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7.16 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 독일과 일본의 전후 과거사 청산 그리고 박정희에 대해 말하다 (1)
  2. 2012.01.30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1)
  3. 2012.01.11 [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1)

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 독일과 일본의 전후 과거사 청산 그리고 박정희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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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국립묘원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사상의 은사, 故 리영희 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비문에는 "이성의 붓으로 진실을 밝힌 겨레의 스승,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올해 광주 참배 때,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리영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함께 그분의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습니다. 여전히 선생이 우리와 더불어 지내주시길 바라는 욕심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생전의 선생은 연구소에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고 특히 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각별한 지우(友)의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리영희 선생의 글에 많은 내적 감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특히 리영희 선생의 자전적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구소 소장님이 함께 한 "대화"(한길사 2006, 부제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라는 책은 제가 '강력 추천'하는 것이 아닌 '강제 추천'을 하는 도서 목록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리영희 선생의 저작 중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글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전후 독일과 일본의 상반된 태도에 대해 언급하신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선생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1992년 연구소 개소 1주년(당시 반민족문제연구소)을 맞아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에서 선생이 작성한 토론문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1985년 5월 8일 독일패망 40년 기념일에 폰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연설로 세계적인 이목을 받습니다. 독일 폰바이체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기념사를 통해 과거 독일이 저질렀던 만행, 치부를 민족의 이름으로 반성하고 학상당한 500만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여기에는 유태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노동운동 지도자, 리버럴리스트, 심지어 점령지의 무명인들과 짚시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한 짓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과거의 선택에 따라 오늘이 있에 우리들은 마땅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범죄적 역사를 잊어 버리거나 보호하려는 민족은 영구히 장래를 잃어버리는 민족이다"

이날 연설이 세계 지식인들을 숙연하게 만든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결코 전장에서 희생된 독일 병사들을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기 위하여' 죽어간 존재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그는 '자국을 위해 죽어간 자'를 가장 먼저 애도해야 할 대상을 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패전 40년을 기념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과거와의 단절은 고사하고 연속성을 찾는 위험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의 나카소네 수상은 유명한 전후청산론을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가국민은 오욕을 버리고 영광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난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과거는 청산되었습니다."

그의 발언을 정리하자면, 일본으로서는 전쟁에 대해서 지금까지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고 행동에 제약받을 것도 없으며 대의명분이나 도덕적으로도 가책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두 민족의 존재양식과 도덕적 심정의 너무도 극단적인 차이에서 우리는 전후처리의 이중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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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폰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의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한 짓을 모른 체 할 수 없다. 과거의 선택에 따라 오늘이 있에 우리들은 마땅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범죄적 역사를 잊어 버리거나 보호하려는 민족은 영구히 장래를 잃어버리는 민족이다"라는 발언, 여전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위의 발언은 독일에 비교하여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문구인데요....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과연 일본 만의 문제만은 아닌 듯습니다. '과거사'하면 주로 일본의 만행을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이승만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엄혹한 우리 현대사 속에도 청산해야 할 역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깐요.

 과거사에 대해 무책임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 그리고 그런 일본을 닮은 '우리안의 일본'을 생각하면 참으로 섬뜩한 마음까지 듭니다. 특히 최근 '5.16이 구국의 혁명'' 임을 규정화 하려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도사'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일찌기 리영희 선생은 '원조 뼛속까지 친일, 친미'였던 박정희 정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연구소가 주최한 심포지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대 문제나 과거의 문제에 대해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투쟁할 상대는 일본이기에 앞서서 바로 이와같은 권리를 팔아먹은 박정희, 그리고 친일파와 역대정권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집행한 그 개인에 대해서 일차적인 공격이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개인이나 언론의 공식적인 발언은 찾아 볼 수 없고,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발언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는 친일청산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성의 기미가 없는 일본에 날개를 달아준 '반민족'의 시대였습니다. 친일경력도 반민족적 문제이거니와 '한일회담'을 강행한 그의 조처는 우리민족사에 남긴 너무도 뼈아픈 조처였습니다. 나아가 박정희는 '일제가 남긴 폭력성'을 더욱 구조화시켜 나라 전체를 병영화시켰고 나아가 '거대한 감옥'을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보수수구세력과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씨는 이 시대의 모든 치부는 외면한 채  '조국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미화하면서 '박정희'를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라고 합니다. 각종 동상이 만들어지고 전문 대학원도 생겼으며 기념관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5.16혁명기념관도 조만간 개관할 기세입니다. 사실 이러한 우려는 우려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작년 '새마을 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 불행한 사태는 어쩌면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관련 단체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 졌습니다. 물론 꼼꼼하신 각하와 박근혜씨가 있기에 이들 단체에 대한 세금지원은 필수이구요.  제가 사는 지역에도 이들의 활동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군사반란자들마저 이러한 상황에 편승하여 활개하고 있는 입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양심'에는 거리낄게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공동체를 위한 양심에는 긴 털이 나있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군화발이면 모든게 해결되었던, 권력욕이 강한  특정 지역사람들이 모여 일을 도모하면 성공하던, 반공이다 빨갱이를 부르짖으면 모든것이 허용되었던, 친일친미만이 민족의 살길이라 외치면 대접받았던 시절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건 아닐까요? 

이승만 독재, 박정희 친일독재, 군부반란자에 대한 처벌...등등 우리는 청산할 게 너무 많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정권을 바꾸지 못한다면.....생각만 해도 아찔한 지경입니다.

"학생들에게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응원할게요!"

'김한별'이라는 중고생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남긴 응원글인데요..김한별 학생 역시  우리 사회가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불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하고 민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에 불끈 주먹을 쥐어봅니다.

끝으로 리영희 선생의 한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2003년 3월 가카의 절친(?) 부시는 결국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을 치밀하게 밝힌 '반전평화주의자' 였던 선생은 마비가 시작된 손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작성하였는데요...비록 글씨는 삐뚤하지만 그 올곧은 정신만큼은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겠지요?  그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부족한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래의 "추천"을 꾹 눌러주신다면 더욱 감사!!!

 否氏狂亂不知其終  (부시의 광란이 끝을 알 수 없으니)

 人類自存直面危亂  (인류자존이 위란에 직면했도다)

 錦繡疆土長變火海  (금수강토가 장차 불바다로 변할지니)

 韓民當呼反戰平和 (한민족은 마땅히 반전평화 외칠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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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②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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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기까지

▲ 연구소 앞에서 진행된 수구단체의 시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지 한 달여 뒤인 2009년 12월 8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국자유연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수구단체 회원 150여 명은 1시간 가량 민족문제연구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폐기', '민족문제연구소 해체'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의 연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둘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바로 20일 뒤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친일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국가운영에서 배제하고 일제시기의 기득권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더 이상 민족적 과제가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 행위'로 간주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일청산을 외치는 일은 가시밭길을 넘어 목숨을 거는 위험천만한 체제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직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 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사지경에 빠진 고난 속에서도 친일파 연구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범위를 문학에서 벗어나 전 친일파로 넓혀서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조정래, <황홀한 글 감옥> 중에서)

▲ 임종국 선생의 친일인명카드. 연구소는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다. 2만여 장이 넘는 선생의 친일인명카드가 있었기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가능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2003년 12월 30일,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조정래 선생이 말한 또 하나의 '모델 케이스'였습니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사청산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리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깨어 있었고 양심들은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산 삭감 9일 만에 통쾌한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첫날인 2004년 1월 8일. 이날은 꼭 55년 전 반민특위가 당시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친일파 청산 작업에 착수한 날이었습니다.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5년 10개월 만인 2009년 11월 8일, 숱한 방해와 위협을 뚫고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무게 7.42㎏의 <친일인명사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조이며, 애태우고 때론 분노했던가요.

금서 아닌 금서 <친일인명사전>... 공공도서관 보급률 32%

▲ 누가 친일인명사전을 막고 있는가? 반민특위 와해 60년만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과 교육적 가치를 외면한 일부 학교들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의 학교 도서관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사전을 발간하고 2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얼마만큼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까요. 2012년 1월 현재, 약 4700여 질(기증 포함)이 보급되었습니다. 출판계가 불황인 점, 전문서적인 점, 30만 원으로 가격이 높다는 점, 상업 광고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친일인명사전>은 보급 면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는 것이 출판계의 평입니다. 특히 발간 초기 온라인 모임인 '세계아고라정의포럼'과 '대한불교청년회'의 보급운동이 눈에 띕니다.

'세계아고라정의포럼'은 2010년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240만 원을 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회원들은 이 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 노들장애인야학, 지리산고등학교, 설천재가노인복지센터 등 국내 10곳과 한국학연구소가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미국 컬럼비아대학 등 7개 외국 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기증된 사전에는 "친일의 역사는 결코 잊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유산이기에 이 책을 나눕니다"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습니다. 대한불교청년회는 1920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든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시작한 단체로 2010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사전 보급 운동을 1년 내내 벌여나갔습니다.

그러나 사전 발간을 염원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기에 사전의 보급은 아직도 더디기만 합니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전국 687개 도서관에 223질 밖에 보급되지 않아 보급률이 32% 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어느 공공도서관 관계자는 왜 사전이 없는지를 묻는 <경향신문> 기자에게 "적은 예산으로 구입하기에는 <친일인명사전>이 너무 고가인 데다 희망도서신청도 없어 구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전이 비싸기 때문에 더더욱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을 위해 사전을 비치해 놓아야 하는데 이토록 소극적이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도서관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보통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 장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고가의 사전류보다는 1만~2만 원 대의 단행본을 주로 구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민 다수가 지속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구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전 구입 거부하는 학교들... '친일인명사전'을 허하라

사전 보급이 더딘 이유 중에는 일선 초중고 학교의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다음 사례들은 학교 현장에서 사전 보급 자체가 차단되고 있는 사실을 폭로한 <오마이뉴스> 김행수 시민기자의 2010년 9월 9일자 기사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교장샘, <친일인명사전> 구입하지 말라고요?)

 

▲ 이상진 전 서울교육위원이 "친일인명사전 현황 보고하라"고 지시했던 공문. 이상진 전 교육위원은 전교조를 친북좌파로 몰아붙이고 이적단체로 검찰에 고발까지 한 '반국가교육척결 국민연합' 상임대표로 한국국공사립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져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① 서울 강서구 ㄷ고 ㅈ교사는 한일병탄 100년을 맞아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신청하였다. 얼마 뒤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친일인명사전>을 찾을 수가 없어 확인해 보니 교장 선생님이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을 문제 삼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 교장 선생님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따져 물으니 "(친일파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고, 역사적 판단이 서로 달라 아직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학생들이 그런 책을 보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② 사립학교인 종로구 ㅅ고 역사 교사인 ㄱ씨는 2009년 11월 수업 참고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신청했는데 5개월이 지난 2010년 4월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서 교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도서선정위원회의 구입 결의가 없어 살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③ 2010년 4월 서울교육청은 서울 소재 모든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 여부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표적인 반전교조 인사로 알려진 당시 교육위원 이상진씨(전 한국 국공사립 초중고 교장협의회장)가 이를 문제 삼으며 현황 파악에 나선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공문을 '<친일인명사전>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이 책의 구입을 주저하였다. 실제로 ㄷ고의 사서 교사는 <친일인명사전> 구입 여부를 묻는 교사에게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다"며 "학교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도서관에는 지금도 <친일인명사전>이 없다.

처음 이 공문의 존재를 제보한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오히려 이 공문을 보고 더욱 친일인명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에 사전 구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 또는 상급 관청의 지시와 감독으로 인해 사전이 비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사립학교들에서는 '우리 학교 설립자와 관련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학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구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교사들의 학사참여가 활발한 것으로 평가되는 광주광역시 초중고 학교의 경우를 봐도, 아직도 <친일인명사전>이 학교 담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8월 29일 광주광역시의회 김선호 교육의원은 본회의 5분 발언을 통해 광주시내 일선 학교의 <친일인명사전> 비치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시내 147개 초등학교는 단 1곳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중학교는 86개교 중 24개교(27.91%), 고등학교는 66개교 중 28개 학교(42.42%)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의원은 "이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이 그 책 구석구석에 알알이 박혀 있는데도 공공기관은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듯 <친일인명사전>의 국내 보급이 저조한 가운데, 이 사전의 보급을 꺼려할 만한 일본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활기를 띤다고 합니다. 국내 도서의 해외 유통을 주로 하는 어느 업체 대표는 일본의 각 대학으로 <친일인명사전>이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제 집에서 구박받는 자식, 집 밖에서 대접받는 형국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금서 아닌 금서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언젠가는 전국 방방곡곡 모든 도서관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직접 책장을 넘기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역사가 있으니까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판매 수익금 전부를 시민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 과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학문적 기록이라면 시민역사관은 이를 풀어내 생생한 자료로 진실한 역사를 증거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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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pra sneakers 2013.04.25 04:04 address edit & del reply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되지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wakingphoto.tistory.com/6 新建文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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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캠페인 8주년 특별기고 ①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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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네티즌들이 직접 도와준 지 8년이 되어갑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그 때 성금을 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를 시민역사관 블로그에도 옮겨봅니다.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에는 모두 7억 여 원이 모금됐다

2004년 초, 시민운동사에 길이 남을 누리꾼 참여운동이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60년간이나 미뤄져 왔던 친일파 청산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3년 12월 말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온갖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면서도 용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세한 예산을 찾아내 도려낸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심의의 철저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정치권의 몰염치를 비난했습니다.

2004년 1월 7일 국회의 반역사적 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기사에 어느 누리꾼(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호룡 선생)이 격동의 심경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민족사의 과제를 국가가 정녕 외면한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 그렇게 거대한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공동캠페인 조인식을 가지고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캠페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1절까지 1억 원, 8·15까지 5억 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2003년 친일인명사전 예산 전액 삭감... 모금운동 11일만에 '5억 원 달성'


▲ 2004년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금모금 공동캠페인
 협약식을 가진후 양 기관의 대표자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
소 소장, 조문기 이사장,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운현 편집국장. 뒷줄은 차영조 민족문제
연구소 운영위원.ⓒ 김진석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모금 시작 하루만에 4000만 원이 모이더니 나흘 만에 1억 원, 엿새 만에 2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뜨거운 모금 열기에 예산 삭감을 진행한 계수조정소위의 위원장인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까지 성금을 보내왔으나 누리꾼들의 반대로 반환하는 해프닝마저 일어났습니다. 전임 대통령도 참여의 뜻을 전해왔으며 여야 의원들과 정당들도 뒤늦게 자성하며 이구동성으로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이 실감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타오르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월 15일 오후 6시 행정안전부가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모금 즉시 중지 결정' 공문을 연구소로 보내온 것입니다. 그날 오후 9시 방송사들은 일제히 톱뉴스로 이 기막힌 사태를 보도했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다니" "열받아서 사망 일보 직전이다. 낼 눈뜨자마자 바로 은행 가야지" 여론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이에 허성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도 성금을 냈다"고 공개하면서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여론의 뭇매를 맡게 됩니다.

이제 누리꾼 모금운동에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금은 오히려 가속화돼 다음날인 16일 4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18일 밤늦게까지 온라인 입금이 계속되더니 19일 새벽 3시 드디어 목표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11일만에 2만5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기금목표 5억 원을 단숨에 달성해 낸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믿기 힘들었던 이 순간을 '5억 돌파! 물방울이 바위 뚫었다... 명동에 울려퍼진 "친일청산 만세!"'라는 감격어린 제목을 달아 전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눈물나네…나만 그런 건가요?…사랑하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소감을 붙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벅차오르는 자부심에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절망을 접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긍정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메이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모금하는 수재의연금도 아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아닌 역사운동에, 성인 인구 1000명당 1명이 참여하고 평균 2만 원의 소액 성금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기금목표를 이뤄낸 것입니다. 누리꾼들이 스스로 '독립군 진공작전'이라 이름하였듯, 민초들이 이제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역으로서, 거짓된 역사를 거부하고 진실한 역사를 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입니다.

기금목표를 달성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누리꾼 모금 공동캠페인을 일단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아래 국민모금으로 전환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이날 저녁 명동의 반민특위 터에서는 누리꾼들과 연구소 식구들이 운집한 가운데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친일청산을 다짐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압록강 행진곡'을 드높이 외치며 제2의 독립군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 2004년 1월 19일 엄마 손을 잡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8살 우빈군.
우빈군 어머니는 이번 모금상황을 보면서 우빈이와 함께 역사책을 찾아가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소연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경이로운 순간들과 북받치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오마이뉴스>와 연구소 누리집에 올라왔던 숱한 사연들을. "우리 네 딸들이 아름답고 정의롭게 커가길 바란다"며 정의의 대열에 가족 여섯 명의 이름을 모두 올려달라던 다둥이 아빠(한걸음), "반민특위 위원이 된 기분"이라던 일산 비둘기님, "제2의 독립군 군자금을 낸다"던 이석님, "태어날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선물하고 싶다"던 새신랑(nagne1120).
 
"훌륭한 유산은 바로 정의롭고 반듯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라며 가족의 이름으로 동참해 주셨던 가장(cjseodls),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족이 될 수 있겠다"면서 이역만리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성원을 보내주신 범부(bigground)님, 연금의 일부를 보낸다던 지체장애인, 하루 날품삯을 아들 명의로 보내온 막노동자, 면접비를 성금으로 냈던 '청년백수'(rock7896), "비록 사오정이지만 두 아이와 만 원씩 쏜다"던 조기 퇴직자(team), 기름때 묻은 지폐를 모금함에 넣고 돌아서던 호떡 노점상 아저씨, 선대의 친일 행적을 대속한다며 성금을 보내온 수많은 후손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또 멀리 해외에서까지 수많은 이들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상을 그리며 고귀한 성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부족한 생활비를 쪼갠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정성이 담긴 소중한 물품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돌반지,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 신혼부부의 예물시계. 간절한 사연 속에 진실한 역사와 건강한 사회를 향한 아름다운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차마 기금으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곧 만들어질 시민역사관에 누리꾼 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전시하려 합니다.

아이들 돼지저금통, 예물시계... 국민이 만든 '친일인명사전'


▲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친
일인명사전 성금 5억원 모금 달성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인명사전 네티즌 성금 이용방안에
 대한 협약서>를 체결했다.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 권우성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은 참여인원과 열기, 모금속도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뿌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도 배로 증가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인터넷 역사문화운동이 만개하는 한 이정표가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수구세력들에게는 역사를 움직이는 참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여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민중이 역사의 주역임을 입증해낸 것입니다.

친일청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되면서 한나라당의 책동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도 2004년 12월 부족한대로 개정하는 의미있는 성과도 얻어냈습니다.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도 그 연장선상에서 쟁취한 역사적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값진 소득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이었습니다. 국민모금에서 나타난 많은 이들의 절절한 염원이 밑거름이 되어 2009년 11월 8일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온갖 방해와 역경을 딛고 18년간의 대장정 끝에 이뤄낸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우리는 확신합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힘은 오로지 누리꾼 여러분들을 비롯한 국민 다수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 2009년 11월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
이었지만 숙명아트센터가 측의 안전 문제로 대관 계약을 일방 취소하자 참석자들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장소가 변경하여 묘소로 이동하고 있다.ⓒ 유성호    


누리꾼 모금 8주년을 맞아 이제 참 역사를 지켜낸 그때의 '당신'을 찾습니다.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 호응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역사정의실현의 열망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감격을 오롯이 담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다큐멘터리 DVD를 보내드립니다.

☞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친일·독재 미화와 역사교과서 개악으로 들끓고 있는 우리 현실은 상식과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힘들이 모여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했습니다. 다함께 뭉치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함으로써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신뢰와 그간의 축적된 힘을 기반삼아, 다시 역사전쟁의 최일선에 서고자 합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기적에 이어 두 번째 과제로 '역사정의실천 시민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관을 중심으로 친일·독재를 찬양하는 온갖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성원 보내주시고 지켜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 역사의 진정한 주역 '당신'과 함께 민족문제연구소가 정직한 역사의 지킴이가 되겠습니다.

모금일지
2003년 12월 29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전액 삭감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 2004년도 정부예산안 통과
2004년 01월 07일 친일인명사전 편찬기금 네티즌 모금 발의
2004년 01월 08일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 협약 체결
2004년 01월 09일 모금 4000만 원 돌파
2004년 01월 12일 모금 1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4일 모금 2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5일 행정안전부 '모금 즉시 중지 결정' 연구소에 공문으로 통보 모금 3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6일 모금 4억 원 돌파
2004년 01월 19일 기금 목표 5억원 달성, 명동 반민특위 터에서 결의대회 네티즌모금을 국민모금으로 전환
2004년 01월 27일 국무회의 '2006년까지 35억 원 모금' 승인 의결
2004년 02월 19일 모금 7억 원 돌파
2004년 03월 15일 참여인원 약 3만 2000여 명, 총모금액 7억 5000만 원

 


오마이뉴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친일 인명사전 네티즌 모금 8주년 기념 이벤트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당신'들께 영상실록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자료실 고양이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인명사전의 기적,역사관 건립으로 이어가겠습니다.
TEL 02-969-0226 / E-mail
historyac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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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ndora 2013.04.30 15:01 address edit & del reply

    세상은 네가 있어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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