 또한 이곳에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지난 1928년 5월 20일 이었다. 이런 중요한 경성형무소를 자취도 없게 철거한 후 공공기관을 건축하였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야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 시킬 수 있까? 바로 이곳 경성형무소 자리 옆에라도 '경성형무소 식민지 역사관'을 건립함으로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떤가 한다. 비록 민족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일정 규모라도 복원해 전시함으로서 이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됨으로서 현재 표지석 하나 달랑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산 체험의 장이 되어 다시는 외세에 짓밟히거나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게끔 교훈 삼는 역사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들은 과거의 진실한 역사를 통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게 되고 애국정신의 근본이 될 것이라 점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잊혀지거나 역사속에 묻혀가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가 없게끔 정부는 자료발굴과 그 명예를 찾아 주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는가 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재를 위해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반드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국가가 해야 할일은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한다는 교훈을 남기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광복 66주년을 맞은 오늘, 국가보훈과 나라사랑에 대한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재인식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 진다는 풍토가 확고하게 정착되기를 바라며 진정한 보훈은 말이나 구호보다 실천이 우선되고 나라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이나 호국영령이 제대로 대우받고 추앙받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글쓴이/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의 증손자. 대구연합일보 논설위원>

  3. 정병기 2012.07.17 09:52 address edit & del reply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선생에 대한 사연입니다.

    증손자 증조부 독립운동 명예 찾으려 지난 36년 고군분투
    정용선 증조부께서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모급운동을 하시다 체로 마포 공덕리 105번지 악명높던 일제식민지통치의 상징인 경성형무소에서 모진 탄압과 고문 그리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시달리시다 41세로 1928.5.20.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작도 옥시기록 담긴 제정호적 제출해도 거증자료 부족리라며 미루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사연을 꼭 대통령님과 청와대 관계자분들이 보시고 증손자의 바램이 이루어지고 자손된 도리를 할수 잇게 도움을 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저의 애절하고 절박한 사연에 대하여 알려드리오니 한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증조부를 비롯하여 4대가 국가를 위해 희생했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 및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41세(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제정호적에 일제가 기록하였습니다.)에 젊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보시지 못하고 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체 잊혀진 명예가 되어버렸답니다.

    저는 증손자로서 지난 30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발굴에 나섰지만 많은 자료가 소실되거나 정부의 관리부실 그리고 관보를 지시하여 소각되었답니다. 이런 사연에 대하여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400여장의 증거자료와 소장을 내어 억울한 일을 해결하여 달라고 행정심판을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했답니다. 한번 꼭 관심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행정심판 접수일/2009.8.28. 접수번호 행심-2940 소장 포함 400페이지 분량/동영상자료(kbs1 tv 시청자칼럼)포함

    존경하는 김 양 국가보훈처장님께

    국가보훈처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36년이 넘게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젊음을 받치며 투쟁하시다 체포되어 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 경성형무소에서 병사하신 정용선 선생인 증조부님에 대한 자료발굴 노력을 해왔으며 독립유공자 신청을 해 보았지만 거증자료 미비로 미루어온지 벌써 20여년이 다가오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며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합뉴스, 매일경제신문, 서울신문, 브레이크뉴스 등에 보도되고 심지어는 kbs1 시청자칼럼에 출연하여 호소하여 보았지만 아직도 잊혀진 명예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워 눈물로 세우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악명높던 경성형무소에 관련한 자료가 매우 부족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관련자료 찾기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저는 이번에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이 억울한 사연을 알려 행정처분을 받아 보기로 결심하고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제출 접수하였답니다.

    [kbs1 tv 시청자칼럼 출연]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억울한 사연 행정심판청구
    작성일: 2009/08/29 AM 04:06
    작성자: 정병기(jbg1219)

    [kbs1 tv]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의 노력 /출연 정병기
    방송일: 20080814 /동영상/억울한 사연 국가보훈처 상대 행정심판 청구

    우리들세상/시청자칼럼/다시보기 가능합니다.(출연자/정병기) highSpeedVod(1539806);
    시청자칼럼.우리사는세상에서 그 결과를 지켜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억울한 세상이 없는 살기좋은 대한민국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거슬 버리고 조국에 받치신 애국선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가져야 하며, 또 그들의 후손드리 잊혀진 선조의 명예를 찾을수 있게 협조하고 그렇게 돼야합니다.

    서울에 사는 정병기씨는 정씨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시다 옥사하셨지만 근거자료가 부족해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근거를 찾기 위해 30년째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정씨는 증조부의 독립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증빙자료 발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한다.

    시청자칼럼에 출연했으나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아 결과를 얻지 못한 억울한 사연을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습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며 답답하답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문서가 없어지고 소각된 사유는 정부의 귀책사유인데도 인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은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증조부 독립운동 자료 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국가보훈처가 인정하지않아 억울한 사연을 행정심판청구를 통하여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국무총리실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소장을 포함한 서류 400여장 분량에 관련 동영상 자료(2008.8.14. kbs1 시청자칼럼) 소장에서 항일운동으로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던 중 병사로 독립유공자를 인정하여 잊혀진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이제 국가보훈처인 피청구인과 청구인간에 열띤 공방이 전개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정부의 독립운동 관련 서류가 영구보존문서임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귀책사유가 도마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방송관계자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의 많은 협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자료 찾기가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려워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그 후손들이 대우받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지난 30년이상을 증조부의 잊혀진 명예를 바로 세우고자 한 노력이 헛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국가보훈처장님

    후손들이 선조의 훌륭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기가 독립운동 하기 보다 어려운 현실이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선조의 잊혀진 명예를 찾을수 있게 한번 더 검토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경성형무소에서 사만하셨어도 시신도 인도받지 못한 채 증조할머니 묘소에 비석만 세워놓아 하루속히 잊혀진 명예를 찾아 국립묘지에 가묘라도 모셔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마땅히 후손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36년세월이 증조부님의 명에를 찾는데 기여하게 된다면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집안은 증조모님 독립운동으로 풍비박산이 되고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박해로 집안이 흩어지고 머슴살이 전전하거나 처거살이로 살아와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부친도 배움이 없는 (문맹인)무학이시고 저역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이며 부친도 이번에 50년만에 국가유공자 신체검사를 받고 잇으며 저의 아들도 의경으로 입대하여 평택집회현장에서 진압근무 중 다쳐 제대를 하였답니다. 저말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국가에 충성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국민이랍니다.

    다시한번 정용선 선생에 대하여 철저한 조사와 검토가 이루어져 잊혀진 명에가 반드시 찾아질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미발굴독립유공자 정용선의 증손자 정병기



    덧글/일제겅점기 식민지통치의 사징이였던 악명 높던 마포공덕리 경성형무소 역사적 자료발굴과 역사관 건립을 정부가 앞장서 서둘러야 합니다.이곳이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이며 역사의 현장입니다.


  4. 정병기 2012.07.17 09:55 address edit & del reply

    광복절 맞아 애국선열 숭고한 희생정신 가슴에 되새겨야

    진정한 민족의 독립과 광복은 아직도 더 노력해야

    나라위해 목숨 받치고도 버림받고 잊혀진 애국으로 역사 속에 묻혀 안타까워
    미발굴독립운동가 후손들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 처가살이 전전, 고생 달고 살아,

    광복 제67주년, 버림받고 잃어버린 애국이 되지 않게 정부가 자료 발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아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슬픈 사연들이 많다. 미발굴독립유공자 발굴과 해결문제가 바로 정부의 더 미룰 수 없는 현안이자 당면 과제라고 본다. 후손들이 선조 독립운동 자료 찾아 36년 고군분투 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과 자료의 부실 관리부족과 역사인식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광복 67주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갔지만 당시 나라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옥사하신 무명의 애국투사와 독립투사들의 애국은 빛이 바래거나 잃어버린 애국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가고 있어 유감스럽고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분이다, 독립운동가 후손 정용선선생의 증손자 36년째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 경성형무소 원래자리 공덕동 서부법원자리)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6년째 외롭고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의 후손인 증손자가 있다. 나는 ‘광복 67주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만사를 제쳐놓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단서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부양할 가족도 있고 몸도 성치 않지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부와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다.

    나는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증조부님이 자랑스러운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마음 뿌듯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해 왔고 그것 이사실이다. 옥사시록이 제정호적에 확연하게 나와 있다. 돌아가신 고모나 큰댁이 증조부님 때문에 온&#49346;수난과 고초를 겪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형무소장이 보낸 옥사했다는 사실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 그 증거는 지금도 제정호적에 자세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도 못 믿는다면 그 무엇을 믿겠는가?

    일제강점기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라고 본다. 그 사실은 바로 일제가 형무소에서 온갖 탄압과 고문 그리고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옥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족보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개가한 인동 장씨집안 호적(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2리)을 보면 그 내용을 잘 알 수 있는데도 정부는 두 손 놓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당시 수형당한 경성형무소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이는 후손들의 귀책사유가 아니라 정부문서를 관리하는 정부의 책임이라고 본다. 국가보훈처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 청와대에까지 서류를 안 내밀어 본 곳이 없지만 ‘객관적인 입증자료인 거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증손자인 본인이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정권인 전두환 군사정권이 관보로 지시(형의실효에 관한 법률)“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관련 자료는 반영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서류임에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지난정부의 실책이라고 본다. 그래도 개인이 후손들이 책임지고 찾아와야 한단 말인가?

    조부이신 정덕수 할아버지는 인접 금광(풍정광업소)에서 일하다 폐병으로 숨졌다. 증손자인 자신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0년 강도 살인범을 붙잡다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유증에 간경화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겪은 고통과 수모를 어찌 말이나 글로 다할 수 있겠는가? 본인은“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자료를 찾는 일을 후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부가 야속하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정부도 이제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 후손들 가슴에 못 박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 한을 풀어 주어야 할 것이며, 일제강점기 관련 당시 제정호적도 중요하게 다루고 살펴 독립유공이 인정되는 분들에 대해서는 명예를 찾아주고 그 후손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국가가 부강해지고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부름 앞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애국선열과 독립투사 미발굴독립유공자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나라위해 피 흘린 목숨 받친 결과가 결코 변할 수 없으며 역사적 가치가 혼동되거나 평가절하 돼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숭고한 정신을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모진고문과 강제노역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한 많은 생을 마친 악명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을 세워 민족의 치욕스러운 식민지 역사라도 제대로 보존하고 가르쳐 후손들에게 일제의 만행과 탄압사실을 알려야 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게 될 것이다. 지난 과거의 잘못된 사실을 알려야 살아있는 올바른 역사교육이고 민족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덮고 가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나라위해 목숨 받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은 정부가 끝까지 책임을 지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하며 예우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본다. 다시한번 정부는 말이나 구호보다 독립을 위해 목숨 받치신 옥사자에 대한 철저한 자료검증과 발굴을 통하여 그 명예를 찾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아울러 바란다. 글쓴이/정병기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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